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부고

얄개

by 복순이

*사진 출처: 나무위키



2003년 2월 12일,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그날은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중대부고' 앞으로 내가 다니게 될 학교였다.


처음 학교 배정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거긴 우리 중학교에서 많이 가는 곳은 아닌데'였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 상당수가 같은 학교에 배정되었다는 우연에 더 놀라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꽤나 멀었다. 고등학생이 되며 등교시간이 앞당겨진 것도 모자라 통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간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주했던 엄마의 아침은 늘 전쟁 같았고, 게을렀던 나의 아침은 투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빨리 일어나!' '5분만 더'

'밥 먹고 가!' '밥 먹을 시간 없다니까'

뭐라도 챙겨 먹이고 싶은 엄마는 급한 대로 밥과 김치를 김에 싸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은 왔다 갔다 움직이며 엄마가 싸준 김밥을 하나씩 집어먹었다. 분명 시간도 없고 먹기 싫다 해놓곤 한두 개 집어먹다 어느새 다 먹고 없어지면 못내 아쉬웠다. 대단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도는 건 다들 아는 엄마의 사랑이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생까진 공부를 못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는데 고등학생은 달랐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잘해야 했다. 그치만 나는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특히 1학년 때 담임은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당시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같이 혼나는 친구들이 하도 까불거리는 탓에 담임이 우리에게 엄격한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그는 나처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만 유독 가혹했다.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선생님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생님을 좋아했고, 일부와는 사이도 각별한 편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친했던 선생님 중엔 악명 높은 선도부 선생님도 있었다. 중대부고는 정문에서 학교건물까지 족히 100m가량 되는 긴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갈수록 언덕이라 지각명단에 걸리지 않으려면 발에 모터를 단 것처럼 뛰어야 했다. 전력질주 후 헉헉대며 그래도 우리 잘 뛰지 않냐 물어보는 친구와 나의 뻔뻔함에 기가 찼는지 선도부 선생님은 우릴 보고 피식 웃었다. 지각하지 않는 날에도 선도부 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정한 인사를 한 마디씩 건넸고 그럴 때면 겁도 없이 더 까불어 댔다.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놀았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를 만나거나 매점에 들렀고 점심시간엔 밥 먹고 나서 배드민턴을 쳤다. 쉬는 시간에 말뚝박기를 하다 누군가 부상을 입었고 이후 교내 말뚝박기 금지령이 내려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매점에서 크림빵을 사 먹었는데 빵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매점으로 달려가 빵에서 이런 게 나왔다 해맑게 얘기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얼마 후 영양사 선생님이 고맙다며 크림빵 한 박스를 줘서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어떤 날엔 수업이 끝나면 옥상으로 올라가 종이비행기나 휴지 조각을 던지기도 했다. 옥상을 아지트로 삼으려던 우리는 은밀하지만 마치 누군가 듣길 바라는 듯이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자는 계획을 세웠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옥상폐쇄라는 엄벌에 처해졌다.


공부도 안 하는 주제에 야간 자율학습만큼은 꼬박꼬박 신청했다. 야자시간이 되면 석식을 먹고 학교 독서실에 있는 청소기를 타고 놀거나 내 키만 한 틈이 있는 벽 사이에 가로로 매달려 '가로본능'이라는 핸드폰 흉내를 내었다. 놀다가 지치면 자습실에 엎드려 자거나 오늘은 유난히 공부가 안된다며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토요일엔 친구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늘은 열공하겠다며 자습실에 가서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잤다. 당직근무를 돌던 수학선생님이 우릴 보고 이렇게 대놓고 자는 애들은 처음 봤다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 친구와 나는 정말 뻔뻔하게 공부를 1도 안 해놓고 수능 망쳐서 속상하다고 같이 울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다 웅덩이에 일부러 발을 담가 물을 튀기고

석식메뉴가 별로라며 은마상가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헌혈한 증서를 모아 공짜 아이스크림으로 바꿔 먹고

지나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구르다 보니


고등학교 2년이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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