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단편소설

by 김주영

"2020년 7월 말 무렵에 썼던 저의 단편소설 습작인 '푸른 하늘'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7월 말이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시간인데, 2020년은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몹시 비가 많이 왔던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코로나의 해로 기억될 2020년,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띄워 봅니다."

※ 소설 속에 나오는 음악들을 들어 볼 수 있도록 해당되는 부분에 유튜브 링크를 하였습니다.



하루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억수같이 비는 하루 종일 내리고 있었다. 장대 우산을 가지고 나온 탓에 상반신은 겨우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하바신은 속수무책으로 빗물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렇게 며칠 계속 내리면 세상이 물에 다 잠기겠다!"

경식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우산을 접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승강기를 타고 칠층에 내려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아르바이트로 채용한 젊은 아가씨는 이제 갓 출근했는지 그를 보고 몹시 당황해하였다.

"좀 더 일찍 나와서 청소도 좀 하고 해야지. 내가 저번 주에 일찍 좀 출근하라고 말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이번 주는 일찍 나오려고 했는데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교통이 엄청 막혀서요. 버스 안에서 발만 동동 굴렸어요. 죄송해요. 사장님."

"그래. 알겠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 근데, 출근길에 비는 많이 안 맞았냐?"

경식은 직원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화장실로 들어 가버렸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보니,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어 버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몇 달 사이에 얼굴이 팍삭 늙어 버렸네!'

작년에 재즈카페를 시작한 이후 올해 초까지는 사업이 나쁘지는 않았었다. 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광안리 해변의 경치와 함께 재즈를 들으려는 단골손님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즈가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은 아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그의 가게는 일 년 사이에 재즈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 초에 서서히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올해 사업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고스란히 적자를 보며 비싼 임대료만 매월 주고 있었다. 경식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고,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드르르르..."

휴대폰의 진동이 몸에 느껴졌다. 걸려온 전화번호를 보니, 입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받을지 말지를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경식이 맞니? 오랜만이다. 나는 미희야. 아직 잊어 먹지는 않았니?"


그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뜻밖의 사람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안녕! 미희야. 정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내가 전화해서 너 많이 놀랐겠다. 거의 이십 년도 더 넘었지? 그래도 화도 안 내고 전화 잘 받아 주는구나."


"....."


"너 심정 내가 알아.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도 말이야. 내가 이제 죽을 때가 되니까, 너 생각이 제일 많이 났어."


"무슨 말이야? 죽는다니.. 무슨 일이 있어?"


"나 암 판정받았어. 골수암인데.. 몇 년째 항암치료받고 있거든. 치료받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는 아마 얼마 살지는 못 할 것 같아."


"...."


"그래서, 죽기 전에 너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고 싶어서 연락했어. 너 전화번호는 내가 어떻게 물어 물어서 찾아냈지."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 모르고 있었구나."


"그동안 잘 살았어? 결혼은 했니? 애들은 몇 살이니?"


"결혼했어. 큰 애는 중학생이고. 작은 애는 초등학생이야."


"그렇구나. 나 때문에 너 결혼 안 할 줄 알았는데. 실망인걸... 호호. 농담이야. 내가 참 주책없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야. 너하고 헤어진 이후에 결혼 안 하고 살 생각이었지. 솔직히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살다 보니까..."


"그렇지. 뭐. 암튼. 행복하게 산다고 하니 다행이다."


"너는 서울에 살고 있니?"


"응. 근데, 지금 몇 달째 병원에서 지내고 있어?"


"혹시 어느 병원이니? 내가 한번 찾아갈게."


"아니야. 오지 마! 나의 지금 초라한 모습을 너한테 보여 주기 싫거든... 이십 년 전의 그 기억으로만 간직해 주길 바라거든. 아무튼 너의 목소리를 오늘 들어서 너무 좋아.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있던 걱정도 어느 정도 덜게 될 것 같구나."


"이제 다 지난 세월들인데,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어."


"그래. 고마워! 경식아! 오늘 전화받아 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너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이제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에 있을 텐데, 너무 오래 통화하면 방해가 되겠다. 그래. 이만 전화 끊을 테니까. 잘 지내!"


