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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 포르투갈의 지성의 도시

코임브라 대학교와 파두 음악

by 김주영

오늘은 포르투에서 코임브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어제 미리 답사를 해둔 길을 따라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낙후된 산동네의 좁은 골목길들을 따라 걷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관광객들과 마주쳤고, 그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 주었다. 영어 가이드가 마치 스코틀랜드 영어처럼 알아듣기 힘든 토운으로 유창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그의 말을 열심히 들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이런 산동네도 의미가 있는 곳이었구나 생각이 들며 혼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런 산동네 이바구길 투어를 외국인들에게 해 주어도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오후 1시에 코임브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의외로 만석이었다. 예약해 둔 맨 앞 좌석에 앉아서 버스가 달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버스기사는 이어폰을 끼고 누구와 얘기하는지 작은 목소리로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어에 나오는 단어가 간혹 들리는 것을 보면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2시 10분 정도에 버스는 코임브라의 어떤 정류소에 도착하였다. 승객들이 모두 하차하였고, 각자 제 갈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호텔까지 도보로 약 40분 정도 걸어가야 되는데, 강변길을 따라서 걷는 경로를 선택하였다. 조깅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앉아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 등이 강을 따라 늘어선 기다랗고 넓은 공간에 점처럼 놓여 있었고, 여행자인 나는 또 다른 점이 되어 같은 공간 속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호텔에 오후 3시에 체크인을 하였다. 예약하면서 미리 호텔비를 지불했지만, 도시세로 1유로를 내라고 하였다. 바르셀로나도 호텔 체크인 할 때 추가로 도시세를 약 5유로 정도 내었던 것 같은데, 1유로면 싼 편이었다. 도시세로 1유로 동전을 건네니, 차가운 맥주 한 병을 뚜껑을 따서 건네주었다. 환영하는 의미로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50분가량 호텔까지 걸어온 나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었다. 호텔방까지 걸어가며 한 병을 다 마셨다. 갈증이 나서 그런지 맥주맛이 꿀맛이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4시 30분경에 호텔을 나왔다.


늦은 오후에 방문할 곳은 코임브라 대학교로 정했다. 이 대학교는 1290년에 세워졌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들 가운데 하나이다. 학생들은 검은 망토를 입고 다니는데, 헤리 포터의 작가도 이 대학 교복에서 영감을 받아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학교의 교복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실제 코임브라 대학 캠퍼스를 가보니, 아직까지는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망토를 둘둘 말아서 한쪽 어깨에서 반대쪽 허리까지 대각선으로 메고 다녔다. 안에는 흰색 긴 셔츠와 검은색 치마 혹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코임브라 대학교는 언덕의 정상에 있기 때문에 가파른 오르막을 약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 나 같은 관광객들이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학교의 제일 오래된 건물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나마 보이는 학생들은 신입생들을 데리고 학교 투어를 해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코임브라 대학은 포르투갈의 최고 명문대학으로 사회 여러 분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여기에서 배출되고 있다. 2013년 정도에 나온 유럽 영화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이 대학 학생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오고, 영화제목도 그래서인지 로맨스 영화로 잘못 알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1960~1970년대를 다루기 때문에 영화 전반부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영화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극 중 화자의 성격이 강하며, 코임브라 대학교 학생으로서 만나게 된 두 남자와 둘 사이에 끼어드는 한 여인이 주된 플롯의 구성을 이룬다. 당시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탄압과 이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활동이 배경에 깔리므로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 유럽에서 만든 합작 영화이다.

외부 이미지 파일 사용하였습니다(영화 포스터)

코임브라 대학 캠퍼스를 구경하고 내리막 길을 내려갔다. 오후 6시에 예약해 둔 파두 공연장인 '파두 아우 센트루'(Fado ao Centro)로 가는 내리막길은 아주 운치가 있는 아름다운 골목길이었다. 포르투갈의 파두 음악은 리스본 파두와 코임브라 파두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오늘 공연은 전형적인 코임브라 파두의 공연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공연장의 운영과 연주자와 가수들도 코임브라 대학출신들이라고 한다. 오랜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코임브라 파두는 세레나데의 성격을 가져서 리스본 파두에 비하여 멜로디가 더 아름답고, 가수들이 남자만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코임브라 대학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이 사는 건물 밖에서 파두를 부르면, 여학생은 마음에 들 경우, 방안의 불을 세 번 껐다가 켜거나, 기침을 세 번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남자는 그 여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60~1970년대에는 당시 포르투갈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하여 사회적 이슈를 다룬 가사를 코임브라 학생들이 파두로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1974년 4월에 있었던 무혈 혁명(카네이션 혁명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다행히 유혈 충돌 없이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포르투갈의 민주화가 오게 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코임브라 대학 출신 가수의 파두 노래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파두 공연장인 '파두 아우 센트루'(Fado ao Centro)의 뮤지션들은 포르투갈 기타리스트, 클래식 기타리스트, 가수들 모두 남성이었고, 그들 모두 코임브라 학생들이 입던 검은 망토를 입고 공연을 하였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어부의 노래, 고향을 떠난 이가 코임브라를 그리워하는 노래, 여학생을 밖으로 불러내기 위해 창밖에서 남학생이 부르는 노래,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당시에 불리던 노래, 코임브라 대학교 졸업 시에 부르던 노래의 파두를 공연하였다. 노래하기 전에 앞으로 부를 노래를 설명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이 마치자,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있는 조그만 파티오에서 포르투갈 레드 와인을 제공하였다. 일행끼리 온 사람들은 파티오에서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혼자여서 와인만 마신 후에 공연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와 버렸다.

