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의 향기

by 박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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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삶이라는 궤도 위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자전하며 공전하는 동안,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것으로 안부를 대신할 때가 많았다. 물리적인 거리가 놓은 울타리와 일상의 바쁨이라는 짐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승이는 마치 시간의 강을 건너온 손님 같았다.


교단에 선 지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는 여전히 갓 피어난 꽃잎처럼 청초한 초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이 내미는 달콤한 유혹, 혹은 거센 물살 같은 시류에 몸을 맡기는 편이, 마치 사랑하는 이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숨기는 일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쉬웠을 터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아니라고 손사래 칠지 모르나, 내게 비친 승이는 세파에 물들지 않고 빛나는, 그래서 더욱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고즈넉한 서오릉과 서삼릉 길을 따라 마음의 풍경을 드라이브하고, 백마역 언저리에서 따스한 차 한 잔으로 시간을 녹여 마셨다. 그리고 칼칼한 꽃게탕 앞에서 삶의 진솔한 맛을 나누었다. 그녀는 네 시간여 동안 내가 흩뿌린 이야기 조각들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쉽게 기쁨의 파문을 일으켰다. 그 맑고 순수한 반응 앞에서, 나는 마치 오랜 창고에 묵혀 두었던 마음이라는 이름의 물건들을 꺼내어 성능을 점검받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런 불평의 그림자 하나 없이, 오로지 다가올 세상을 향한 희망과 우리가 쌓아 올린 노력이라는 이름의 탑을 정돈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그 시간은 싱그럽고 충만했다.



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발끝만큼 자랐다.

나무가 무릎만큼 자랐다.

나무가 허리만큼 자랐다.

나무가 어깨만큼 자랐다.

나무가 머리끝까지 자랐다.

이제는 사랑을 고백해야겠다.


by 박상식




나는 한 번도 새우깡을

과자로 생각하며 먹어본 적이 없다.

새우깡은

아빠가 술을 마실 때

삼겹살과 함께 먹는 술안주이다.


by 조한별



특히 아이들이 쓴 시(사랑, 새우깡.... 기억에 더듬어 정리해 본 시구절)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면, 그 한 편, 한 편이 흐린 봄날의 하늘에 불현듯 떠오른 쌍무지개처럼, 혹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기적 같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서로 아이들의 시 구절을 읊조리며 "맞아, 저게 진짜 살아있는 시야…"를 되뇌다 결국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은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을 엿보는 기쁨이자, 그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승이의 깊은 노고에 바치는 정겨운 눈물이었다.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시들을 모아, 또 다른 시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안내서를 만들어보자는 꿈같은 스케치도 함께 그렸다.


사람의 얼굴이 때로는 기교 넘치는 화장술 아래 진정한 친근함을 감추는가 하면, 때로는 아무런 꾸밈없는 민낯으로 더 깊은 아름다움과 친밀함을 드러내듯, 시 또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징, 비유, 심상 같은 문학적 장치를 적절히 갖춘 시가 잘 쓴 시의 통념이지만, 때로는 그 과도한 치장 속에 감동의 본질이 길을 잃기도 한다. 해석이라는 열쇠 없이는 문조차 열 수 없는 난해함은 감동의 문턱을 높일 뿐이다. 오히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발견과 표현 속에서, 시가 숨 쉬는 실체를 생생히 마주할 때가 더 많다. 정교함이 부족하다 여겨지는 곳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발견하는, 이 아이러니한 진실 앞에서 숙연해지곤 한다.


학교 축제 때마다 시화전을 열며 가장 아프게 다가왔던 순간은, 동료 교사가 아이들의 시를 보며 "창피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였다. 그 어떤 기준이 그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매번 홀로 자위한다. 아이들이 훗날, 자신이 써 내려간 마음의 기록들을 마주하고 작은 흡족함이라도 건져 올릴 수 있다면, 그 시는 이미 독자의 내면에 작용하는 수용미학을 낳은 것이라고. '창피함'이라는 잣대와 '흡족함'이라는 가치 사이의 거대한 간극은, 교육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겨울, 흰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원주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미국 교포 선교를 위해 떠나시던 신부님의 말씀이 마음의 여운으로 남았다. "부임할 때 가졌던 그 마음처럼, 처음 사제가 되던 날의 서약처럼, 그렇게 살기 위해 또다시 길을 떠난다"던 그의 목소리에는 초심을 향한 굳은 의지가 배어 있었다. 한 시간 넘는 비포장도로를 덜컹이는 시내버스를 타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유독 깊은 눈인사를 나누시던 인자한 모습 속에서, 내게 크게 다가온 진리는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신부님처럼 깊은 철학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아주 작더라도 사랑이라는 씨앗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 만난 승이처럼, 여과지를 통해 순수하지 못한 세월의 때를 걸러내어 초심을 지키고자 애쓰는 그녀의 열정과, 아이들을 자신의 교육 철학이라는 대지의 중심에 놓고 땀 흘리는 동료 교사들의 헌신을 향기로운 포장지 삼아, 나 또한 그 빛깔과 향기를 닮아가고 싶다. 더불어 아이들이 순간순간 발현하는 고귀한 통찰이라는 이름의 별똥별들을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밤하늘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오늘부터 다시 걸음을 내디뎌야겠다.


그날 나는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시화전에 출품한 후 친구 교사가 다가와 "선생이 그것도 시라고 썼냐?"라는 쓴 충언을 들으면서도 아이들 앞에 고백성사라도 하듯 전시했던 시를 음미해 보았다. 낯선 곳에 발령을 받아 세상을 바라보며 꿈틀거리던 그때의 동사와 형용사들이 정체 모를 시의 틀 안에서 자라고 있었고, 나는 그때의 아이들을 위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침반을 꼭 쥐고 있어야 했던 고무통 안의 꽃게였던 시간이었다.



향남면 평리


안개에 잠겨 있는 도시

장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해산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움직임이

쉴 새 없이 고개를 든다.


부유(浮遊)하는 삶들이

껍질 벗기를 갈망하고

짙게 화장한

슬픈 눈들이

파리처럼 허공을 떠돈다.


잠깐 아무 의식 없이

길을 걷다가

잊어버린 어제가 나를 찾아와도.

씻으면 지워지는

흔적과 같이

작은 도시의 문은 여닫힌다.


발안의 싸리문 앞에선

고무줄 같은 울렁임이 일고

내 작은 영토 언저리엔

안개를 퍼내는 작업이 계속된다.


오늘도,

버스 정류장엔

시간을 낯설어하는

눈빛들이

고무통 안의

꽃게처럼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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