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그리고 단숨에 슬럼프 극복하기

by 이전철

201119

최근 코로나 때문인지 일이 별로 없다. 몸이 여유로워서 그런가, 바쁠 땐 전혀 하지 않던 고민들이 자꾸 떠오른다. 되게 철학적인 고민인데, 오글거리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하고 아무튼 계속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그런 고민들이다.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들 행복이 삶의 목표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인가?

요새는 정말 좋은 게, 원래라면 네이버 검색해서 쪼매난 글자로 쓰인 글들을 봐야 했었는데, 그냥 유튜브에 ‘삶의 의미’라고 치면 영상으로 누워서 이불속에서 볼 수 있다. 덕분에 쉽게 나보다 먼저 이런 것들을 고민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한참을 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책들엔 어떻게 쓰여있는지, 여러 의견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엔 유대감이 있다고 했다. 유대감? 아, 내가 연애를 안 해서 삶의 의미를 못 찾는 건가! 가족과 친구, 연인 사이의 유대감. 나에게도 정말 중요한 요소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또 다른 영상에선 이런 말을 한다. 유대감이 삶의 의미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다면 나의 삶의 의미는 없어진다고. 결국 외부적인 요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삶의 의미는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고, 도중에 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대감 일단 킵. 좋은 말이지만 와 닿지 않아. (아마 솔로여서 안 와닿는 듯)



어떤 사람은 스토리텔링을 강조했다. 스토리텔링이란 표현을 완벽하게 이해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써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내 멋대로 생각해보면, ‘나의 삶’이라는 소설이 해피엔딩이면서 교훈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면, 그것이 가치이며 목표가 될 수 있다. 결국 내 삶을 위한 노력 그 자체가 가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어떤 식의 표현을 통해, 글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내가 좋아하는 방법을 통해 나의 삶을 표현하는 게 가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공감된다. 전자로 해석하면 내가 수능 공부하는 이유, 취업을 위한 노력 자체에 가치가 생긴다. 또 나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표현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환호를 받을 때,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가 찍은 사진에 좋아요가 눌릴 때 나는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은 거랑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의 차이점은 일단 접어두고, 그냥 대충 포지티브 한 결과를 준다고 보자.) 그렇다면 만약, 온 지구에 나밖에 안 남았다면 저 모든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스토리텔링, 표현을 통한 삶의 의미는 결국 누군가의 반응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이것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의미란 것은 온 지구에 나 혼자 남았을 때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온 지구에 나 혼자 남았을 때,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만약 온 지구에 혼자 남았다고 생각해봤다. 친구한테도 물어봤는데, 친구는 자살하거나 희망을 갖고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자살은 안 할 거 같다. 음 몰라, 일단 나는 못해봤던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다 깨고, 못 먹어본 감자칩 맛도 다 먹어볼 거 같다. 한라산도 가봐야지. (제주도까진 어떻게 가지) 너무 1차원적인 욕구들이긴 하네. 저런 거 다하고 나면 죽고 싶어 지려나? 근데 이 것들이 나에게 꽤나 중요한 삶의 구성요소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이게 나의 삶의 목표는 아니다. 사실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왜냐면 실현 가능성이 제로니까.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난다. 삶의 의미를 고민할 때 외부의 반응을 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보다 그냥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더 많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보다 안 올리고 하드에 박혀있는 사진이 훨씬 많다. 이를 보면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도 즐거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외부의 반응이 없더라도, 그 행위 자체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는 즐거움인가?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생존이 온전한 목적인 동물에서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 동물은 생존이 온전한 목적인가? 생존이 어떻게 목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은 모순된 말 아닌가? 대우 명제인 “죽어가기 위해 사망한다”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동물이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종족번식을 위해?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에 관련한 최신 연구에 의하면, 그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는 양육이다. 결국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식을 양육(종족번식)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건가? 이 연구 논문 좀 읽어보고 싶네. 어쩌다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자아실현이라는 영귀한 목표에서 종족번식이라는 동물적 목표로 바뀌었을까. 도서관에서 매슬로우가 쓴 책을 빌려왔다. 말을 뭐 이렇게 어렵게 써놨대. 열심히 읽어나 봐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억만장자도, 도덕철학 연구자도 알지 못하는 게 행복이고, 나의 두세 배를 산 어른들이라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뭐 이런 고민을 하면서 그나마 알게 된 것은 너의 삶을 표현하고, 네가 ‘즐거운’ 행동을 하고, 연애해라?



사실 이런 고민은 슬럼프와 함께 온다. 슬럼프; 발전이 더뎌지고 의욕을 상실할 때. 그 행동에 대해 의미와 목표를 고민하게 된다. 아 영어공부 왜 하지, 운동하기 싫다, 이게 뭔 의미지 등등. 그런데 “이것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은 틀렸다. 우리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우린 알고 있다. 의미 엄청 크다. 영어 잘하면 취직도 잘 되고, 맘만 먹으면 외국살이도 도전할 수 있고, 여행 가서 무시 안 받고, 외국인 친구도 만들 수 있다. 운동 열심히 하면 건강해지고, 섹시해지고, 섹시한 사람과 교제할 확률(?)도 높일 수 있다. 사실 우린 의미가 아니라 보상이 필요한 거다. 보상이 없으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취직이 되고, 외국인 친구가 생기고, 섹시한 사람과 사귀는 ‘보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보상은 너무 높이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최근에 지리산을 다녀왔는데, 그 여정이 생각난다. 1915m의 꼭대기에 닿기 위해서는 한 걸음씩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도중에 초코바도 먹고, 도시락도 까먹고, 모자라면 두 번 까먹고, 신세한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별 시답잖은 농담과 궁시렁궁시렁 욕도 해가면서 한 발씩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꾸준한 건 지겹다. 지겨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너무 많으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한창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동료 선생님이 와서 초콜릿을 줬다. 초콜릿 하나 먹으니까 행복해지네. 다시 공부할 마음 가득이다. 단숨에 슬럼프 극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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