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풍착륙

단편소설

by 김주영

광활한 캘리포니아의 대지가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으며 몇 시간 전만 해도 서쪽 하늘의 끝머리에 겨우 보인 실오라기 같았던 구름은 거침없이 대륙을 가로질러 어느 순간 그의 주변을 에워싸게 되었다. 이제는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비행기의 고도를 낮추어 공항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십 분 정도가 지나자 산이 나타났고, 산 정상이 가까워져 가자 찬호는 무선통신을 시작하였다.


"리버모아 타워. 여기는 세스나 237기. 리버모아 공항으로부터 북동쪽 10마일에 있습니다. 공항 착륙을 요청합니다."


"세스나 237기. 여기는 리버모아 타워. 계속 들어오다 5마일 위치에 오면 다시 알려 달라."


"리버모아 타워. 세스나 237기입니다. 5마일 지점에 도착하면 다시 교신하겠습니다."


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의 터빈들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순간 비행기 동체가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을 쳤고 찬호는 조종간을 잡고 산 정상을 완전히 넘어가기 전까지는 균형을 유지하려고 최대한 애를 써야만 했다. 땅의 지열이 하늘로 솟구쳐 생기는 현상으로 요즘 들어서 이 방향으로 비행할 때 종종 겪을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샌프란시스코 만까지 평지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목적지인 리버모아 시가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계속 나아가고 있으니 조종석 왼쪽에서는 동쪽으로부터 접근하는 비행기가 눈에 띄었다. 아마 씨에라 산맥 근처까지 갔다 온 훈련기일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리버모아 타워. 세스나 237기입니다. 공항에서 동북쪽 5마일입니다."


"세스나 237기. 여기는 리버모아 타워. 오른쪽 활주로를 사용하라. 세스나 237기의 순서는 4번째다."


찬호는 창문을 통하여 다른 3대의 비행기를 곧 찾을 수 있었고, 착륙을 위한 패턴 경로 상에 진입을 곧 시작하였다. 활주로에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선회를 하였고 그 뒤로는 저 멀리 앞서 가고 있는 바로 앞 순서의 비행기를 따라 활주로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상에서 불과 삼 미터 정도 상공에서 마지막으로 기수를 들어 올리자 비행기의 뒷바퀴는 부드럽게 활주로 터치다운에 닿았다. 오늘은 소프트 랜딩이었다. 속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자 브레이크를 조금씩 밟기 시작했고 조금 뒤 활주로의 왼 편 도로로 빠져나왔다.


“리버모아 그라운드. 세스나 237기입니다. 활주로를 나왔습니다. 주기장까지 활주를 요청합니다.”


“세스나 237기. 여기는 리버모아 그라운드이다. 주기장까지 곧장 활주 하라.”


주기장까지 러더를 밟으며 비행기를 지상에서 몰아갔고 도착하자 시동을 끄고 내렸다.


"찬호. 축하해! 첫 단독 비행은 어땠어?"


비행교관인 찰스가 그에게 엄지를 척 치켜세워 주더니 악수를 청하여 왔다.


"굉장했어요. 제 인생에 잊지 못할 비행일 거예요."


"사실 나는 굉장히 걱정했어. 예상했던 시간보다 삼십 분 넘어서 말이야. 다시 오기 싫을 정도로 신이 났던 모양이야."


오늘 어쩌면 찰스가 단독 비행을 승인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고 나왔지만 막상 그가 단독 비행 승인 서명을 해 주고 비행기를 내린 순간 찬호는 솔직히 눈앞이 캄캄해졌던 게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찰스 교관과 같이 앉아 있던 조종석에서 그 순간부터 이 쇳덩어리를 혼자 몰고 하늘 위로 올라가서 몇 시간 동안 비행하다가 다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활주로까지 활주 하여 바로 이륙한 지 얼마 동안은 훈련한 내용이 몸에 배어 있어서 기계처럼 그의 몸은 조종석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막상 이륙을 한 후 드넓은 창공으로 비행기를 몰고 올라간 뒤로는 두려움과 공포가 없어져 버렸고 마치 어린 새가 처녀비행을 하는 것처럼 기쁨과 환희를 맛보고 내려왔던 것이다. 비행에서 자신감이 붙은 그 어린 새는 첫 단독 착륙도 무대 위의 발레니라처럼 우아하게 해냈다.


찬호와 찰스는 주기장에서 비행학교 건물까지 환하게 웃으며 얘기를 나누면서 걸어왔다. 건물 안에 들어오자 대기하고 있던 훈련 동기들이 찬호에게 다가왔다.


"와! 너 표정을 보니 오늘 드디어 단독 비행을 나갔던 모양이구나. 축하해!"


