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울타리 안, 마음에 피는 꽃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스승의 날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돌아왔다. 문득 2001년, 풋내 가득했던 첫 스승의 날의 풍경이 아련한 기억의 퇴적층을 뚫고 떠오른다. 중학교 졸업의 냄새를 채 가시지 못한 아이들이 건넸던 작은 정성들. 서툴렀기에 더 빛나던 꽃 한 송이, 맞춤법은 제멋대로였으나 내용은 그 어떤 명문장보다 아름다웠던 편지 한 통.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빚어낸 조약돌 같았다. 그 조약돌들을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며, 우리 식품가공과 아이들이 세상의 거친 물살에 상처받지 않기를 염원했던 기도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특히 그 편지의 주인공, 이제는 학교 대신 삶의 전선에서 중국음식을 배달하며 외로운 새처럼 떠도는 아이의 전화는 마음 한 구석을 시리게 한다. "선생님 실망하지 않게 열심히 학교에 잘 다니겠다"던 그 약속은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허공에 띄워 보내버렸는지, 학교를 떠나던 뒷모습에는 내 간절한 눈빛이 닿지 못했다. 고아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가슴 저미던 아이가, 이제는 귓전에서 슬피 우는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되어버린 현실은 스승의 날의 기쁨 한가운데 슬픔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과거의 순수했던 감사의 표현이 현재의 안타까운 단절로 이어지는 이 아이러니는, 교사의 보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무게로 다가온다.
작년과는 사뭇 달랐던 2002년 스승의 날은 어딘가 기획된 무대 같았다. 학생들이 한데 모여 선생님들께 꽃을 달아 드리는 행사. 학생부장님의 '감사 표현 기회 만들기'라는 교육적 취지 아래 진행되었으나, 솔직히 처음엔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색함과 쑥스러움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상황 파악이 느린 아이들에게 '계획하고 준비한 일의 가치'를 가르친다는 대의명분 아래 약간의 연출자가 되어야 했다. 미리 틀어주는 스승의 날 노래는 배경음악처럼 흘렀고, 아이들의 서툰 합창은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솔한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형식 속에 진심은 숨어들기 마련이다. 우리 반 반장 대종이가 버스 바퀴에 깔린 카네이션 대신 새로 꽃을 사 왔다던 이야기, 그리고 비록 건성이었을지라도 아이들이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들으며 가슴 한편이 뭉클해져 온 그 순간.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살아있는 감정의 파동이었다.
종례 시간, 정신없이 떠들던 아이들이 내 진심 어린 몇 마디에 숙연해지던 그 짧은 침묵. "얘들아, 정말 고맙다... 꽃 준비하지 않은 사람도 너무 고마워. 너희들 마음 선생님은 모두 알 것 같거든." 이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비로소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을 느꼈다. 뒤이어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 몰래 수줍게 내민 작은 선물 꾸러미들은, 규제의 눈길을 피해 숨어 피어난 야생화 같았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착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고 나도 모르게 활짝 웃어버린 나 자신. 그 순간만큼은 형식도, 어색함도, 심지어는 규제의 그림자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교사가 되기 전(-나는 늦깎이 교사였다-), 부모의 입장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준비하며 느꼈던 '겉치레' 같던 마음과는 분명 달랐다. 특히 우리 학교 아이들처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서적 교류의 경험은 교육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첫 해 스승의 날, 텅 빈 책상에 즉석에서 카네이션을 사다 놓아야 했던 씁쓸함 대신, 올해는 아이들이 슈퍼 비닐봉지에 꽃 한 송이를 정성스레 싸서 들고 다니는 모습에서 아이들 세상의 최대치 정성을 보았다. 그것은 값비싼 선물보다 훨씬 무겁고 귀한 마음의 중량이었다.
이제 스승의 날은 과거와 달라졌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대표되는 투명한 울타리 안에서, 과도한 선물이나 불필요한 접대는 사라졌다. 혹자는 이로 인해 스승의 날의 '정(情)'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법의 울타리는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역설적인 힘을 가졌다고. 비싼 선물이나 거창한 행사 없이도, 아이들의 수줍은 눈빛, 서툰 감사 인사, 그리고 비닐봉지 속 시들지 않게 지켜낸 꽃 한 송이 같은 작고 투명한 진심만이 남게 된 것은 아닐까. 감사의 표현은 물질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온도와 노력의 깊이로 측정된다는 사실을, 달라진 스승의 날이 오히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긴 시간이 건너온 올해 스승의 날,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며 소박한 식사를 했다. 함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마음의 땔감이 되어주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가슴 가득히 담으며, 오늘 하루의 설렘과 감동을 조심스럽게 기억의 보물 상자에 담아둔다. 이처럼 법의 울타리 안에서도 마음에 피어나는 꽃들을 마주하는 설렘이 있기에, 외로운 새처럼 떠도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소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