제10장 꿈
인도, 델리(Delhi), 뉴델리(New Delhi)
5월 13일, 체포된 지 엿새째 그리고 그 역시 어느새 해 질 녘이 되었다.
지난밤의 어둠이 다 걷히기도 전에 맞이하는 이곳에서의 또 한 번의 이른 새벽은 외롭고 답답하고 화나고 모든 것이 예외 없이 끔찍하고 싫다. 지난밤 가까스로 잠들어 꿈속으로 일탈할 수 있었던 이후 다시 새삼스레 맞아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란 것이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잔인하고 초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아침마다 다시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것이다. 한편 그런 아침에 비해 또 다른 슬픈 하루가 저물어 가는 이 시간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이유의 일부는 성취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냈구나 하는 성취감.
인도에서 최초로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1월 말 즈음 남인도 케랄라주에서였고, 평생 안고 있던 흡연습관을 그와 비슷한 시기에 포기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어쩌면 아무리 지독한 습관일지라도 유효기간이 존재하나 보다. 지난 20여 년간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져버린 데는 아무런 이유도 의지도 없었다. 단지 그 어떤 high(하이)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내 머리가 아닌 몸이 자연스럽게 먼저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엉이처럼, 높이 날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날개를 퍼덕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가장 편안한 곳에 앉아있기로만 마음먹은 해탈한 부엉이처럼. 하늘 높이 나는 것을 사랑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락도 필요하다는 사실에 싫증이 난 부엉이처럼 난 대마초가 주는 high 이후 어쩔 수 없이 다시 맞아야만 하는 추락에 지쳐버린 것 같다.
2008년 3월, 서울, 2년 동안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던 직장에서 퇴사하였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어느새 12년의 시간을 살아버린 나에게 그만큼 오랜 옛날 한국에서의 2년 간의 직장생활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졌던 업무가 특별히 어렵거나 피곤한 일은 아니었지만 타인이 미리 정해놓은 규칙에 나를 억지로 맞춰야 한다는 조건에 난 영원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나를 고용한 회사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러한 나를 실수로 고용해야 했던 회사 역시 내가 느꼈던 만큼 길고 괴로운 2년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을 것이다. 퇴사프로젝트는 내가 그곳에서 개발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들 중 가장 정교하게, 틀림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확히 2년을 채우게 되는 그 날짜에 인도행 티켓을 예약해 둔 상태였고 나의 퇴사 계획을 전해 들은 회사도 내심 그런 나의 결정을 환영하는 듯 보였다.
"그럼 45일 후에 뵙겠습니다.”
수차례의 면접 이후 가까스로 최종 협상이 이루어진 새 고용주와의 계약 조건 중에는 더 높은 연봉뿐 아니라 인도 여행을 위한 선휴가 45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엄마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45일 금방 가!" 홀로 마중 나오신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난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지? 맞지?" 그렇게 말씀하셨던 지금보다 12년 젊은 엄마의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없었고 지금보다 12년 어렸던 나는 그런 엄마의 걱정이 '오버'라고 생각하며 일정대로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8년 3월, 뉴델리, 그곳의 공기는 무거웠고 뜨거웠고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낯설었던 그 모든 것들을 난 즉시 사랑하기로 했다. 등에는 얼룩 하나 묻지 않은 브랜드뉴 노스페이스 백팩, 한 손에는 여전히 빳빳한 1,000 페이지 론리플래닛 인도 편, 발에는 마모된 흔적 하나 없는 검은색 하바이아나스 플립플랍, 얼굴에는 스크래치 없이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역시 브랜드뉴 레이벤 선글라스.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앞 아무 규칙도 질서도 없이 늘어선 듯한 노란색 릭샤들과 검은색 택시들 그 사이를 분주하지만 목적 없이 오고 가는 수만 명의 인도 사람들 마침 그 속에 섞여 있던 한 평범한 사기꾼이 그날의 희생양을 물색 중이기라도 했다면 그에게 난, 놓치면 많이 아쉬울 쉬운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형 안녕하세요? 빠하르간지 가요? 나 릭샤 운전하는 사람. 걱정 말고 나만 따라와요." 숯처럼 새까만 곱슬머리, ‘ADADIS’ 심하게 목이 늘어난 원래는 흰색이었을 티셔츠에는 그렇게 쓰여있었고 머리 뒤로 돌려쓴 얼룩자국이 선명한 선글라스는 ‘DEESEL’ 제품이다. 도금이 벗겨진 금귀걸이, 빨갛게 얼룩진 치아, 짧고 두꺼운 하체에 비해 과하게 튀어나온 배와 가느다란 팔을 가진 프라브는 내 생애 처음 만난 인도인이다. "형 인도 처음이에요?" 노란 릭샤 뒷좌석의 꼬질꼬질한 회색 캔버스 커튼을 열어젖히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녀석은 굳이 그렇게 물었다.
