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송사와 답사의 재구성)
나의 25년간 교직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특히 20여 년 전 ○○농고에서의 국어교사로서 첫 근무 시절 졸업식 송사와 답사를 직접 작성하며 느꼈던 소회를 밝혀본다. 당시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행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며칠 밤을 고민하며 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글들을 되돌아보며 '아이들스럽지 못하고 상투적'이었다는 솔직한 성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례적인 상황에 맞춰 작성된 글은 분명 격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학생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생동감이나 진솔함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는 비단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학교 행사 글쓰기의 일반적인 경향이자, 교육 현장에서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되었던 방식이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엄청 두껍게 발행되었던 교육 현장의 교본과도 같은 인사말, 회고사 등을 엮은 엄청 두꺼운 분량의 묶음집 등을 참고하였던 기억이 있다.
새삼스럽게 지나온 궤적을 들추는 원문 비평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하고 격식의 무게에 가려진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미안함을 덜어보고 싶다.
오늘 우리는 매우 섭섭하고 아쉬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를 사랑하고 아껴 주시던 선배님들을 보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맺음이 있고, 출발점이 있으면 도착지가 있듯이 선배님들은 고등학교 입학이라는 출발점에서 계주 경기의 선수처럼 배턴을 쥐고 도착점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제 선배님들은 계주 경기의 배턴을 저희들에게 넘겨주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 사회라는 새로운 대열에 끼어 또다시 계주 경기를 시작하려는 자리에 서 계십니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낙오됨이 없이 목적지까지 달려와 졸업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하게 된 선배님들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졸업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선배님들이 매일매일을 성실로 이룩한 열매요 금자탑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절과 절망, 시련과 고통을 이기고 이룩한 기념비인 것입니다. 그 보람과 기쁨으로 지금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게 되고 정든 스승님과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하는 아픔 때문에 가슴 한 구석에 솟구치는 감회 또한 크시리라 짐작됩니다. 이런 이별의 아픔은 선배님들이 어떻게 가꾸어 가느냐에 따라 영원히 간직되는 추억이기도 하고 생각 속에서 지워져 가기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배님들!
새가 잠시 앉았다 떠나는 나뭇가지도 그 여운으로 한동안 흔들거리거늘 하물며 3년간 공부하던 ○○농고의 생활을 어찌 쉽게 지워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교정은 언제나 활기 차고 생동감 넘치던 선배님들의 것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늘 푸르고 아름다운 꽃밭이었고 향기로 가득 찼던 것입니다.
입학해서 졸업하는 날까지 힘든 기능 연마의 시간들을 맏형의 의젓함으로 불평 없이 견디어 선배로서의 품위를 잃지 안 않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선배님들을 후배들도 늘 생각하며 따르려 합니다.
선배님들!
시작이라 하는 것은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 알고 계시죠? 비록 이 자리가 아쉽고 서운한 자리이기는 하나 선배님들이 더욱 화려하고 빛나는 출발을 하시게 되는 값진 자리라고 인식하고 싶습니다. 앞날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저희 모교 발안농고 자주 찾아 주시고요, 저희 모두가 선배님들 뒤에서 환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선배님들을 저희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2002년 2월 8일 재학생 대표 올림.
겨울이지만 포근한 날씨는 교문을 나서는 우리들의 앞날에 순탄한 길을 열어 주는 듯합니다. 우리들의 졸업식을 빛내 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 내빈과 부모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희들을 지도해 주시어 졸업이라는 관문까지 이끌어 주신 여러 선생님과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또한, 특별히 존경할만한 자격도 갖추지 못한 우리들을 선배님이라고 따랐던 여러 후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여러분 앞에 서니 아쉬움만 남을 뿐입니다. 학창 시절에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원치 않고, 선생님들 말씀 듣지 않고 곁길로만 가려고 했던 일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정성을 쏟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후회스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무사히 걸어와 오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기쁨 또한 큽니다.