그녀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경식은 핸드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핸드폰 옆에는 각종 청구서와 고지서들이 놓여 있었지만 그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십 년 전에 자신을 떠나버리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을 해 버린 그녀였다. 당시는 몹시 괴로워서 그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면서도 혹시라도 다시 자신을 찾아온다면 그녀를 받아 주고 싶은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가정을 이루며 그 쓰라린 시간들은 서서히 빛이 바래져 갔고, 정신없이 사회 속에서 돈을 벌면서 완전히 잊혀버렸던 것이었다. 경식의 마음은 쓸쓸해졌다. 그녀가 이제는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고 있었다. 서울로 가서 병 문환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녀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도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두 달의 시간이 흘렀고, 그녀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경식아! 부산에서 잘 살고 있냐? 요즘 너 사업에 좀 타격이 있겠구나.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네. 미희 기억나지?”

“그래. 몇 달 전에 나한테 연락이 왔었어. 전화번호 가르쳐 줬던 모양이구나.”

“응. 나한테도 오랜만에 연락 와서 얘기 나누다가 경식이 너 연락처를 물어봐서 내가 가르쳐 줬어. 그런데, 오늘 미희가 죽었다. 너한테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미희가 골수암으로 몇 년 동안 투병했다는 거 너한테도 말했어?”

“정말이야? 미희가 죽었다고?... 그래. 나와 전화통화하면서도 자기 얘기를 해 줘서 암이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이렇게 빨리 죽을지 몰랐다.”

경식은 진수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침묵하였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서 부인에게 서울에 있는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 온다고 말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모두들 말없이 앉아 있는 적막한 KTX 안에서 창밖의 비 내리는 풍경을 그는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열차의 빠른 속도와 한 번 씩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만이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내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미희의 빈소에는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사회의 여러 모습을 바꾸어 놓은 듯이 장례식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게 한 모양이었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의 모습은 삼십 대 정도의 어느 시간에 촬영된 모습인 듯 보였다. 경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십 대의 그녀의 모습과 차이가 없었고 눈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는 매력적인 모습을 담고 있었다. 남아 있는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잘 선택한 영정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경식 씨 되시는가요?”

상주복을 입은 한 남자가 경식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자의 눈은 많이 울어서 그런지 퉁퉁 부어 있었지만 아주 선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미희의 남편입니다. 장례식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혹시나 해서 방명록을 보니까 선생님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아. 네. 저는 옛날에 같이 부인과 음악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부고 소식을 듣고 급하게 부산에서 올라왔습니다. 암으로 투병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본인도 고생했겠지만 가족들도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 미희가 항암치료를 몇 년 동안 받으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몇 달 전에 합병증이 와서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는데, 이제 그만 저 세상으로 가 버렸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선생님. 제가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고, 미희가 혹시라도 선생님이 오신다면 물건을 하나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거 받으세요.”

그는 검은색 가방을 넘겨주었다. 경식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음악을 하던 시절에 그가 제일 아끼던 본인의 트럼펫이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이것을 저에게 전해 달라고 하던가요?”

“네. 선생님 물건이시죠?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희에게도 소중했겠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가뜩이나 힘드실 터인데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아니오. 저는 아내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추억들을 이제는 정리해 주는 것도 제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경식은 소주잔을 몇 번 더 기울이고 나서는 트럼펫 가방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그는 가방을 열어 보았다. 황금색의 광택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트럼펫을 들어 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그의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입에 대어 보았지만 열차 안이어서 트럼펫을 불 수 없었다. 눈을 잠시 감아 보았다. 한숨을 깊게 몰아쉬고 옛 생각에 잠겨 보았다. 이십 대에 경식은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유명하지 않은 밴드여서 이리저리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레스토랑이나 라이브 음악 카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밴드 단원들은 돈을 벌고 있던 시절이었다. 미희는 재즈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었다. 어떤 공연을 위해서 우연히 결성된 임시 밴드에서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고 이후 그들은 사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쿠바 음악을 좋아했던 경식을 위해 미희는 따로 스페인어 노래를 불러 주곤 하였다. 그때 그녀가 불러 주었던 ‘베인떼 아뇨스’(이십 년)라는 쿠바 볼레로 곡이 떠올라서 그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검색하여 틀어 보았다. 그리고는 음악에 맞추어 소리를 내지 않고 트럼펫을 입에 대고 상상을 하며 연주를 해 보았다. 이십 년 전의 그녀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은 무슨 상관이겠어요?

