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인생 강의, 이진우

내 멋대로 니체 읽기

by 이전철



내가 삶의 목표나 의미에 대해서 요새 고민 많이 한다고 친구한테 말하니,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주면서 니체를 읽어 보라 했다. 책도 170쪽 정도로 아주 짧고 잘 정리되어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았다.


니체 너무 유명하고 ‘신은 죽었다’ 너무 유명하지만 사실 뭐한 사람인지, 뭔 뜻인지 1도 몰랐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알게 되었고, 더 관심이 갔다. 다음 책은 차라투스트라 읽어야지.






#신의 죽음

이 책은 니체의 핵심 사상을 단원별로 나눠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신의 죽음. 게임에서 운 없을 때 드립으로만 썼었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표현이다. 종교적 가치가 가장 중요하던 시기가 끝났다는 말이다. 사실 난 종교적 가치가 뭔지 모른다. 나 말고 많은 현대인들이 모를 거다. 이해하고 말고도 없이 우리들은 신은 죽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종교적 가치가 이제 가장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니체는 그것이 개인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만의 가치를 찾아라. “신은 죽었다”는 결국 나만의 가치를 찾으라는 말과 똑같은 뜻이다. 나만의 가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인 매슬로우의 책과도 이어지는데, 그 책에선 이런 말을 한다. 너의 몸을 인정하고, 너의 세포, 너의 충동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그것이 재능이고, 너의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 자아실현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작가가 예시 들어주는 가치는 사랑밖에 없다. 나만의 가치를 정의해나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권력에의 의지

니체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인 권력에의 의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법론이다. 인간이 하는 행동들의 목적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는 의미인데, 권력은 말 그대로 권력도 뜻하고, 아름다움, 돈, 발전 등의 여러 가치를 의미한다. 썸 탈 때 하는 밀당이 권력에의 의지 그 자체다. 적절한 언변과 행동을 통해 그 관계에서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밀당의 이유


더 깊은 의미를 알아보자. 이 권력에의 의지는 얼핏 보면 외부적인 것, 소위 ‘성공’이라고 말하는, 돈을 많이 벌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정말 내면 속에서 그 목표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성취한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성장의 과정과 완성은 삶의 의미를 구성한다. 어떤 인간이든 성장하고 싶어 한다.


더더 깊은 의미를 알아보자. 위의 내용으로 설명 안 되는 인간의 행동이 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권력에의 의지인가? 부모가 자식에게 물심양면으로 주는 사랑이 권력을 얻기 위해서인 것인가? 내가 이 책에서 본 니체의 말로 이 것을 설명하면, 부모는 이미 권력자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 이미 부모는 권력이 흘러넘친다. 권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왜냐면 인간은 알게 모르게 권력을 위해 행동하는데, 이미 권력이 넘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기에 행동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진정한 사랑이 가능해진다. 무언가 원하는 게 아닌, 권력을 향한 것이 아닌, 정말 자유로운, 자발적인 사랑. 부모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물론 니체나 이 책의 지은이가 이렇게 그대로 써놓은 건 아니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기에 니체를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겐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니체를 보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순간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도. 드라마 명대사 하나 뽑을 수 있다. “너에게 원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냥 너, 너라는 사람이 좋아.”




#초인

어려운 듯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신의 죽음과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을 이해했으면 시작은 쉽다.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권력에의 의지(성장 의지)를 가진 사람을 초인이라고 했다. 초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최후의 인간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는데, 책에서 와닿은 말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좋아하는 사람과 자연을 느끼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는 것을 행복한 상태로 상상할 수 있어요. 이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태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동경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인간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초인으로 살지, 최후의 인간으로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저 설명을 보면 최후의 인간으로 사는 게 나쁜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러면 초인은 맛있는 브런치 싫어하고, 멋진 자동차와 좋아하는 사람과의 담소 싫어하는 거야? 간단한 듯했던 초인 개념이 여기서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먼저 설명하기 전에 최후의 인간과 초인이 뭐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세상에 대한 인식관으로 이해했다. 초인은 저 상황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인은 맛없는 음식을 먹고 후진 차를 타도 괜찮다. 사물이 바뀐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바뀐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치가 바뀌었기 때문에 세상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처한 형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으란 거야? 그렇다. 있는 그대로 살되, 인식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너와 너의 세상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초인이다.