"응. 고마워. 오늘은 어쩌면 찰스 교관이 서명을 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거든. 어제 비행할 때 찰스가 내 착륙에 흡족해하더라고. 근데, 오늘 막상 혼자서 비행기 몰게 된 순간은 어찌나 떨리던지 사실 혼이 났어."


단독 비행을 먼저 나갔던 동기들은 이제 한 명 더 자신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고, 아직 나가지 못한 이들은 부러움의 얼굴로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내일은 너희들도 단독 비행 나갈 수 있을 거야. 힘내라! 파이팅!"


찬호는 그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기고는 머그컵에 커피를 부어 건물 밖으로 나와서 앞마당에 있는 큰 나무 밑으로 걸어 나왔다. 조금 뒤에 경식이가 따라 나와서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찬호 형. 축하해! 형이 요즘 비행이 부쩍 늘게 되었다고 소문을 들었거든. 그래서 오늘은 형도 혼자 비행하고 올 거라고 기대가 되었어."


"고마워. 경식아. 넌 어떻게 되어가니? 너도 내일 나갈 수 있을 거야.


찬호는 경식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찬호 형. 실은 오늘 훈련 감독관과 얘기를 나누었어. 나 이제는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야."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감독관이 사무실로 불러서 가보니까, 내가 단독 비행을 나가지 못해서 더 이상 훈련을 실시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행에 적성이 없었나 봐. 비행교관이 서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훈련시킨 결과를 보면 단독 비행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본인이 서명을 못 해주겠다고 했나 봐. 어쩌면 모레 정도에 한국으로 들어갈 것 같아."


찬호는 머리가 띵 해 오며 말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훈련 동기들과 여기 비행학교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자 훈련생들 간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경식은 한 달 전부터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 사실이었다. 동기들이 경식을 많이 챙겨주고 위로해 주려고 했지만, 본인들도 훈련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을 반짝 차려야 했으며 솔직히 경식이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였던 것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가게 되자 경식의 미국 비행교관과 감독관은 오늘 그렇게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경식아. 너 지금 정말 힘들 것 같다. 마음이 좀 그렇지?"


"아니야. 형. 내가 뭐 적성에 안 맞은 거지. 행정이나 사무직이 사실 나에게 맞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하려고 한지 모르겠어. 암튼, 그동안 마음이 그랬는데, 오늘 이렇게 결정되고 나니 오히려 속 시원해."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경식이의 눈은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의 훈련 중단이 결정 나던 날에 찬호는 첫 단독 비행을 하였던 것이어서 찬호의 마음은 더 아파 왔다. 공기 중에 수분이 거의 없는 듯이 느껴지는 하늘에서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이 둘의 머리 위로 그 빛과 열기를 내려 붓고 있었다.


며칠 뒤에 경식은 한국으로 떠났다. 동기들은 아파트 밖으로 모두 나와서 감독관의 차를 타고 떠나려는 그를 배웅해 주었다. 오히려 경식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조종사로서의 꿈을 안고 어렵게 이 세계로 들어온 한 젊은이가 인생의 좌절을 맛보고 떠나는 쓸쓸한 뒷모습이었다. 그가 애써 태연한 척한다는 것을 남은 자들은 알고 있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본인들도 저렇게 되지 않도록 각오를 마음속으로 다지고 있었다.


단독 비행을 나가게 되면 그 이후는 특이한 경우가 없으면 비행훈련의 최종까지 갈 수가 있고, 앞으로 제트 엔진 비행기 조종훈련을 추가로 거치면 민간항공기 부조종사로서 꿈에 그리던 파일럿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들어왔었기 때문에 남은 비행학교 훈련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동기들은 더욱 자신감이 붙으며 비행을 할 수가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살아나고 있었다. 훈련에 모든 시간을 빼앗겨 왔지만 이제부터 미국의 비행학교를 떠날 때까지 주말을 이용하여 최대한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동기들도 생겨 나게 되었다. 차를 렌트하여 샌프란시스코 등을 여행하고 오는 경우도 잦아졌으며 심지어는 저 멀리 산타모니카까지 다녀오는 이들도 있었다.


"찬호야. 내일 토요일 아침 일찍 렌터카로 3명이 여행 다녀 올 거거든. 한 명 더 타도 되니까, 너도 같이 가자."


동기 중 한 명이 금요일 훈련이 마치자 말을 걸어왔다.


"아니야. 나는 좀 더 있다 갈래."


"너. 아직 샌프란시스코도 놀러 갔다 오지 못 했잖아. 이제부터는 좀 여유를 가지고 훈련받아도 되잖아."