후배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선배로서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먼저 뚜렷한 목표를 가져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만이 무엇인가를 차지하는 법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매사에 어떤 고난도 극복하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후배들처럼 학교에 남아 있을 때 알았더라면 잘할 수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말았네요.
다음은 '성실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의 교훈이기도 하죠? 여러 선생님들께서 가르쳐 주셨듯이 성실은 참되고 거짓이 없는 인간 본연의 참모습입니다. 마음이 성실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도 속임이 없고, 인간관계에도 충실하고 올바르며 신뢰와 신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학업에 정진하신다면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무엇이든지 이루어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믿음을 받는 사람은 발전을 할 것이나 믿음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키 없는 돛단배와도 같을 것입니다.
세월이 영원하듯, 한 나라가 영원하듯, 민족이 영원하듯, 또한 저희들의 모교 역시 영원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부족한 우리가 열매 맺을 수 있었던 곳인 모교의 성실 정신은 저희들의 가슴마다 살아서 숨 쉴 것입니다.
동창생 여러분! 부디 지금보다 더욱 분투하시어 자랑스러운 저희 모교를 크게 빛내 주시기를 저는 감히 바랍니다.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봄기운을 느끼며 교문을 나서고자 합니다. 저의 소박한 바람이 사랑스러운 후배들의 가슴에 되새김질되기를 빕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후배님들, 저희들이 사회에 나가 열심히 하는 모습 관심 있게 지켜 봐 주십시오.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2002년 2월 8일 졸업생 대표
첫째, 성인 화자의 언어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송사에서 "매우 섭섭하고 아쉬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계주 경기의 선수처럼 배턴을 쥐고 도착점까지 달려왔습니다", "변모해 가는 사회라는 새로운 대열", "낙오됨이 없이 목적지까지", "이룩한 열매요 금자탑", "좌절과 절망, 시련과 고통을 이기고 이룩한 기념비", "가슴 한 구석에 솟구치는 감회", "하물며 3년간 공부하던... 어찌 쉽게 지워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맏형의 의젓함으로...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등의 표현은 일상적인 학생들의 언어라기보다는 성인의 시선에서, 혹은 공적인 연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격식 있는 말투였다.
답사 역시 "졸업이라는 관문까지 이끌어 주신", "특별히 존경할만한 자격도 갖추지 못한 우리들을", "마음이 시원치 않고", "곁길로만 가려고 했던 일들이", "무사히 걸어와 오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기쁨", "망망대해에 던져진 키 없는 돛단배", "부디 지금보다 더욱 분투하시어... 저는 감히 바랍니다",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봄기운을 느끼며" 등 다소 관념적이거나 문어체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둘째, 상투적인 비유와 클리셰의 연속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맺음이 있고...", "계주 경기", "금자탑", "기념비", "영원히 간직되는 추억", "끝은 새로운 시작", "망망대해에 던져진 키 없는 돛단배" 등은 졸업식이나 이별, 시작을 다루는 글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비유와 표현들이었다. 지겹고 예측 가능한 진부한 표현인 클리셰였다. 글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독창적이거나 개성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라고 보기는 어려운 표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 나는 멋진 표현을 생각해 낸 것에 대한 희열도 느끼며 썼었다.
셋째,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 투성이었다.
성실, 품위, 목표, 신뢰와 신용 등 중요한 가치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학생들의 구체적인 경험이나 학교생활의 에피소드와 연결하기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훈계나 당부의 형태로 제시하였다. 특히 답사에서의 '당부' 내용은 졸업생 대표라기보다는 선생님의 강연처럼 들릴 여지가 있었다.
넷째, 개성 없는 '우리'와 '나'를 사용하였다.