도로 위 차선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릭샤들, 자전거들, 오토바이들 그리고 사람들과 차들 사이를 헤맨 지 한참이 지나자 프라브가 뒤돌아보며 나를 쳐다본다. 갈색과 초록색이 오묘하게 조화된 그의 눈이 왠지 슬퍼 보인다. "형 I'm so sorry but Pahar Ganj is closed tonight. My friend just told me."(형 미안해요. 근데 빠하르간지 오늘 문 닫았데요. 친구가 방금 알려줬어요.) 동시에 그는 노키아(Nokia) 폰의 녹색 액정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What do you mean by ‘closed’ as if there are doors? I don't understand."(닫혔다니 무슨 소리야? 마치 빠하르간지에 문이라도 달린 것처럼? 난 이해할 수가 없다.) 힌디어로 된 그 문자 메시지를 내가 알아볼 리 없었지만 어쨌든 난 그의 노키아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며 따졌다. "Pahar Ganj is full tonight. That's why."(빠하르간지가 사람들로 꽉 찼데요. 그래서요.) 빠하르간지는 Old Delhi(올드델리)에 있는, 특히 해외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저렴한 호텔들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거리의 이름이다. 론리 플래닛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Then where should I go instead? I just need a hotel to sleep in and that's it."(그러면 나 이제 어디로 가야 돼? 난 그냥, 잠잘 수 있는 호텔만 있으면 돼.) 나를 태운 릭샤의 긴 핸들바를 쥐고 있는 인도 현지인의 말을 무조건 의심하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가 빠하르간지가 꽉 찼다고 한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난 배가 고팠다. "알았어! 형 right away!"(갑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띤 프라브가 가속페달을 밟고 차와 차 사이를 신나게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근데 형 You married?"(결혼했어?) 빨갛게 얼룩진 치아를 활짝 드러낸 그가 그때까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천장에 달린 볼록거울에 비친 나를 향해 물었다.
릭샤에서 내려서 밟은 그 거리는 조금 전까지의 혼잡한 도로 위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같은 델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 어느새 어두워져 버린 그 거리에는 단 하나의 외로운 가로등마저 곧 꺼질 듯 약하게 깜빡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릭샤의 엔진 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그 가로등 밑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허름한 건물의 문이 드르륵 소리 내며 열렸다. 아마도 우리의 방문은 예상되었던 듯하다. "나마스떼 바히? 꺄할레?"(형제 안녕하신가?) 키가 크고 얼굴이 길고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눈은 깊숙이 파였다. 갈색 피부의 프라브에 비해 피부가 많이 밝다. 구레나룻을 따라 턱 전체와 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염이 무성하다. 가슴께 서너 개의 단추가 달린 연한 회색 상의는 거의 무릎까지 내려와 온몸 전체를 덮는다. 별로 두껍지 않은 종아리에마저 꼭 낄 정도로 좁은 그의 검은색 바지 아래로는 디즈니의 알라딘이 신을 법한 앞이 뾰족한 모양의 샌들이다.