찬호도 마음은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의 경제적 사정은 그리 녹녹지 못하였다. 동기들은 집안 사정이 넉넉하여 온갖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여기서 받는 얼마 되지 않은 돈을 저축하여 다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 훈련이 완전히 마칠 때까지 거처할 집을 구하거나 생활할 자금을 모아야 했던 것이다. 자신과 달리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동기들이 부럽기도 하였지만 찬호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찬호의 비행기술은 나날이 더 늘어가고 있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비행기술에 관한 이론서를 거의 습득해 나갔고, 실제 비행훈련이 없는 시간은 책상에 앉아 상상 비행을 통하여 시뮬레이션을 거듭해 나갔다.


"찬호! 오늘 바람이 좀 세게 불긴 하는데, 착륙 한번 해 볼래?"


찰스가 조종석 안에서 물어보았다.


"좋아요. 한번 해 보겠습니다. 공항 주변 기상정보를 들어 보니까, 활주로 상에서 측풍이 좀 세게 불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이상이면 교관이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직 그 수준은 아닌데 말이야. 훈련생에게 완전히 맡기기도 어중간한데... 한번 찬호가 착륙을 해 봐! 옆에서 지켜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마지막에 내가 조종간을 잡든지 아니면 다시 이륙해서 선회 비행하자고!"


"찰스. 좋아요. 한번 해 보겠어요."


"그전에 저 구름 사이에서 360도 급선회 비행 훈련 한 번 더 하고 내려가자고."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는데, 그 구름 사이에는 큰 구멍이 난 듯이 뻥 뚫려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공간으로 비행기를 몰고 가서 찬호는 왼쪽으로 360도 급선회를 시작할 준비를 하였다. 조종간과 러더를 사용하여 기수를 왼쪽으로 사십도 넘게 기울였고 고도가 내려가는 것을 상쇄시키기 위하여 기수를 약간 들어 올렸다. 이윽고 360도 급회전이 시작되었다. 저 멀리 지평선이 조종석 창문 밖으로 일직선을 그리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360도가 다 되어 가자 다시 그는 기수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수평으로 비행기를 돌려놓았다. 그리고 몇 초 후에 비행기 동체의 오른쪽이 뭔가에 쿵하고 부딪혔다.


"어. 이게 뭐죠? 찰스"


"찬호. 완벽한 360도 급선회 회전을 하면 공기 터널이 생기게 되어 그 터널 속을 채우며 따라온 공기들이 비행기 반대편에 부딪힌 거야. 네가 아주 잘했다는 거야."


"다 찰스 덕분이죠."


"잘했어. 이제 내려가서 착륙하도록 하지. 한번 해봐."


공항에서는 활주로상에 측면 바람이 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정보를 계속 보내 주고 있었고 착륙 시 유의하라고 추가로 덧붙였다.


활주로에 직선을 맞추고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고도를 낮추어 가자 오른쪽 측면에서 세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하여 비행기가 왼쪽으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활주로가 저 멀리 보이고 있었고 비행기는 그 일직선 상에서 왼쪽으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론서에서 보고 상상 비행을 통하여 연습한 대로 다시 비행기를 활주로와 일직선 상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그 선 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오른쪽 러더를 힘껏 밟아 비행기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하였다. 덕분에 오른쪽 측면 바람의 힘에 저항하며 왼쪽으로 더 이상 밀리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활주로 상에 비행기가 오게 되자, 찬호는 다시 비행기의 머리를 왼쪽으로 오게 하고 나서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움직여 기수를 바람 방향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오른쪽 바퀴가 활주로에 먼저 닿았고 그다음에 왼쪽 바퀴가 닿았다.


"찬호! 대단해! 측풍 착륙도 오늘 해 내었군."

주기장에 비행기를 정지시키고 엔진을 끈 후 비행기에서 내리자 찰스는 또다시 한마디 칭찬을 해 주었다.


​그 후 찬호의 측풍착륙 성공 이야기는 동기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금요일 밤에 동기들 간에 파티가 있던 날 밤이었다. 그날 파티는 동기 모두가 단독 비행을 마치고 얼마 뒤에 벌어진 축하자리였다. 맨 처음 그리고 맨 마지막 단독 비행을 나간 동기들은 샴페인으로 물세례를 받는 재미있는 관경도 벌어졌다.


"애들아. 이번 주에 찬호가 우리들 중에 유일하게 측풍착륙에 성공했어. 모두 축하해 주자. 측풍착륙은 아직 우리에게는 고급 기술이잖아."


"찬호. 주말에 놀러도 안 가고 조종 이론서 공부하더만 드디어 우리 중에 탑으로 나간 거야?"


"아니야. 애들아. 그냥 운 좋게 성공한 거야. 뭘 그걸 가지고 내가 탑이라고 말하는 거야?"


하지만, 찬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동기들은 술에 취해서 금요일 밤을 흥겹게 보내고 있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민혁이 그에게 다가왔다.


"요즘 너 상당히 잘 나가는 거 같더라, "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그냥 다른 애들처럼 열심히 비행훈련 따라가는 것뿐인데."


