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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엥카, 어쩌다 가 본 스페인의 소도시

폭풍우로 좌절된 콘서트의 꿈

by 김주영 Sep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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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 9시까지 숙면을 취하고 정오에 출발하는 마드리드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바르셀로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마드리드로 다시 가는 이유는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쿠엥카로 가기 위해서였다.


'쿠엥카'라는 소도시에서 스페인 남자가수인 '파브로 알보란'(Pablo Alboran)의 야외 콘서트가 오늘 밤에 있었다. 나는 그 공연을 보기 위해 그 먼 거리를 하루 종일 이동할 예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인데, 스페인을 비롯하여 중남미에서는 아주 인기가 있다. 89년생으로 2013년에 Solamente tu라는 노래로 데뷔한 젊은 가수이며, 조용하고 감미로운 토운으로 주로 발라드를 부른다. 그래미 라틴 어워드를 3번이나 수상했으니, 그 실력과 인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노래인 Perdóname(뻬르도나메)도 감미로우며 인기가 있다.

또한, 스페인 음악에서는 '멜리스마'와 '스페인풍의 리듬'을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다. 멜리스마는 가사의 한 음절이 여러 음으로 장식되어 길게 늘여서 노래하는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도시에서 본 플라멩코 음악에서도 멜리스마를 찾을 수 있었으며, 이는 아랍풍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질질 끄는 창법이 특징이었다. 파블로 알보란도 유명해지기 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플라멩코 밴드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인기곡들을 들으면 스페인 음악에 녹아 있는 멜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스페인의 지하철을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타 볼까 하다가 지하로 움직이는 것이 싫어서 바르셀로나 산츠역까지 약 50분을 걸었다. 오늘은 흐린 날씨에 바람 불고 빗방울도 조금씩 내리는 것이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유럽 날씨가 원래 변화무상했던 것 같다. 반팔, 반바지 입고 밖을 걸으니 약간 쌀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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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정오에 출발한 고속열차는 아라곤 지방을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노선이었다. 아라곤 지방과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이 이전에는 아라곤 연합왕국으로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왕국과 대등한 세력이었다가, 아랍세력을 스페인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두 왕국이 연합한 이후로 오늘날의 스페인이 된 것이라고 한다.


Jota(호타)는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대표적 민속춤곡으로 호타 아라고네사(Jota Aragonesa)라고 불린다. 호타의 기원은 12세기초 아랍의 점령 시 전해진 아랍풍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호타곡은 비제(Bizet)의 오페라 카르멘 4 막에 나오는 '호타 아라고네사'이다.