당신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은

벌써 사라져 버린 사랑

기억하지도 못하고

나는 당신의 인생의 환영이었습니다.

벌써 멀리 지나가 버린 날

오늘의 나는 과거의 모습일 뿐이고

나는 위안받을 수가 없습니다.

......

당신이 원한다면

이십 년 전처럼 똑같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보는 슬픔과 함께

우리를 떠나는 사랑은

영혼의 한 조각입니다

그것이 무자비하게 저를 찢어 놓습니다.

......."

https://youtu.be/d2vBh6_h7WE


열차 안의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고,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경식의 상상 연주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경식은 부산으로 내려온 이후에는 자신의 가게에 몇 시간 일찍 출근하여 손님들이 오기 전에 트럼펫을 연습해 보았다. 이십 년 동안 악기를 연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의 감각과 연주 수준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느 순간 젊은 시절의 감각이 그의 몸과 영혼에 살아나게 되었다.


“어머나! 사장님도 악기 연주하셨네요. 너무 멋져요!”


연습에 심취해 있던 그는 종업원이 가게 안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도착했어요. 이전에 트럼펫 부셨던 적이 있는 모양이네요. 연주 실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한 번도 악기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재즈카페만 하시고 악기는 연주하실 수 있는 줄 몰랐어요. 주말에 라이브 공연이 있을 때에 같이 사람들과 연주하셔도 되실 것 같아요.”


“젊었을 적에 재즈 음악을 사실 했었어. 아직 그때 실력이 잊어버리지 않고 남아 있네. 몸과 감각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줄은 나도 몰랐거든.”


다음 주 주말에 재즈 라이브 공연을 하러 오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그는 미리 악보를 보내 주며 같이 공연을 하였다. 같이 연주할 곡은 쿠바의 유명한 라틴재즈 곡인 ‘엘 마니세로’(땅콩장수)였다.

https://youtu.be/fQExZiQnHsw

경식의 트럼펫 솔로 연주를 빛나게 해 줄 정도로 젊은 음악가들은 실력을 다하여 연주해 주었다. 듣고 있던 손님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쳐 주었지만, 그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실력은 상당한 연주자들이지만 그와의 공감이 다소 떨어져서 그렇다고 느껴졌다. 재즈가 즉흥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들과의 합주에서 느꼈던 허전한 그 무엇을 그는 찾아보고자 하였다. 주중을 이용하여 며칠 동안 어딘가를 다녀올 생각에 가게를 직원에게 맡겨 두고 그는 자가용을 몰고 부산을 잠시 떠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어디로 갔다 올 생각이기에 그렇게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오려고 해요? 혹시 바람난 것 아니에요?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았다.

“아니야. 이상한 생각 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어.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몇 명 만나고 올 예정이야. 재즈카페 운영하면서 그동안 잘 되었는데, 요즈음은 코로나 때문에 좀 힘들지 않았어? 오히려 이런 시간에 가게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영감을 좀 받아야 될 것 같아서 그래. 남편을 믿고 며칠만 좀 기다려 줘.”

“당신 요즈음 카페에서 직접 연주도 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맞아요? 당신 가게에 놀러 갔던 친구가 말해 주었어요. 트럼펫을 배운 적이 있어요?”

“아. 당신한테 말한 적이 없구나. 사실은 내가 젊었을 적에 재즈음악을 했었어. 그러다가 돈이 안 되어서 그만두고 취직을 했었던 거야. 음악 할 적에 내가 트럼펫 연주자였거든. 증권회사를 작년에 그만두고 남아 있는 돈으로 재즈카페를 하려고 했었던 것도 내가 이전에 재즈음악을 했었기 때문이야.”


경식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러 커피를 마셨다. 휴게소 안에 설치된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에서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수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코로나가 퍼져 나가고 있는 지역이나 코로나 확진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능한 여행하지 말 것을 추가로 덧붙이고 있었다. 그는 뉴스를 보면서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자,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는 것도 힘들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지쳐가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고속도로에 다시 차를 진입시키고 그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차량들 속에 묻혀 몇 시간을 계속 이동하였다. 천안에서 그는 고속도로에서 나왔다. 그날도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있었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시내지역으로 차를 조심스럽게 몰아갔다. 어느 건물 앞에서 차를 멈추었고 그는 간판을 다시 확인한 다음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젊은 사람 한 명이 마스크를 낀 채 악기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영이 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어. 이게 누구야? 경식이 아냐.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형이 하는 음악학원이 찾아졌어. 그래서 형 얼굴 보러 일부러 왔어.”