"경식이 한국에 돌아간 이후로 연락은 해 봤니? 너 대학 후배잖아."


"아니. 연락 못 했어. 우리 모두 바빴잖아. 민혁이 너는 경식이와 연락해 봤니?"


"나는 간간히 통화해. 그 녀석이 여기 떠날 때는 쿨하게 떠났는데 말이야. 한국에 돌아 간 이후는 지금 마음고생이 많은 것 같아. 아직도 마음은 여기에 있는 것 같던데."


"그러게 말이야. 파일럿이 되고 싶어서 갖은 고생하며 여기에 왔을 텐데."


"너는 그런데 어찌 그리 무심하게 후배한테 전화 한 통 안 해 주냐?"


찬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경식이 한국으로 간 뒤에 오히려 그는 비행에 더 재미가 붙어서 신이 나게 되었고 요즘 들어 실력이 월등하게 늘게 되어 후배의 근황도 잊어버릴 만큼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찬호야. 나는 근데, 점점 더 이 집단생활에 흥미가 없어져 간다. 더욱이 경식이가 한국으로 떠난 이후로 말이야."


"민혁아! 약한 마음먹지 마!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단독 비행 나갔잖아. 그게 말이야. 우리 중에서 네가 에이스라는 뜻이야."


동기들과 다르게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하여 이곳이 아니면 또다시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성격이 싹싹하거나 융통성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어쩌면 조종사 훈련을 열심히 받아서 이후 파일럿으로 돈을 벌며 사는 것이 본인의 천성에 맞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았다. 방에 돌아가서 경식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망설였지만 쉽게 수화기가 잡히지 않았고 약한 마음을 더 추슬러 보겠다고 각오를 다져 보기만 하였다.


그 다움 주부터 민혁은 변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담당 비행교관과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교관의 지시에 딴지를 거는 행동을 되풀이하였다. 훈련생 모두가 이십 대 중후반의 한창 젊은 나이였으므로 이러한 다툼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달라진 행동은 몇 주 동안 일관되어 갔다. 서서히 미국 교관으로부터 비행학교 교장 및 훈련 감독관에게 보고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감독관은 민혁의 아버지가 같은 회사 비행기 현직 기장이자 조종사 선배임을 감안하여 최대한 민혁의 행동을 이해하고 방어해 주었지만 비행 규정을 어기는 행동까지 생겨버리자 그도 상당히 곤란해져 버렸다.


어느 날 오후, 비행기들이 활주로로 진입하기 위해 공항 부근의 하늘에서 줄을 지어 패턴 비행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민혁이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속도를 줄이는 일이 발생해 버린 것이었다. 공항 관제탑에서 속도를 줄이라는 아무런 지시도 없는 상태였고, 활주로에 진입하기 위해 비행기들이 어느 정도 근접하여 줄을 지어 나아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칫 하면 공중에서 항공기 충돌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관제탑에서 다급하게 무선통신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스나 432기. 여기는 리버모아 타워.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속도를 늦추지 말고 그대로 비행하라."


민혁의 옆에 앉았던 미국 교관이 재빨리 무선통신 버튼을 누르더니, 그냥 실수로 인한 조작이었다고 임시방편으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무선통신 버튼에서 손을 떼더니 민혁을 보며,


"젠장. 도대체 무슨 염병할 짓을 한 거야?"


라고 고함을 질렀다.


비행기가 주기장에 도착한 이후로, 미국 교관은 민혁을 쳐다보지도 않고 화를 내며 비행학교 건물로 곧장 가 버렸다. 민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헤드셋과 비행 가방을 챙겨서 천천히 따라왔다. 비행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 간 교관은 곧장 비행학교 교장 방으로 직행하였고 곧이어 감독관도 교장 방으로 들어가게 되어 이내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다음 주에 민혁의 한국행이 결정되었다. 훈련 동기들 중에 최고 에이스였던 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종 결정은 민혁의 의지가 가장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그의 아버지가 최대한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비행훈련을 그만두려는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식이가 떠나던 그날 밤처럼 민혁도 트렁크를 밀며 아파트 앞마당에 세워 놓은 감독관의 밴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뒤를 돌아보며 나머지 동기들에게 외쳤다.


"같이 지내서 즐거웠다. 잘 지내라!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해!"


집에 돌아가는 아이처럼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으며 밴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까지 타고 가며 아버지의 파일럿 후배 정도 되는 감독관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경식과는 달리 민혁은 본인이 원해서 떠나는 입장이었으므로 여기에 남은 동기들은 차가 떠나자 바로 본인들의 숙소로 들어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찬호는 미국 성당의 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놓아둔 자전거에 올라 타 페달을 밟아 나갔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몇 주 전부터 감독관이 다니는 한인 교회를 그만 나가게 되었고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성당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다시 성당에 가고자 리버모아 시내에 있는 미국 성당을 나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동기들 중에 친했던 두 명이 한국으로 가버리게 되자 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몹시 아팠고 그들을 한국으로 보낸 감독관의 교회를 그만 나가고 싶어 졌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혼자서 일요일마다 성당을 나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자 동기 중 한 명인 우식은 그에게 충고하였다.