고속열차는 거의 오후 3시가 되어 마드리드의 아토차역에 도착하였다. 내가 예약한 쿠엥카행 기차는 '차마르틴'이라는 다른 역에서 출발하므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지하철로 갈 수 있는 통로는 무슨 이유인지 막아 놓았고, 역 건물 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몹시 쌀쌀했다. 현재 오후 3시의 마드리드 기온은 21도였다. 약 일주일 전에 마드리드에 있을 때, 비슷한 시간에 기온이 33도로 무척 더웠는데, 무려 12도가 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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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안내하는 지하철 역을 도저히 못 찾았고, 피곤한지 스페인어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귀찮고 하여, 눈앞에 보이는 Libre 택시를 잡아 타 버렸다. 택시기사에게 오늘 춥다고 하니, 자기는 지금이 딱 좋다고 한다. 하긴 나도 자기처럼 긴팔, 긴바지, 잠바를 입고 있다면 그럴 것이다. 한국은 날씨가 어떻냐면서 스마트폰에게 '한국 현재 날씨!'라고 말하자 구글이 바로 화면에 보여 준다. 26도인 것을 보고, 뭐 비슷하지 않냐고 한다. 쿠엥카에 가기 위해 차마르틴역에 가며, 거기서 파브로 알보란 공연 본다고 하니, 오늘밤에 하냐, 그 가수 좋아하냐, 그 가수 게이라는 거 아느냐 등을 묻는다. 내가 진짜냐고 물으니, 그는 다시 구글에게 파블로 알보란이 게이 맞냐고 묻는다. 맞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나는 그가 게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노래가 좋지 않냐고 했다. 그는 그의 노래가 좋다는 의견에는 동의를 해 줬다. 차마르틴 역에 도착하자, 현금 없냐고 묻는다. 카드로 하고 싶다니, 미터기에 나온 돈보다 3유로가 더 붙는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려다 지금까지의 훈훈한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따지지 않고 결재를 했다. 약 15분 정도 이동하는데, 택시 요금이 약 30유로나 나왔다. 편하게 오긴 했지만, 택시기사와의 스페인어 회화비를 비싸게 지불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쿠엥카행 기차를 타기 전에 빵과 카페라테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열차를 타고나서는 화장실로 들어가 긴바지로 갈아입고, 긴팔 상의는 없어서 반팔 셔츠 안에 비슷한 색깔의 면티셔츠를 넣어 입고 나왔다.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는데, 조금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열차는 달리다 쿠엥카 역에 오후 6시경에 멈췄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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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건물을 나오니, 이전의 도시들의 역과 완전히 달랐다. 역 앞에 펼쳐진 것은 허허벌판이다. 같이 기차에 내렸던 사람들은 쿠엥카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태우러 온 차에 타고 역을 떠나고 있었다. 쿠엥카 시내까지는 도보로 약 1시간이 걸린다고 구글지도가 알려 준다. 우버 앱으로 택시를 검색했더니, 한참을 조회하다가 근처에 이용가능한 차량이 없다고 화면에 떴다. 역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보니 아무도 없고 불이 꺼져 있었다. 할 수 없이 고민하다가 역 밖으로 나와 배낭을 다시 한번 굳게 메고 쿠엥카 시내 방향 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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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5분 동안은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들판 길을 따라 걸었다. 앞이 훤하게 펼쳐진 전망이어서 경치는 좋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시골길을 따라가면서 넓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 홀로 떨어져 있는 시골 농가, 농가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닭들, 울타리 안에서 돌아다니는 말을 보았다. 말은 혼자 있어서 심심했던지 나를 보자 강아지처럼 기다란 꼬리털을 이리저리 나부끼며 내 근처로 다가왔다. 울타리 사이로 손을 넣어 콧등을 쓰다듬어 주니, 울타리를 사이로 해서 나와 나란히 걸어 주었다.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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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벌판이 끝나고 쿠엥카 도시의 표지간판이 보였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쿠엥카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보이는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어 일단 안심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이 보여서 노선과 시간을 확인해 보니, 내일 아침은 9시부터 운행시작이어서 기차시간과 맞지가 않았다. 다시 호텔방향으로 걸어가며 마을을 구경하였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지어졌던 5층 정도의 연립식 아파트형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기차역도 보였는데, 내가 내린 새 기차역에서 고속열차들이 서면서 이 기차역은 현재 많이 사용되지 않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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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호텔이 보였고, 현관벨을 눌렀다. 직원이 나오더니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현관 카드키를 주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에서 소도시가 가지는 배려 같은 것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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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에 체크인을 하였고, 공연장까지 걸어가는 시간, 저녁을 먹고 가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공연 입장 시작 시간인 8시 30분까지 여유가 많지가 않았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싶어 더운물에 몸을 씻고 나오니, 창문 밖에서 빗소리가 크게 들려서 커튼을 져쳤다. 소나기와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기온도 더 내려가고 있는 듯했다.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니 공연 관련 이메일이 와 있었다. 자기들도 예상치 못했고 어쩔 수 없는 날씨로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으며 결재한 비용은 100% 환불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허탈해졌다. 여행일정과 동선까지 수정하였고, 고생하며 바르셀로나에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여 이 조그만 소도시에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공연이 취소되다니 참... 좀 더 일찍 알려 줬으면 이 고생 안 했을 텐데. 날씨가 오늘 하루 너무 변화무쌍하여 급하게 공연 취소 결정을 알려 준 것이 이해가 되긴 했다. 비도 오지만, 바람이 불어서 야외에서 안전문제도 있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추스른 후에 저녁을 먹으러 호텔 밖을 나왔다. 인생이란 게 이렇게 변수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날씨가 추워서 불이 켜져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중국인들이 하는 중식당인데, 몇 가지 요리와 맥주를 시켜 놓고 추위에 고생한 몸을 녹였다. 특히 이 식당의 샥스핀 수프는 4유로 정도로 비싸지도 않고 맛있었다. 따뜻한 국물이 나의 몸과 영혼을 힐링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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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정리한 후에 어제 왔던 길을 거꾸로 걸었다. 한번 걸어 봐서 익숙한 길이지만, 특히 인적이 드문 들판 길은 아직 어두운 새벽이어서 겁이 났다. 하지만, 날이 조금씩 밝아 오며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있어서 안심했다. 우연하게 오게 된 소도시인 쿠엥카를 다시 한번 멀리서 바라보며 오전 8시 10분 마드리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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