"How are you, my Korean friend? Welcome to India and call me Khan. And let's get inside."(한국친구 안녕하신가? 인도에 온 걸 환영하네 난 칸이라고 하네. 들어가세.) 그를 따라 들어간 그곳의 형광등 불빛이 처음에는 많이 어둡고 침침했지만 눈은 어느새 적응했다. "Please take a seat here."(사양 말고 앉게나.) 그러면서 그가 안내한 그 사각 테이블에는 다리가 세 개뿐이다. 네 번째 다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재빠르게 자신의 허벅지를 밀어 넣으며 앉은 그가 말을 이었다. “My brother Prabu told me that you are just arrived today. You will need to have a place to stay immediately. Is it right?"(내 형제 프라브 말로는 방금 도착했다던데? 당장 오늘 밤부터 지낼 곳이 필요하겠군? 그렇지 않나?) 그가 내뱉는 단어의 수만큼 테이블은 위아래로 좌우로 위태롭게 흔들렸다. "Yes I am very much hungry after a long journey, too."(네, 그리고 긴 여행 덕분에 배도 너무 고프네요.) 어디선가 풍겨오는 은근한 버터 냄새는 나의 침샘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Oh I am so sorry. Forgive me of my ill manner. Do you drink Indian chai? Wait a minute oi~ Arif! oi~!"(아 이런 미안하네. 내 못된 매너를 좀 양해해 주게. 짜이 어떤가? 어디 함 보세, 오~이! 아리프! 오~이!) 짜이가 준비되는 사이에 둘러본 그곳에는 여러 장의 빛바랜 대형 포스터들이 액자도 없이 벽에 붙어있다.
'Incredible India! The Persian Garden Up North'(믿지 못할 인도! 북인도의 페르시안 정원)
노란색 하얀색 핑크색 빨간색 보라색 등 수많은 꽃으로 뒤덮인 정원이 있는 사진에 쓰여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키 큰 나무들 앞으로 질서 있게 늘어선 목조건물들이 맑고 깨끗한 호수에 투영된 사진에는
"Incredible India! The Summer Capital of India"(믿지 못할 인도! 인도 여름의 수도)라고 쓰여있었다.
"Kashmir! The Shepherd Valley"(카시미르! 양치기들의 계곡) 눈으로 반쯤 덮인 산 아래 펼쳐진 초원 위에 수백 마리의 하얗고 깨끗한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사진에는 그렇게 쓰여있었고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하얀 계곡 위에 쌓인 눈, 그 아래로 보이는 목조건물들은 다시 보니 건물이 아닌 물 위에 떠있는 배들이었다. 편안한 느낌의 은근한 노란 불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 한쪽 끝이 동그랗게 말린 그 마지막 포스터에는 "Incredible India! A Blanket of Snow"(믿지 못할 인도! 눈으로 뒤덮인 세상)라고 쓰여있었다.
"Where am I? because this place doesn’t look like a hotel to me."(여기 어디야? 호텔 같아 보이지 않는데?) 짜이와 과자가 올려진 쟁반을 건네는 아리프에게 물었다. "We can offer you a hotel service also. Where do you want to go? Do you know about Dal lake? Srinagar? or Gulmarg? don't you want to try a houseboat? they are the most popular destinations in India among international travellers. Trust me, no smart traveller shall miss it."(원하면 호텔도 알아봐 줄 수 있네. 어디로 가고 싶나? 달호수 들어봤나? 스리나가르는? 아님 굴막은? 하우스보트는 어떤가? 꼭 한번 타 보시게나, 하우스보트가 자네 같은 해외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이라네. 날 믿게나. 똑똑한 여행자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네!) 얼굴 전체가 수염으로 덮인 칸이 아리프를 대신하여 설명했고 "We have our own luxury houseboats. And they are cheap. The cheapest you can find, I promise you."(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호화하우스보트도 있어요. 게다가 싸요! 찾을 수 있는 하우스보트 중 가장 저렴할 거예요. 약속해요.) 앉을자리를 찾지 못한 듯 빈 쟁반만 들고 서 있던 아리프가 마무리했다.
