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오후 비행기로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세비야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가서 여유롭게 남은 시간을 보내다 다시 마드리드로 와서 귀국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유학을 하고 온 나의 기타 선생님이 바르셀로나는 꼭 가 봐라고 하여서 원래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세비야에서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을 동서로 횡단하는 제법 먼 거리인데 고속열차들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일부 도시를 못 가거나 체류기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날짜를 확보하여 바르셀로나행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의 중반이 넘어가니 빨래가 많이 쌓이게 되었다. 세비야의 호텔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빨래방을 미리 찾아 두어서, 문 여는 시간인 오전 9시에 가방에 빨래를 잔뜩 들고 갔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분리되어 있었고, 세탁시간 45분, 건조시간 15분 정도 소요되었다. 깨끗이 빨린 옷들을 다시 가방에 넣고 호텔로 돌아와 여행배낭을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하였다.
원래 생각은 호텔에 여행 배낭을 맡기고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다시 찾아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체크 아웃을 하는 순간에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냥 배낭을 메고 나와 버렸다. 도심의 맥도널드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가게 바로 앞에서 하는 버스킹을 조금 보다가 공항버스 타는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시간이 충분히 있어서 구글지도가 안내하는 데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막상 정거장에 가보니 어느 정류소에서 출발하는지가 무척 헷갈려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현지 아주머니에게 스페인어로 물어보았다. 여기가 아니라 옆에 있는 정류소라고 하신다. 하마터면 여기서 탔으면 엉뚱한 곳으로 가서 난처할 뻔했다. 공항버스를 타면서도 기사님께 어색한 스페인어로 이리저리 물어보며 정확한 버스를 탄 것을 확인하였다. 스페인에서는 관광, 비즈니스 관련으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해야 먹고사는 사람들 이외는 영어가 그리 잘 통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조금 영어를 해 주다가 어느 순간부터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말하듯이 빠른 스페인어로 말해 버린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현지인들과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자유 여행을 하려면 기본적 스페인어 표현들을 익혀 가면 좋을 것 같다.
세비야 공항에 도착하여 Vueling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비행기 체크인을 하려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한 종이를 보여 주니, 체크인 프런트 여직원이 비행기 티켓을 주지 않고 인상을 쓰며 한참 동안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다. 너무 빨라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들린 단어가 '말렛따"(가방), '그란데'(크다) 등이었는데, 상황으로 짐작건대, 내가 메고 있는 여행 배낭이 커서 비행기에 못 가져간다는 말인 것 같았다.
지금 처한 상황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는 괜히 부족한 스페인어로 계속 말했다가는 안 될 것 같아서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영어로 말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직원은 영어를 이해하면서도 일부러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스페인어로 대답을 하였다. 이제부터는 정말 생존 스페인어였다. 기억나는 단어들과 표현들을 총동원해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뒤에서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자 직원도 그냥 봐주기로 했는지 비행기 티켓(좌석 밑에 두고 타는 소형 짐을 든 승객으로 분류되어 있었음)을 드디어 나에게 주었다. 이러한 것을 겪으니 비행기 좌석에 앉기 전까지는 긴장이 계속되었다. 아마, 내가 이용한 항공사가 스페인의 저가항공사여서 수화물 규정이 엄격했던 것 같다고 짐작되었다. 규정을 찾아보니, 배낭의 경우에 40 ×30 ×15인데, 내 배낭을 재어 본 결과, 아무리 해도 길이가 10cm 정도는 초과되었던 것 같다. 며칠 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의 포루투 간에 이동할 때도 다른 저가항공사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안에 오니,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다. 내 좌석을 찾아가는 도중에 먼저 앉아 있는 승객들이 신기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중간 좌석에 앉아 있으니, 어떤 청년이 '뻬르돈'(실례합니다)라고 말한다. 창문가 좌석이 자기 것이라는 의미였다. 잠깐 비켜주면서, 얼굴을 슬쩍 보니까, 젊은 시절의 메시를 엄청 닮았다. '세상에 참 닮은 사람이 많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메시는 앉자마자 피곤한지 자 버렸다. 나도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 있다 잠이 들어 버렸다. 1시간 40분 정도 후에 비행기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바다를 접한 도시여서 착륙 전에 바다가 훤히 보였다. 지중해일 것이다.
공항버스가 어디에서 출발하냐고 물어가며 정류장을 힘들게 찾아갔다. 공항에서 카탈루냐 광장까지 가는 버스였고,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버스가 자주 와서 줄이 금방 줄었다. 버스 안내판 등을 보니, 지금까지 여행했던 지역의 스페인어 글자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단어의 끝소리를 짧거나 조금 더 세게 끝내는 것 같다고 짐작되었다. 세비야에서 본 광고판과 똑같은 것이 보여서 비교가 가능했는데, 표기가 조금 달랐다. lo를 ho로, todo를 tot이라고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데, 카탈루냐의 스페인어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스페인 음식을 현지 와서 먹어보니 내 입맛에는 그렇게 맞지 않았다. 어디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일본 라멘집을 발견하고는 바로 들어가 버렸다. 라멘 한 그릇, 볶음밥 한 접시, 군만두 4개를 시켰다. 배도 고프고, 그나마 익숙한 맛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 버렸다. 그래도 후회 없이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고 식당을 나왔다.
바르셀로나 호텔에 거의 저녁 7시에 체크인하였기 때문에 오늘밤은 뚜렷한 일정을 짜지 못한 상태였다. 비행기에서 착륙 전 바다를 봤기 때문에 스페인의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여기서 해변이 얼마나 멀까 궁금하여 구글 지도로 검색을 해 보았다. 다행히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네타 해변'이 있었다. 그리로 가보자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항구에는 고급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고급 레스토랑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 모든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다가 드디어 해변에 도착하였다. 모래해변은 아니고 자갈해변이어서 오히려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기에는 더 좋았다.
해변에 앉아서 바르셀로나의 밤바다를 감상하며 파도소리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수평선에서 달이 떠 오르는 것이 보였다. 수퍼 블루문이 오늘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기억났다. 이것을 바르셀로나의 해변에서 보다니 믿기지 않았다. 해변에 온 스페인 사람들도 그 광경을 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달이 하늘의 중간 정도 올라올 때까지 한 시간 넘게 홀로 해변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나도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었고 그동안 숨 가쁘게 인생을 달려왔다고 느껴졌다. 앞으로 또 어떻게 살게 될까 생각도 들면서, 이번 스페인 여행을 지지해 준 아내에게 고마운 감정도 들었다.
바르셀로나의 네타 해변에 앉아 수퍼 블루문을 보면서 나의 오십 대의 어느 밤도 지나가고 있었다.그리고, 타국의 해변에서 홀로 밤바다에 울쩍해진 중년을 위로하기 위해 스페인 플라멩코기타리스트인 '사비까스'(Sabicas)의 곡인 '뿐따 이 따꼰(Punta y Tacón)을 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