“그랬구나. 연락이라도 한번 하고 오지.”

“원래 불쑥 나타나야 감동이 큰 법이야.”

“싱거운 것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음악은 계속하고 있구나.”

“네가 밴드에서 그만두고 나가고 난 후에도 나는 서울에서 계속 활동했어. 그러다가 나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이렇게 학원을 운영하고 있지. 너는 뭐하고 지냈니? 그때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음악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사라졌잖아.”


“그랬지. 그 이후로 회사 다녔어. 결혼도 했어. 작년에는 회사에서 정리해고할 적에 그만두고 부산에 가서 카페 차려서 하고 있어.”

“부산에는 무슨 이유로 갔니? 연고가 없잖아.”

“부인이 부산 출신이야. 그리고 광안리에 이전에 놀러 갔을 적에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 있었거든. 거기에서 언젠가 재즈카페 만들고 싶었는데, 작년에 그렇게 해 버렸지. 학원은 잘 되고 있어?”

“아니야. 보다시피 수강생들이 없잖아? 여기도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 코로나가 우리 같이 사업하는 사람들 많이 죽이고 있네. 너는 어떠냐?”

“나도 마찬가지야. 차라리 직장 생활하는 것이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받고 일이 힘들어도 버티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후회가 많이 생겨. 하긴 정리해고에 더 이상 버티기도 쉽지 않았지.”

“그 이후로 트럼펫은 연주 안 했겠구나?”

“이십 년 동안 손을 놓았어. 그러다가. 음... 최근에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연주를 시작하기는 했어.”

“근데, 밥은 먹었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

둘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나눠 마셨다. 이십 년 동안의 시간은 그들에게 긴 시간이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그들은 술잔을 서로 기울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더 얘기해 주었다. 세 시간을 식당에서 보내다가 밖으로 나왔다.

“형! 나 이만 가볼게.”

“야! 밤이 깊었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아니야. 형수와 애들이 있는데, 내가 가면 실례지. 근처 숙박시설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려고 생각 중이야.”

“그러면, 너 내일 떠나기 전에 학원에 한번 다시 와라. 오랜만에 같이 연주나 해보자. 너 트럼펫 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보고 싶어.”

“그래. 알겠어. 내일 다시 찾아 갈게.”


다음 날 아침에 경식은 진영의 실용음악학원에 찾아갔다. 진영은 벌써 학원에 와 있었고, 경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피아노에 앉았다. 그의 옆에는 여자 한 명도 서 있었다. 그는 먼저 연주를 시작하였다.

“어! 이 곡은?”

“그래. 네가 좋아했던 곡이잖아? 노래 불러줄 사람도 내가 이렇게 구해 왔어.”

1920년대의 전통 재즈 음악을 좋아했던 여자 친구를 따라서 경식도 그 시대의 재즈음악을 많이 연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디나’라는 노래의 전주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여자 보컬의 노래가 어느새 시작되었다.

“캐롤라이나는 나에게 디나를 주셨죠

나는 제일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에요

남부의 태양 아래에서요


소식이 퍼지고 있어요

우리의 결혼에 관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요

나의 가슴이 계속 노래하는 것이죠


디나!

그녀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어요?

캐롤라이나 주 안에서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보여 주세요!


디나!

그녀의 남부의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나는 앉아서 뚫어져라 바라보죠

디나 리의 눈을요



그렇지만, 매일 밤마다

나는 두려움에 떨죠

혹시나 나의 디나가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바꿀까 봐요


그러나 만약 디나가

설령 중국으로 방랑을 떠난다 해도

나는 바로 대양을 건너는 여객선에 올라 탈 거예요

디나 리와 같이 있으려고요


디나!

그녀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어요?

캐롤라이나주 안에서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보여 주세요!"

https://youtu.be/J0rRbRZxLQM

진영은 연주 중에 일부러 트럼펫 솔로 연주 구간을 마련해 주었고, 경식은 연주로 그 구간을 가득 채워 주었다.