"찬호야. 가뜩이나 분위기가 그러니까, 감독관 교회로 다시 나와. 그래도 감독관이 여기서는 우리 생사를 좌우하고 있잖아. 한국 가서도 몇 년 후에는 우리가 비행기 기장으로 모시게 될 인연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 생활과 개인적인 신앙생활은 별개라는 원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종교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어느 교회를 나가는지에 대하여 회사 상사라고 하더라도 눈치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해."


"야. 그래도 감독관이 한인 교회에서 집사를 하며 교회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잖아. 원래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감독관이 말이야. 나도 군대에 있을 때 훈련 좀 빠지려고 교회 나갔던 게 다인데, 여기서는 눈치껏 일부러 나가는 거 몰라?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래. 교회 한 번도 안 가본 동기들도 감독관 때문에 나가고 있더라."


"일요일에 청년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일들이 많잖아. 여기 한인교회가 노인네들이 많아서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일해 주고 하면 감독관 위신이 높아지잖아."


"음. 그런데 말이야. 그건 좀 너무 눈치 보고 나가는 거 아니야? 나는 좀 그런 거 싫더라."


찬호는 고지식하게 동기의 말을 흘러들어 버렸다.


비행훈련은 어느덧 계기비행 과정으로 들어가기 전의 막바지 훈련 과정에 집중되어 가고 있었다. 미국 교관 한 명 당 세 명의 훈련생이 소속되어 있었고, 각 교관들은 소속 훈련생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연습이 한창이었다. 캘리포니아에 겨울이 찾아오자 그동안 건조했던 날씨는 우기로 접어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비행훈련이 지상 교육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비행할 수 있는 날은 비행시간을 늘려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비행기를 몰고 올라갔던 온 날이면 모두가 신경을 바짝 쓰고 조종을 해야 했으므로 그날 저녁은 모두들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조종면허 이론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저녁에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읽어 나가야 했다. 모두들 힘든 시기가 시작되는 듯했다.


그런데, 찬호는 요즘 들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훈련생들에 비하여 본인의 훈련 과정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비행이 교관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동일한 과정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동일한 과정의 훈련이 더 되풀이되자, 자신이 크게 잘 못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찰스가 자신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는 찬호가 너무 답답하여 찰스 교관에게 물어보았다.


"찰스. 이거 2주 넘게 계속하고 있잖아요? 제가 어떤 점이 문제가 있는 거죠?"


"찬호. 착륙할 때 조금 보완해야 될 것 같아."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은 착륙과 상관없는 과정이 아닌가요?"


"그냥 이유가 있으니까 내가 훈련을 되풀이시키는 거야."


찰스는 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대답해 버리고는 나가 버렸다. 찬호는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은 찰스가 이상스럽게 생각되었고 또한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흐르자, 찬호의 훈련과정은 다른 동기들에 비하여 한 달 정도가 뒤쳐지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초조해져 왔으며 머릿속은 괴로워져 갔다.


어느 날은 비행학교 교장이 그와 같이 비행기를 타며 그의 조종실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미국 교관보다 나이가 많아서 교장은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이었다.


"찬호. 오늘 나에게 실력을 한 번 보여 줘. 요즘 훈련에 진척이 없다고 들었는데, 뭐를 고쳐줄 수 있는지 내가 봐 줄테니까."


비행학교 교장과 단 둘이서 비행기를 탄 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찬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는 교장이 말한 것처럼 정말 훈련생이 미비한 점을 경험이 많은 교장이 직접 보고 고쳐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훈련생을 퇴소시키기 위한 준비 절차로서 대상이 되는 훈련생의 결함을 체크리스트에 교장이 직접 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찬호로서는 여간 마음이 부담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다. 그 전날부터 마음이 안정이 안되었지만, 지금으로 서는 그동안 배웠던 훈련을 최대한 집중해서 교장에게 보여주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하였다.


미국 교장은 비행기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 동안 그의 조종 전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고, 뭔가 발견한 게 있을 때면 가져온 체크리스트에 기록하기를 되풀이하였다. 찬호는 이런 모습을 보면 단점이 지적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꿋꿋이 비행 과정을 모두 마쳐냈다. 비행기에서 내려 교장과 그는 비행학교 건물까지 말없이 걸어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다른 동기들이 그와 교장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교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감독관의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한참 후에 교장이 문을 열고 방을 나왔고 찬호와 눈이 마주쳤지만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따라 나온 감독관은 그를 보자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어 버리고는 눈을 돌려 버렸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찬호는 더 답답하기만 했다.