뭔가 금욕주의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아예 범주가 좀 다르달까? 최후의 인간들은 세속적인, 다른 사람들이 쫒는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난 40살인데 결혼을 못했어”나 “난 월 100만 원 밖에 못 벌어” 같은 말을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쫒는 가치,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해야 한다,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 등의 가치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초인은 애초에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초인은 “난 40살이고, 결혼 안 했어”라고, 그리고 “난 월 100만 원 벌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발전 없는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권력에의 의지, 성장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쓰면서도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왜냐면 아직 나도 세속적인 가치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면 좋고, 연봉 많이 받으면 좋다. 사실 가치든, 인식관이든, 흑백논리가 아니다. 초인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최후의 인간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초인 개념을 좀 더 가볍게 요즘 세대에 이렇게 적용하면 될 것 같다.. 슬럼프가 왔을 때, 자괴감이 들 때,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자. 남들의 가치로 나를 판단해서 밑으로 파고 내려 갈 필요는 없다. 내가 그 일을 시작한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너만의 가치이다.




#영원회귀

이 글을 읽는 고마운 분들께 이런 질문을 해보겠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똑같은 삶을 살고 싶나요?”

각자의 대답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고, 아쉽거나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낚시였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뭐라 대답했든, 당신의 삶은 또 반복됩니다. 좋았든 싫었든, 당신은 그 삶을 몇백 몇천 번 계속 반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난 저 대답을 보고 사실 좀 충격받았다. 상상만 해도 갑갑하다. 니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저런 폭언을 우리에게 한 것인가? 우리의 삶은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하루하루를 봐라. 별 달라지는 게 없다. 다시 태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거다. 노잼이란 거다. 그런데 우리는 노잼 라이프를 살기 싫다. 그렇기에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변화하도록 노력한다는 건 물론 단순히 이해해서 새로운 도전, 여행 같은 것도 된다. 그런데 니체가 말하고 싶은 변화는 초인의 가치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신의 죽음부터 초인, 영원회귀까지 계속 비슷한 내용이다.


초인의 가치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가? 노잼이라는 인식이 사라진다. 노잼이라는 인식은 최후의 인간의 가치이다. 세속적인 판단이다. 그 가치를 버리면, 이제 더 이상 반복되는 삶이 노잼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무한히 반복되는 삶이라도 매일매일의 노을에 감탄할 수 있다. 인생은 똑같은 반복의 연속이라는 영원회귀 사상은 역설적으로 현재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잠깐이나마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것을 읽었을 땐 이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을 읽었을 때 이런 기분이 든다. 내가 생각조차 못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세 가지 변신

위 내용을 익힌 사람들은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세 가지 변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낙타는 최후의 인간의 가치에 복종하는 사람이다. 최후의 인간과 다른 점은 내가 무엇에 복종하는지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자는 그 가치를 이겨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거치면 어린아이가 되는데, 어린아이는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이과답게 예시를 들면,

최후의 인간: 돈이 좋아!!! 라며 기존의 가치를 추구한다.
낙타: 돈이 좋긴 한데,,, 라며 기존의 가치에 복종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짐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사자: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 라며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어린아이: 돈은 돈이고, 나는 나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모르파티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니체의 사상이라는 것에 놀랐다. 노래 가사에서도 그러듯, 아모르파티의 뜻은 “네 운명을 사랑해라”다. 운명론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려면 “그게 니 운명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네 운명을 사랑해라.”

너 자신이 네 운명의 주인이다. 너의 운명대로,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의 충동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신은 죽었다. 너만의 가치를 찾고, 그것을 위해 행동해라. 그러면 넌 초인이 되고,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






니체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짧은 책이지만 정말 깊게 생각하게 해 줬다. 이 책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사상을 머리로 아는 건 쉽지만, 몸으로 체현하는 것이 어렵다고. 아~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다 안다는 듯 훈수 글을 써놓고도 세속의 가치를 쫓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니체의 생각 그대로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세상에 답은 없다. 철학책은 어디까지나 참고도서다. 나한테 와닿은 것들만이라도 체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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