내리막길을 감상하며 더 내려오니, 평지가 나왔고 상가와 레스토랑이 밀집된 거리가 나왔다. 이 지역이 코임브라에서 제일 번화가인 것 같았다. 한국분식점과 한국 치킨집도 보였다. 유럽식으로 노천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고, 치킨집은 제법 유럽인들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어 볼까 하다가 귀국이 며칠 안 남아서 현지 음식을 먹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산타 크루스 카페(Café Santa Cruz)를 찾아가서 밤에 다시 오기 위해 위치를 파악하였다. 이 카페에서는 공연비를 별도로 낼 필요가 없이 커피나 베이커리를 시켜 앉아서 무대에서 하는 파두 공연을 볼 수가 있었다. 밤 10시에 공연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시간을 더 보내다 올 생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다리를 건너서 강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았다. 다리를 건너면서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까, 멀리서 보는 구도심의 경치가 너무 멋있었다. 특히 해질 무렵에 노을을 받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덕 정상에 있는 코임브라 대학교의 오래된 건물 아래로 많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의 반대편은 상대적으로 현대식 건축물이 대부분이었고, 주거지역들도 최근에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았다. 좀 걷다가 더 나아가는 것을 중단하고 돌아섰다.

다리를 다시 건너기 전에 도로변에 레스토랑들이 좀 있었는데, 그중 한 식당의 입구에 음식의 사진들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배도 고프고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더 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멈추어 서서 벽에 걸린 사진 형식의 메뉴판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어 노천 테이블에 바로 앉아 버렸다. 생선(Monkfish로 상어과에 속하지만 가오리처럼 생겼다고 함), 새우와 함께 쌀을 넣어서 끊인 수프와 비슷했는데, 색깔이 붉은 게 맵게도 보였다. 종업원이 화이트 와인을 권해서 조그만 병으로 같이 시켰다. 와인이 먼저 나와서 먼저 마시고 있으니까, 드디어 내가 기대한 음식이 나왔다. 우선 첫눈에 대만족이었고, 다음에는 맛도 내가 기대한 맛이었다. 짜지 않고 약간 기분 좋을 정도로 매운맛이었고, 같이 먹는 쌀밥의 감촉이 입에 황홀하게 와닿았다. 생선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도 너무 좋았다. 오늘 저녁식사 선택은 대 성공이었다. 그동안 현지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거의 빵과 샌드위치로 해결했던 나는 매우 감격하였다. 메인 음식의 양이 혼자 먹기에는 약간 많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 먹을 때 즈음에 종업원이 에스프레소를 추천하길래 기분 좋게 수락했다. 입가심하기에, 조그만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가 마셔 보니까 괜찮았다. 와인 한 병, 이 훌륭한 메인 메뉴, 에스프레소 한잔이 모두 22유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행복했다. 와인으로 살짝 취기가 돌았지만, 저녁 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다시 다리를 건너서 구도심으로 넘어왔다.

저녁 9시 45분 정도에 산타 크루스 카페(Café Santa Cruz)에 들어가서 아이스커피와 전통 페스트리를 시키고 무대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서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10시 10분이 되자 공연자들이 무대로 나왔다. 노인 가수 한 명과 포르투갈 기타리스트 한 명, 클래식기타리스트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은 다른 파두 공연에 비해서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게 공연 촬영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공연장은 사진 찍는 정도만 허용하든지, 비싼 공연의 경우 아예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공연도 있다. 하물며 동영상 촬영을 허용하기는 극히 예외적이었다. 오늘 밤의 공연장에서는 모든 곡들을 공연자들 바로 앞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는 호강을 누릴 수 있는 게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노인 가수분께서 테이블을 돌며 자신들의 노래 CD를 사겠냐고 물으며 돌아다녔다. 나에게도 오시길래 15유로를 내고 한 장 사드렸다. CD에 사인을 해 주겠다며 이름이 뭐냐고 물으셔서, 여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눈이 나빠서 잘 안보이시는지 기타 연주자에게 여권에 나와 있는 내 이름철자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셨다. 그분이 사인을 한 후에 CD를 나에게 주셨다. 밖으로 나와서 기타리스트 두 명이 서있길래 말을 걸어 몇 마디를 나누었다. 포르투갈 기타는 6개의 현이 각각 다시 두 개로 나뉘어 총 12개의 줄로 되어 있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는 파두 공연에서 베이스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내 느낌을 말하니, 맞다고 대답한다. 나한테 기타 칠 줄 아냐고 해서, 클래식 기타 배우고 있다고 했다. 박규희 클래식기타리스트 아냐고 물어보니, 유명한 연주자라고 대답한다. 포르투갈 기타 연주자 분은 한국에도 두 번 정도 가 봤다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다시 호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포르투갈을 떠나서 다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날이었다. 오늘밤이 코임브라에서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함, 그리고 음식, 아름다운 풍경, 파두 공연 들은 모두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코임브라 대학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야경을 다시 한번 쳐다보다가 호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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