다음 날 비행훈련을 마치고 교관 사무실에 같이 앉은 그에게 찰리는 말했다.


"찬호. 어제 교장과 비행을 했지? 나도 사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몰라. 내가 너를 그동안 가르쳤잖아. 네가 잘 못 되면 나도 안 좋은 거야. 다행히 교장이 오늘 아침에 나에게 말하던데, 몇 가지 보완해야 할 것은 있지만, 아직 조종훈련생인 점을 고려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어. 대체로 결과가 괜찮더라고 했어."


교장의 평가를 듣고 싶어 했던 찬호로서는 찰리의 말에 일단 안도의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과정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제는 다른 동기들과 훈련과정이 한 달 넘게 격차가 나서 제가 좀 열심히 따라 나가야 될 것 같아요."


"지금 다른 훈련생들이 나가고 있는 과정도 지금까지 배운 것에 약간 더 다듬는 것일 뿐이야. 찬호 정도면 지금 한 달 과정은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여기까지 말하고는 찰리는 찬호의 얼굴을 진지하게 보았다. 뭔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그런 눈치였다. 속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가 지금까지의 대화 내용을 넘어서서 정보를 주는 것은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무리라는 것을 눈빛으로서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계기비행 과정으로 진입하기 위한 새로운 훈련과정은 시작하지 않은 채 찰스는 찬호에게 지금까지 배운 훈련과정만 계속 되풀이하였다. 서서히 찬호는 지쳐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시간은 이제 두 달째 접어들게 되었다. 다른 동기들은 이러한 그의 상황을 안쓰러워하였지만, 자신들끼리 그날의 비행훈련 과정을 얘기하며 무용담을 나누다가 그와 마주칠 때는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에 찬호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들은 이미 계기비행 과정으로 진입하였고, 요즈음은 야간비행을 위해 저녁시간에도 숙소에 없는 시간도 자주 있었는데, 그러한 저녁이면 찬호는 텅 빈 아파트에 혼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어느 주말 토요일 밤에 동기중 한 명인 대식이 그에게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였다.


"찬호야. 너 요즘 너무 힘들지? 우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라. 아마 감독관도 이제는 너도 계기비행 과정으로 넣어 주겠지."


찬호는 대식의 말에 힘없이 웃었다.


"대식아. 여기 레스토랑 스테이크 맛이 정말 좋구나.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어?"


"이번에 계기비행 과정에 들어오면서 축하한다고 동기들이 모두 여기에서 몇 주전에 모여 식사했지."


대식은 생각 없이 말해 버렸지만 이내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 차린 듯이 말을 돌렸다.


"인마! 너 요즘 너무 힘이 없어. 남자는 이런 어려움도 이겨내야 하는 거야. 그래야 파일럿이 될 수 있어. 네가 아마 나중에는 우리들 중에서 제일 잘 될 거야."


"대식아. 그렇게 미안해할 것 없어. 오늘 같이 식사해 주는 것 만해도 나는 고마워. 요즘 다른 녀석들도 나를 보면 불편해서 슬슬 피하더라고. 나 충분히 이해해! 그리고 경식이도 그때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은 이해가 되네."


"마음 약하게 먹지 마라. 스테이크 먹고 힘을 내!"


"대식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무엇이라고 이제 어렴풋이 생각이 들어. 나중에 그게 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가 그 자리에서만 자꾸 정체되고 있는 것 말이야. 아마 이제 곧 정리가 되겠지."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의 예상치 못했던 기상 때문에 훈련생들은 지상교육으로 훈련이 대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찬호는 헤드셋과 비행 가방을 들고 감독관과 교장을 모시고 훈련기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건물로 나오기 전에 교장이 감독관에게 날씨가 안 좋으니까 비행 날짜를 다음 날로 미루자고 제안하는 것을 보았지만 감독관은 더 지체할 수 없다고 강행하자고 말하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주기장에 도착하고 세 명이 비행기에 올라 타자 찬호는 시동을 걸고 매뉴얼에 따라 계기판들을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왜 선글라스는 안 끼는 거냐?"


감독관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며칠 전에 분실하였습니다. 새것을 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맨 눈으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찬호는 조용히 한 숨을 쉬며 대답을 하였다.


"파일럿이 선글라스 없이 조종을 하냐? 기본이 안 되었군."