“우와!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네. 그때 여자 친구가 지금 이 노래 들었으면 경식과 헤어진 거 후회하겠다.”

“죽었어. 얼마 전에”

“뭐? 아. 그랬구나. 마음이 좀 허하겠구나.”

“아니야. 이제는 괜찮아.”

“그런데, 너한테 트럼펫 가르쳐 줬던 선생님 생각나니? 지금도 살아 계신 것 같던데.”

“어디에 살고 계시지?”

“전라도 곡성에 내려가셨다고 들었어. 도자기 굽고 계신다고 들었던 게 마지막이야.”

“혹시 주소 알고 있어?”

“정확한 주소는 몰라. 내가 한번 알아봐서 카톡에 넣어 줄게.”


경식은 차를 몰고 다시 고속도로로 나와 대구로 내려가고 있었다.

“최명학 씨 핸드폰 맞나요? 나 경식이야. 오랜만이다. 너 얼굴 보러 대구로 내려가고 있는데, 혹시 오늘 시간은 되니?”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명학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너한테서 전화도 다 받고 말이야. 그래 대구로 와라. 너 얼굴 한번 봐야겠다.”

둘은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이십 년 만에 만난 명학은 많이 늙어 있었다. 아마 자신의 얼굴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말을 건넸다.

“유럽 패키지여행 가이드 하며 산다고는 그동안 전해 들었어. 그래 요즘은 어떠냐?”

“코로나 때문에 외국여행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몇 달 동안 놀고 있다가 최근에는 택배차량 하나 구입해서 택배기사 하고 있어.”

“코로나가 여러 사람 인생을 망쳐 놓았네.”

“아니야. 그나마 다행이야. 일이 있으니까 요즘은 정신없이 살고 있어. 크게 돈이 되지는 않지만 바쁘니까 잡생각이나 걱정이 없어지니 그건 좋아. 사람들 집에 다니면서 물건 배달해 주니까, 그동안 내가 참 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느끼겠어. 뭐.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 주었다고나 할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다시 때가 되면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옛날에 재즈밴드에서 하던 드럼은 계속 치고 있었니?”

“드럼은 계속해 왔어. 재즈밴드에서 나도 오래전에 나오긴 했지만 말이야. 밤무대에서 드럼 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가끔 해주고 있거든. 아는 사람이 그런 업소를 운영하고 있어. 그래서 나한테 전화 와서 일하러 나오라고 하면 도와주고 있어.”

“그런 곳은 재즈가 아니잖아? 너도 재즈 좋아했던 것 아니었냐?”


“나이 먹어 가니까, 트로트가 좋아지더라. 중년들이 와서 음악도 듣고 춤도 추는 그런 곳이거든. 나도 부담이 없어 좋아. 음악은 연습 안 해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는 유명한 트로트 음악만 나오니까. 바쁜 나한테는 딱 맞는 셈이지. 뭐.”

“그래.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드럼을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트로트도 좋지. 나도 요즘은 트로트 많이 듣고 있어. 연예 프로그램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최근에는 트로트 열풍이 대단해졌더라.”

“너는 트럼펫 연주 계속하고 있니?”

“이십 년 동안 트럼펫은 한 번도 만져 보지 않다가 최근 들어 연주를 다시 시작했어.”

“너 트럼펫 연주 한번 다시 듣고 싶다. 내일까지 대구에 있을 수 있어? 사실은 내일 밤에 아는 형 가게에서 드럼 연주해야 하거든. 내가 그 형에게 말해서 같이 연주해 보도록 얘기할 테지만, 재즈가 아니고 트로트라서 네가 좀 내키지는 않겠다.”

“아니야. 너하고 한번 다시 같이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냐? 그러면 내일 같이 거기서 해 보자. 그런데, 단원들과 같이 연습 안 해도 되겠니?”

“손님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네가 평소에 다 들어 봤던 노래들일 거야. 그냥 리듬에 맞추어 가다가 노래에 맞게 네가 트럼펫으로 멜로디만 넣어 주면 되는 거야. 손님들이 춤추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맛깔스럽게 멜로디를 넣어 주면 되거든.”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둘은 다음 날 밤에 별밤이라는 중년 카바레에서 만났다. 코로나 때문이지 손님들은 많지는 않았고, 업소 출입구에서는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 착용상태를 확인하고 이상 없는 손님들만 출입시켜 주었다.