글의 주체인 '재학생 대표'나 '졸업생 대표'가 특정 학생의 개성이나 경험을 담아내기보다는, 그저 집단을 대표하는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농고 학생들만이 공유했을 법한 특별한 추억이나 감정선이 드러나기보다는, 어느 학교의 졸업식에 갖다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보편적인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당시 글을 써야 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격식에 맞는 완성된 글을 만들어내야 했고,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의존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는 성인이 대신 작성해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잘 쓰인 어른의 글'이었을 뿐, 정작 그 글을 읽어야 했던 '아이들의 진솔한 마음'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 그 글들을 2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의 시선으로, 그리고 좀 더 학생들의 목소리에 가깝게 재구성해 본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전 글에 비해 훨씬 밝고 가벼워서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재구성된 졸업식 송사]
선배님들, 오늘 졸업식에 저희 재학생들이 섰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보던 선배님들이 이제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엄청 아쉽고 섭섭해요. 왁자지껄했던 교실 복도도, 실습장에서 함께 땀 흘리던 시간들도 눈에 밟힙니다.
저희가 처음 ○○농고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헤맬 때, 선배님들이 웃으면서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고 도와주셨던 거 잊지 않고 있어요. 힘든 실습이 계속될 때도 묵묵히 자기 일 하시는 선배님들 보면서 '아, 선배들은 다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에게는 정말 든든한 맏형, 맏언니 같았습니다.
선배님들이 지난 3년 동안 학교에서 흘린 땀과 노력 덕분에 오늘 이렇게 멋지게 졸업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시겠죠. 설렘도 크겠지만, 아마 걱정도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농고에서 배우고 익힌 솜씨랑 끈기, 그리고 성실함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나가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선배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할 거예요!
저희 후배들도 선배님들 본받아서 남은 시간 학교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농고 이름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아, 가끔 학교에 꼭 놀러 오세요! 저희 어떻게 지내는지도 봐주시고, 사회생활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선배님들, 3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선배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선배님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02년 2월 8일 재학생 대표 올림
[재구성된 졸업생 답사]
오늘 저희 졸업생들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농고 교문을 들어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때 수업 시간에 조금 더 집중할 걸', '선생님 말씀 흘려듣지 말걸' 하는 후회도 솔직히 들어요. 때로는 힘든 실습 때문에 몰래 투덜거리기도 하고, 괜히 친구들과 어울려 딴짓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저희를 포기하지 않고 격려해 주시며 끝까지 이끌어주신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저희들을 선배라고 잘 따라주고 믿어준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너희들이 있었기에 저희도 어깨 펴고 학교 다닐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이제 저희는 정든 교정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지만 사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이 진짜 사회에서 얼마나 쓸모 있을지, 잘 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들아! 먼저 사회에 나가는 선배로서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 준다면... 음... 너무 겁먹지 말고 너희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농고에서 배운 끈기와 성실함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거창한 목표도 좋지만, 오늘 하루 너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분명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주변 친구들, 선생님들, 가족들을 믿고 또 너희 스스로도 믿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렴. ○○농고에서 보낸 시간이 너희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확신해.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사랑하는 후배님들! 저희 졸업생들, 사회에 나가서 ○○농고 졸업생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들의 앞날을 따뜻한 관심으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역시 항상 학교와 후배님들을 응원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2002년 2월 8일 졸업생 대표
재구성한 후 진정한 목소리의 가치 찾기가 되었을까?
재구성된 글들은 원문의 핵심 메시지, 즉 감사와 격려, 미래에 대한 다짐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스럽지 못하고 상투적'이던 점의 개선을 위해 표현과 어투에 변화를 주었다.
보다 구어적이고 자연스러운 문장과 단어 사용, 추상적인 개념 대신 학생들의 실제 감정과 경험에 기반하여 표현하였다.
훈계조보다는 격려와 공감, 특히 답사의 당부 부분은 개인적인 바람을 나누는 어조를 사용하였다.
물론 이 글들 역시 2002년 당시 ○○농고 학생 개개인의 목소리 그대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20여 년의 세월을 넘어 깨달은 '학생다운 진솔함'과 '상투적이지 않은 생동감'이라는 가치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번 회고와 재구성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누구를 위한, 누구의 목소리로 쓰이는 글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의례적인 완벽함 뒤에 가려졌던 학생들의 진짜 목소리. 그것을 이제라도 되살리고 싶었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성찰할 줄 아는 교사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한 조각을 남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