감독관은 조종석 뒷 좌석에 앉아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고, 그 말은 칼이 되어 찬호의 가슴을 저며 들고 있었다. 교장은 조종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한국말로 대화를 그만하고 이제부터는 모든 말을 영어로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궂은 날씨 때문에 훈련기들은 주기장에 거의 주차되어 있었고, 그가 조종하는 훈련기만이 쓸쓸하게 활주로까지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상에서 부는 바람도 심하였으므로 지상 활주를 할 때에도 조종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활주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찬호는 신경을 써야만 했다. 드디어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륙하여 짙은 회색의 하늘로 올라갔다. 비까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여 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으로 비행기를 몰아갔고, 교장이 지시한 위치에 도착해서는 그동안 배웠던 훈련과정의 모든 것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동기들 모두가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있었던 비상착륙 훈련까지 이어 나갔다. 들판의 50미터 상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아직까지 크게 특별한 실수가 없자 감독관의 표정은 경직되어 나갔다. 2시간 정도의 훈련과정 테스트가 마치고 이제는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길만이 남았다. 공항으로 돌아올 때 넘어야 하는 산 정상의 거대한 바람개비 날개 몇 개는 거센 풍속으로 부러져 있었고 그 잔해는 산 능성이를 따라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찬호는 조종간의 무선통신 버튼을 누른 채 헤드셋을 통하여 리버모아 관제탑을 불렀다.


"리버모아 타워. 여기는 세스나 237기입니다. 공항에서 북동쪽 방면에서 볼케이노 산을 넘고 있습니다. 착륙을 요청합니다."


"세스나 237기. 여기는 리버모아 타워. 지금 공항으로 접근하고 있는 다른 비행기는 없다. 계속 쭉 접근하라. 활주로에 바람이 세니 평소와는 다른 270도 방향으로 내려라. 그리고 왼쪽 측풍이 심하다. 활주로에 와서는 바람의 방향이 갈지자 형식이니 최대한 집중해라. 착륙이 실패할 것 같으면 다시 고 어라운드(다시 이륙하여 착륙을 시도하는 것)하도록 하라."


평소보다 리버모아 관제탑의 교신내용은 길었다.


"리버모아 타워. 여기는 세스나 237기입니다. 활주로 270도 진입방향까지 곧장 진입하여 조심해서 착륙하도록 하겠습니다."


찬호는 교신을 끊고 공항 쪽을 바라다보며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비행기를 몰고 내려갔다. 20분 정도 지나자 활주로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거세어 고도계상의 고도가 위아래로 심하게 움직였다. 맞바람을 맞으며 비행기의 고도가 갑작스럽게 올라가는 것을 본 찬호는 기수를 낮추어 고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온갖 사투를 벌였다.


드디어 활주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왼쪽에서 측풍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비행기는 활주로와 일직선상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밀리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럴 때마다 찬호는 왼쪽 러더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서 비행기를 바람에 밀리지 않게 온갖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바람의 방향은 예측이 힘들 정도여서 활주로 위까지 비행기를 몰고 온 것 만해도 거의 기적이었다.

활주로 상에 오자 마지막 착륙을 위하여 왼쪽 러더 페달에서 발을 떼어 다시 기수를 왼쪽에서 활주로와 정방향으로 돌렸고, 방향타를 왼쪽으로 돌려 기수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비행기 머리를 조금 들어 올리자 비행기는 활주로로 급하게 떨어졌다. "쿵"하고 착륙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지만 충격이 어느 정도 있었다. 하드 랜딩이었다. 오늘 같은 악천후에서는 소프트 랜딩으로 착륙하여 활주로에서의 활주거리가 길었다가는 사고의 위험성이 있었으므로 하드 랜딩이 오히려 더 나았다고 찬호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교장은 감독관에게 자기 방으로 잠깐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잠시 후 교장의 높은 언성이 들렸고, 이런 날씨에 비행을 하자고 한 감독관을 몹시 책망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에 감독관은 교장 방을 나왔고 찬호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 방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말했다.


"너. 오늘 착륙이 그게 뭐니? 하마터면 크게 사고 날 뻔했잖아? 나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는데, 부상당하거나 죽으면 누가 책임을 지냐?"


"죄송합니다. 오늘 너무 바람이 거세어서 측풍착륙이 순조롭지 않으리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거센 바람에도 활주로 정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옆으로 밀려나도 갖은 고생을 하며 계속 다시 정방향으로 들어오기를 되풀이하며 활주로까지 왔습니다. 마지막에 하드 랜딩은 활주로 바로 위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소프트 랜딩 했다가는 활주로 상에서 더 밀려 버려서 위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너 여기서 많이 배웠구나."


찬호의 솔직한 대답에 감독관은 다소 주춤해지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조금 뒤에 감독관은 머그 컵에 검은색 아메리카노를 부어 찬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머그 컵을 그에게 내밀며 눈을 감은채 조용히 말했다.


"찬호야. 이제 그만하자..."


오늘은 어쩌면 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나온 찬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결정 났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감독관은 대답이 없었고 조용히 한 숨만 내 쉬었다.


그날 밤에 찬호는 찰스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감독관의 방을 나온 그를 보고 찰스는 자기가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였고, 퇴근 후에는 자신의 차로 찬호를 태우고 자기 숙소가 있는 오클랜드까지 왔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으므로 서로에게 부담이 없는 날이었다.