“오늘 처음 뵙는 사이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명학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안 그래도 색소폰 연주자가 집에 일이 있어서 못 나오게 되어서 저희가 걱정했는데, 그래도 트럼펫이 들어와서 멜로디가 다행스럽게 채워지게 되었네요. 가뜩이나 코로나로 손님들이 줄어서 야단인데, 연주라도 시원찮으면 손님들이 더 안 오게 되죠.”


“색소폰 연주자가 못 오시게 되었군요. 혹시 남는 악기 더 있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피스만 바꿔서 제가 하죠. 색소폰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맞게 제가 트럼펫과 색소폰을 같이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첫 곡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로 시작하였다. 경식은 색소폰으로 멜로디를 넣어 주어 전주곡을 시작해 주었고, 명학은 드럼으로 볼레로 리듬을 흥겹게 넣어 주며 최백호의 곡의 느낌을 살려 주었다. 첫 곡은 성공적으로 합주가 이루어져 갔으며 무대에서는 손님들이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관객들과 호응하며 하는 연주는 경식을 충분히 흥분시키고 있었다.

https://youtu.be/CKrybgx_l3E

연주단원과 관객들 모두 마스크를 낀 한 공간에서 음악소리가 가득히 울려 퍼지고 이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코로나가 만연되기 이전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모두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힘든 시절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날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 그 곡은 지금 시간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 단원들은 몇 시간 동안 신나게 더 연주를 하였다.

“오늘 밤에 같이 연주하게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관악기 실력이 상당하시네요. 악보도 보시지 않고 오셨을 것 같은데, 전혀 차질이 없이 합주가 되었네요.”

“저도 오랜만에 이렇게 흥겹게 연주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음악이죠. 관객들과 같이 이렇게 부담 없이 연결될 수 있는 것도요. 코로나 이후로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거든요. 해결할 수도 없는 일 가지고 걱정만 하느라 매일매일 힘들었지만 오늘은 덕분에 잠시 잊을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단원들과 같이 업소를 나와서 야간에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서 허기를 채우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과 얘기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들을 진솔하게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명학아. 내가 대구에 들리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오랜만에 신나게 같이 연주할 수 있었고, 모든 걱정이 다 날라 가 버린 것 같아서 너무 좋아.”

“그래. 니 얼굴 보니 이제 제 색깔이 나온다. 산다는 게 뭐 별거냐? 너무 걱정하며 살지 말자. 다 죽을 것 같이 힘들다 가도, 터널 나오면 다시 햇빛을 보게 돼 있어.”



경식의 차는 지리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 곡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는 지리산을 넘어가는 길을 택하였다. 산을 넘어가는 길목에 차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하여 골치를 앓고 있어도 대자연은 변함이 없이 인간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가득히 흡인한 다음에 그는 다시 차를 몰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곡성군 안으로 들어왔지만 목적지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차를 잠시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가 않아서 햇살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곳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려와서 그곳으로 경식은 걸음을 옮겨 보았다. 나무 그늘 밑에서 남학생 한 명이 열심히 꽹과리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학교 다닐 적에 농악을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이 치고 있는 장단이 귀에 들어왔다. 장단은 맞게 치고는 있었지만 약간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고 그는 생각이 들었다.


“꽹과리를 잘 치는구나. 요즘 배우고 있는 모양이구나.‘

갑자기 나타난 경식을 보고 학생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라게 했으면 미안해. 다시 한번 쳐 볼래?”


학생은 자세를 가다듬고 장단을 다시 쳐 주었다.


“장단은 정확하게 잘 치고 있거든. 근데, 이 악기는 그냥 소리만 내어서는 그 맛이 살지가 않는단다. 아저씨한테 한 번 줘 볼래?”


경식은 학생의 꽹과리를 받아서 잠시 동안 연습을 해 보았다. 옛날에 쳤던 느낌이 살아났음을 확인한 후에 그는 잠시 쉰 다음 꽹과리를 다시 치기 시작하였다. 그의 연주는 몇 분을 이어 나갔다. 학생은 놀라며 그의 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며 잠시 후 완전히 멈추었다. 연주는 끝이 났지만 소리의 여운으로 경식은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뜨며 학생에게 말하였다.