그들 대신 난 그 옆에 함께 서 있는 프라브를 쏘아본다. "What’s all this? Are you trying to fool me? Didn't you say we are going to a hotel?"(이게 다 뭐야? 너 지금 나 놀려? 내가 호텔로 가자고 했잖아?) 어느새 릭샤에 실려있던 나의 배낭마저 꺼내온 프라브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예상하였던 듯 미리 준비된 듯한 변명을 시작했다. "형 Don't worry. Trust me. No problem. 형 내가 한국사람들 좋아하는 거 잘 알아요. 좋은 데니까 특별히 형 보라고 했어요. 형? 나 못 믿어요?" 내가 그토록 지쳐있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프라브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Cut the crab and take me to a hotel right away. I will decide where to go next tomorrow and by myself. Just do only what you were told. I have hired a ricksha not a tourist guide. Got that?"(됐으니까 그만하고 당장 호텔로 가자. 내일 어디로 갈지는 내일 내가 결정해. 넌 그냥 내가 시킨 것만 하면 돼. 난 릭샤꾼이 필요하지 여행가이드는 필요 없다. 알겠어?) 그 녀석의 오지랖 덕분에 인도에 도착한 지 이미 수시간이 지난 그때까지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니 분하고 짜증이 났다. 성격 급한 한 한국인의 인내심은 어느새 한계에 이른 것이다. "No, I think that’s it! I’m leaving now. Don’t even bother taking me to a hotel or anywhere. I don’t need you."(아니다. 충분했다. 호텔이든 어디든 이제 됐다. 너 필요 없어.) 다리가 세 개뿐인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서며 내가 말했다. 동시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짜이컵 중 하나가 넘어졌고 하필이면 그 모든 내용물이 칸의 허벅지 위로 흘러내렸다. "Inna Lillahi wa Inna Ilayhi Raji'un!!!"(우리는 진정 알라의 소유물이고, 진정 알라에게 돌아간다.) 칸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아직은 넘어지지 않고 위태롭게 흔들릴 뿐인 나머지 두 잔의 짜이마저 넘어진다면 그의 허벅지가 감내해야 할 고통은 곧 세 배가 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에는 이를 악 문 채로 "Inna Lillahi wa Inna Ilayhi Raji'un!!!"(우리는 진정 알라의 소유물이고, 진정 알라에게 돌아간다.) 한번 더 자신의 위대한 신을 찾은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테이블 아래에 놓인 이미 한번 짜이에 젖은 허벅지를 움직이지 않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애원했다. "No problem my friend. Please relax. All will be fine. So stay. And please hold the chai glasses, please!"(아무 문제없을 것이네, 나의 친구여. 진정하시게나. 모든 게 잘될 걸세. 여기 있어주게나. 그리고 제발 저 짜이컵들 좀 잡아주겠나? 부탁하네!) 그의 다급한 부탁을 적극적으로 들어준 나에게 감격했는지 그는 곧바로 제안했다.
"Do you smoke?"(대마초 해?)
“Kashimisri number one.”(카시미르 넘버원.)
이미 수개월 전 교체되었어야만 할 칙칙한 형광등 불빛 아래 유치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싸구려 플라스틱 쟁반을 한 손에 든 채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서 있는 아리프, 구김 하나 없는 나의 빨간색 노스페이스 배낭을 두 손으로 꼭 껴안고 있는 키 작은 릭샤꾼 프라브, 그리고 칸, 그 세 명의 여전히 낯선 인도 사람들을 천천히 번갈아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Show me."(한번 볼까요?)
일반적으로 대마초에 취한 채 잠을 자면 꿈을 꾸지 않는다. 그것은 대마초에 취했을 때와 수면 시 꿈을 꿀 때 뇌파의 유사성에 기인한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즉, 대마에 취한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한 경험인 것이다.
인도에서의 첫날부터 꾸기 시작한 그 꿈은 이후 계속되었다.
12년 만에 꿈에서 깨어보니 지금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