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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본 아랍의 흔적, 세비야

안달루시아에서 머문 마지막 밤

by 김주영

세비야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낮에는 알카사르, 세비야 성당, 히랄다, 살바도르 성당을 방문할 예정으로 호텔을 나왔다. 세비야에 오면 관광객들이 대부분 찾는 명소들이다.


알카사르는 성안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으로 아랍인들이 지배하던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걸어가는 길에 세비야 시청, 세비야 성당도 지나갔고, 오전 9시에 문을 열자 줄을 서서 바로 입장하였다. 아침에 방문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수의 관광객들이 있었고, 날씨도 더워지기 전이어서 여유롭게 성 건물 안과 곳곳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회교식 파티오를 감상하였다. 나오기 전에는 건물 밖에 있는 큰 야외 정원을 거닐었다. 공작새들도 정원을 걸어 다니는 것이 운치가 있었다. 세비야 성당은 알카사르에서 바로 앞에 위치했지만, 입장시간도 한 시간 넘게 남아 있고, 아침에 세 시간가량 걸었더니 피곤해져서 알카사르 안쪽 출구 가까이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마실 것을 사가지고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 1시경에 방문한 세비야 성당은 아랍적인 양식을 찾을 수 없는 하늘을 찌를 듯하게 쏟아 오른 전형적인 유럽식 성당이었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는데, 그 명성답게 성당 내부의 면적도 넓고, 천장까지의 높이는 매우 높았다. 성당 내부 한 편에는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있는 네 명의 스페인 과거 국왕들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앞에 서서 관을 든 두 국왕들은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고, 뒤의 두 국왕들은 고개를 떨군 채 관을 들고 서 있다. 앞에 두 명은 콜럼버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었고, 뒤에 두 명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애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히랄다 탑은 세비야 성당에 붙어 있어서 세비야 성당 내부를 구경하고 연결되는 통로가 있어서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계단이 없고 오르막 길이 나선형을 그리면서 탑 안에 나 있었다. 옛날에 왕이나 귀족들이 말을 타고 올라가도록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히랄다 정상에 올라가니, 성당의 지붕과 함께 세비야의 전경이 멀리까지 펼쳐진 것이 보였다.

히랄다를 내려와서 밖으로 나와 살바도르 성당까지 약 10분 걸어갔다. 세비야에서 제일 더운 시간에 다가가고 있었으며 기온이 약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비야 성당을 보고 와서 그런지, 살바도르 성당은 아주 아담해 보였다. 하지만 외관과 특히 내부는 아름다웠고, 내부 곳곳에 가톨릭 장식품, 미술품이 걸려 있었다. 성당 내부 중앙을 바라보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서 더위와 피로를 아주 잠시나마 식혔다.

살바도르 성당을 나와서 오늘 낮 일정의 마지막 장소인 스페인 광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루 중 최고 더운 시간으로 36도를 넘어가는 기온에 태양마저 작렬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는데, 앳된 청년 한 명이 외롭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중년 아저씨가 갑자기 들어와 서툰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말을 거는 것이 많이 신기한가 보다. 청년이 골라 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계속 걸었다. 더위를 먹고 있는 중이라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끔 정신이 혼미해지고, 구글 맵에서 보여 주는 방향, 길에 대한 정보를 내가 잘못 판단하여 엉뚱한 곳으로 자주 가고 있었다.

몇 번을 쉬다가 길도 잃어버리다, 마침내 스페인 광장에 도착하였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 광장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번 와 볼만 한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과거 스페인이 중남미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시절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떠올려 줄 수 있었다. 광장 뒤의 건물의 야외 복도를 따라서 관광객들이 구경하거나 쉬고 있었고, 플라멩코 등 각종 버스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음악가들에게 동전을 넣어 주었다. 그 웅장한 건물에 문이 살짝 열린 곳이 보였고, 그 안에 자판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들어가서 생수 한 병을 뽑아 나왔다. 꿀맛이었다. 공무원 같은 사람이 내가 나가자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아마 자기들 일 때문에 잠깐 열어 두었던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안에 들어갔던 것 같았다. 더워서 자판기 생수를 뽑아 먹는 것을 보고 바로 나가라고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파노라마 전경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의 플라멩코 버스킹


저녁에는 7시에 예약해 둔 플라멩코 공연장인 '라 까사 델 플라멩코'(La Casa del Flamenco)로 갔다. 건물 안에 위치한 실내 파티오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하였고 좌석배치도 어느 자리에 앉아도 무대를 잘 볼 수 있도록 계단식 삼열의 배열이었다. 어제 봤던 대형극장의 아쉬운 공연 공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했다. 플라멩코 공연장들의 공연은 일률적인 내용이 아니고, 공연장들은 각각 자기들만의 내용과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공연은 남녀 간의 사랑이 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플 댄스 형식이 여러 번 등장했고 기타 소리 또한 이전 공연장 보다 상대적으로 감미로웠다. 가수들은 두 명이 나와서 어느 부분은 음역대를 달리 해서 화음을 이루며 노래를 하였다. 춤 또한 훌륭하여, 기타 연주와 노래와 함께 세 가지 요소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다. 일어나서 손뼉 친 첫 공연이었다.

내일은 세비야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갈 여정이므로 피곤하지 않도록 일찍 잠을 청했다. 자기 전에 호텔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세비야의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구경했다. 여느 때보다도 엄청 큰 달이었다. 슈퍼문이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이제 나의 여정의 중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삭 알베니스"(Isaac Albéniz)가 작곡한 "세비야"(Sevilla)를 들어 보았다. 그의 다른 곡인 코르도바, 그라나다, 아스투리아스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난다. 실제로 세비야에서 이 곡을 들으니, 이 곡은 세비야를 잘 표현하였다고 느껴졌다. 도시의 활기찬 분위기,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HaZgZJrJmdk?si=2Lvv487BRU6aqu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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