“봤니? 내가 잘 쳤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것은 쇠가 녹아 흐를 듯이 쳐야 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을 많이 하고 시간도 필요해. 이것을 치는 사람의 인생과 한이 녹아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저씨도 아직 그 경지는 못 갔어.”


“아저씨는 꽹과리를 전문적으로 치시는 분이신가 봐요?”


“아니. 나는 젊었을 때 악기를 전문적으로 해 왔던 사람이야. 그때 꽹과리도 같이 배울 수 있었거든.”


“지금 잠깐 보여 주신 것으로도 충분해요. 저에게 들려주신 소리와 모습을 기억하고 앞으로 계속 연습하겠습니다.”

https://youtu.be/xAMsfKTCxpg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단다. 괜히 아저씨가 주제넘게 너에게 가르친 것 같구나. 아. 그런데, 혹시 이 근처에 폐교가 있니? 거기 찾아가는 중인데, 찾기가 쉽지 않구나.”

“폐교로 가신다면 지금 오신 길이 맞아요. 조금 더 차를 몰고 가시면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넘으면 산 밑에 학교가 있어요. 지금은 학생들이 그 학교에는 안 다녀요. 십 년 전쯤부터 어떤 사람이 그 폐교를 사서 거기서 살고 있거든요.”

“그러면, 그곳이 내가 찾는 곳이 맞는 것 같다. 고마워. 열심히 연습해라.”

그는 학생과 헤어진 뒤에 차를 몰고 언덕을 넘어갔다. 저 멀리 학교가 보였다. 그는 쓰러진 학교 담벼락의 한 구석에 차를 세워 놓고 정문이 있었던 곳으로 걸어갔다. 학교 안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건물 밖에 여러 물건들이 나와 있었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는 큰 아궁이가 만들어져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는 학교의 정문 입구에 서서 트럼펫에 입을 대어 소리를 내었다. 건물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한 번 더 트럼펫으로 소리를 내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옛날에 배웠던 어떤 곡을 연주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운동장을 횡단하기 시작하였다. 조용한 시골의 폐교에 쿠바 재즈 트럼펫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운동장의 중간 정도에 도착하자, 건물 안에서 트럼펫 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이 들렸다. 그는 연주를 잠시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건물에서 한 노인이 연주를 하며 걸어 나오다가 건물 입구에 서서 계속 연주를 이어 나가 주었다. 둘은 지금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주 보면서 마지막까지 트럼펫 합주를 계속하였다. 음악이 멈추자 경식은 노인에게 달려갔다.

https://youtu.be/Q8g3cey1Rio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그래. 멀리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서 내가 주의 깊게 들어보니 자네가 연주하는 소리였어. 세월이 지났어도 내가 가르친 제자들은 저마다의 소리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

“와. 여전히 트럼펫은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여기 시골 와서 내가 뭐 할 것이 있나? 도자기 구우면서 한 번씩 트럼펫 불면서 세월 보내고 있지.”

“더 일찍 찾아뵈어야 했었는데,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다들 바쁘게 살았을 것인데, 자기 부모도 찾아뵙기 힘든 세상에 나 찾아 올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 이해하지.”

“건강하시고요?”

“내가 사실은 몸이 안 좋아져서 시골로 내려왔지.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네.”

“선생님에게 트럼펫 배우면서 저도 쿠바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쿠바 음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시절에 선생님이 음악인들에게 쿠바 음악을 많이 소개해 주셨죠. 기억나세요?”

“옛날 일들이지. 나도 원래는 쿠바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야. 미국 재즈를 더 많이 연주했었지. 그러다가 라틴재즈를 알게 되면서 쿠바 재즈가 좋아지게 된 거야. 쿠바는 옛날에 차 뽀띤 같은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가 많았거든.”

경식은 선생님이 따라주신 녹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보고 얘기를 더 나누었다.

“이 찻잔도 내가 여기에서 직접 만들었다. 어때 내 도자기 굽는 실력도 괜찮지?”

“네. 대단하시네요. 집에 갈 때 제가 몇 개 사 가지고 가야겠네요.”

“제자한테 돈 받고 줄 수는 없지. 자네 갈 적에 내가 괜찮은 작품 몇 개 가지고 가도록 해 줄게.”