"찬호. 오늘 술은 네가 원하는 만큼 살 테니까. 부담 없이 마셔!"


"찰스. 근데, 이상하게도 오늘 비행은 내 평생 최고였던 것 같아요. 내가 단독 비행을 나간 그 날 보다도 더 잘한 것 같아요. 하하!"


술에 취해 긴장이 풀려 그는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미친놈들! 오늘 같은 날씨에 비행을 하다니 정신이 나갔어. 사실 오늘 같은 날씨면 교관들도 일부러 비행을 안 가거든. 근데 그런 악천후에도 너는 오늘 정말 잘한 거야."


"쫓겨 나가는 날의 비행이 대성공이었으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찰스는 찬호의 눈을 잠깐 측은하게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비행을 못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야! 이 점은 분명히 명심해라. 안 그러면, 너는 인생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평생 살 수가 있어. 나는 그게 걱정이야."


"하하. 이러나저러나 이제 비행은 끝난 거잖아요. 뭐가 달라요?"


"나는 네가 비행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가르쳤잖아. 누구보다도 사실은 너를 아끼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나도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그게 내가 제일 슬퍼하는 거야."


"무슨 뜻이죠? 지금까지 저에게 잘해 줬잖아요."


"네가 떠나게 되는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희 회사 사정 때문이야. 지금 비행학교 체계 내에서는 교관 한 명당 조종훈련생 세 명이 한 팀이잖아. 너 앞에 두 명이 가 버렸으니까 회사에서는 이 시스템대로 앞으로 계기비행까지 몰고 가면 비효율적인 거야. 훈련생 한 명을 줄이면 교관 비용 한 명을 줄일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네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문제였던 거야."


찬호는 지금까지 몰랐던 내막을 듣게 되면서 마음이 더 아파 왔지만 이제는 모든 게 결정된 뒤였다.


주말에는 동기들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큰 밴을 렌트하여 샌프란시스코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여행을 동기들이 챙겨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온갖 아름다운 경치들을 구경하였고, 금문교도 걸어서 건너 보았다. 그리고 언덕을 뛰어가서 전차를 타 보기도 하였다. 고생을 같이 하는 동기들이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서로 경쟁자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리된 이 마당에서 그들이 고마웠다. 아직 한국에 있는 집에는 그가 비행을 그만두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연락을 못 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대식이는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잔뜩 꺼내어 찬호에게 내밀었다.


"찬호야. 너 아직 한국에 전화 못 했지? 저기 공중전화 박스가 있으니 지금 국제 전화해라. 한국은 아직 낮이잖아."


그는 대식이 내민 동전을 받아 전화박스로 가서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며 어서 빨라 귀국하라고 말씀하였다. 순간 찬호는 눈물이 흘렀다.



월요일 밤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있었다. 어김없이 감독관은 밴을 밖에 대어 놓고 찬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호는 아파트를 나왔고, 대식이가 대신 끌고 온 가방을 받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너도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앞으로 계속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얘들아. 너희들도 항상 건강하고 몇 년후에는 너희들이 모는 비행기에 내가 승객으로 탈 테니까, 부디 잘 훈련받아라. 너희들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찬호는 감독관과 같이 리버모아 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한 시간 가량을 차로 이동하였다.


"찬호야. 여기 일은 이제 잊어버려라. 그리고, 너희 집이 넉넉지 않은데, 너 성격은 오히려 대쪽 같구나. 사회생활하면서 때로는 융통성도 발휘하고 굽힐 줄도 알아야 되는 거야. 하지만 너 같은 성격도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감독관이 불필요한 말들까지 하고 있는 것이 불쾌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생활을 통해 조직생활에서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동안 알게 된 찬호는 그에게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팅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찬호는 감독관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그동안 감독관님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결정이 되었는지를 저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내시기까지 감독관님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저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정리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가족들과 건강하세요."


그는 가방을 끌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창을 통하여 밖을 바라보았다. 보슬보슬 밤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창문을 적시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의 마음과 너무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으며 하늘이 대신하여 울어준다고 느낌이 들었다. 젊은 날에 스스로 선택하여 들어온 길에서 실패를 맛보고 가는 길이었다. 다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걱정이 몰려왔다. 갓 비행을 배운 어린 새는 얼마 동안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다쳐서 이제는 날개 짓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갑자기 그는 혼자 말로 외쳤다.


"나는 다시 날 수 있을 거야. 그래 다시 날자. 바람 때문에 옆으로 밀리기는 했지만 나의 삶을 찾아서 다시 제자리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마치 측풍착륙처럼 말이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나는 너무 젊다. 젊다는 게 유일한 한 밑천이잖아. 다시 한번 날아 보자꾸나."(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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