“선생님처럼 이런 시골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이런 곳에서 살면 답답할 거야. 자네 나이에는 아직 도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좋은 일, 나쁜 일 다 겪으면서 살아야 제 맛이야. 다 나이에 맞는 생활이 있는 것이니까.”

“산다는 게 꼭 즐거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트럼펫을 배운 이후에 재즈밴드에 들어가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일이 생각하는 것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제대로 배웠지만 제가 잘 못 한 것이지요. 나중에는 그만두고 회사생활 시작하였고 작년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재즈카페를 하고 있어요.”


"그랬구나 ." 자네가 음악을 그만둔 것은 내가 들었어. 음악 하면서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지. 내 충분히 이해하네.”

“지금은 그때 그만둔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해요. 만약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요.”

“나는 제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그것으로 꼭 먹고 살아가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어. 세상에 태어나서 악기를 하나라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은 충분히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해. 신이 세상에 주신 여러 선물들 중에 하나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거든.”

“지금도 사업이 어려워져서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사회생활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이런 시간들 속에서 음악으로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요.”

선생님은 경식의 눈을 보다가 일어나서 어깨를 잡아 주었다.

“오늘은 해가 거의 저물어 가니까, 여기서 자고 가도록 하게. 여기는 산이어서 해가 빨리 떨어져. 내가 저녁밥을 만들 동안 좀 쉬고 있어. 먹을 거라고는 밥과 나물밖에 없을 테지만 말이야. 시간은 얼마 안 걸려.”

둘은 이른 저녁을 먹고 밖을 보면서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트럼펫을 들고 석양을 바라보며 즉흥적인 연주를 시작하였다. 분위기 있는 소리는 산 밑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석양과 어우러져 가고 있었다. 몇 분 뒤에 경식도 트럼펫을 들고 선생님의 연주에 합류를 하였다. 둘의 연주는 점점 절정을 다하여 가고 있었고 잠시 후에 연주는 멈추었다.

https://youtu.be/co5AR03hPPw

“자네 많이 힘들어 보이네. 모든 것이 어느 시점에는 지나갈 것이야. 그때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잘 버티어 나가게. 그리고 자네가 내일 가져갈 내 작품들은 저기 놓아두었네.”

“선생님에게 젊은 시절에 제가 트럼펫을 배웠듯이 오늘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서 다시 찾아와서 인생을 배우고 가네요.”


다음 날 아침에 선생님이 챙겨주신 아침밥을 먹고 그는 부산으로 출발하였고 오후에 집에 도착하였다.


“당신 사흘 밤을 외박하셨네요. 그래 좀 기분전환이 되어 왔어요?”


“응. 애들하고 혼자 지낸다고 고생이 많았지. 그동안 있었던 일은 내가 차차 얘기할게. 그리고 나하고 결혼해서 그동안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지금 힘들어도 잘 헤쳐 나가자.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경식은 대답 대신에 부인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는 주말마다 연주되는 라이브 재즈 공연을 주중에도 늘려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연자를 부르는 비용은 더 들게 되었지만, 주중 공연은 그가 트럼펫을 연주하고 나머지 공연자를 피아노나 재즈 베이스 연주자들로만 구성하여 당분간은 비용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중에 라이브 재즈 공연이 있다는 것을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후에는 손님들이 조금씩 더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있는 정기 공연에서는 여자 보컬에게 특별히 한 곡을 부탁하였다. ‘푸른 하늘’이라는 재즈곡이었다. 관객들에게 “노래의 가사처럼 앞으로는 모든 분들께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그는 말하며 연주를 시작하였다.


"푸른 하늘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어요

푸른 하늘 이외에는 보지 못 했어요


푸른 하늘은 노래를 하고 있어요

지금부터 계속 푸른 하늘일 거예요


태양이 저토록 밝은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일들이 저토록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서둘러 지나가는 것을 알게 돼요

당신이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너무 빨리 지나가죠.


푸른 하늘들, 모두 지나갔지만

앞으로도 계속 푸른 하늘만 있을 거예요


푸른 하늘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요.

푸른 하늘 이외에는 볼 수가 없어요.


푸른 하늘이 노래를 하죠.

지금부터도 계속 푸른 하늘만 있을 거예요" (끝)

https://youtu.be/hQMEF3gHz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