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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드리드로

여행을 끝내며

by 김주영

오늘은 코임브라에서 포르투로 와서 다시 마드리드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저녁 시간 전까지는 하루종일 이동하고 기다리고 하는 시간들이다.


코임브라에서 머문 호텔에서 나와 도보로 30분 정도를 이동했다. 올 때는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을 이용했는데, 돌아갈 때는 햇빛이 비춰서 더울 것 같아서 큰 도로를 따라 그늘이 진 곳을 따라 걸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것 같은 서양 젊은 커플이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포루투 공항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오전 11시 25분에 출발하였다. 나는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좌석에 앉자마자 졸음이 와서 바로 자버렸다. 어제저녁에 먹은 화이트 와인 한 병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혼자 먹는 와인이어서 작은 병으로 마셨더니, 좀 어중간했던 모양이다.

버스 안에서 눈을 뜨니, 내가 코임브라로 올 때, 출발했던 포르투 시외버스터미널에 버스가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승객들을 몇 명 내려주고 5분 정도 머문 후에 공항으로 바로 출발해 버렸다. 얼마 후, 포르투 공항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제까지 비가 내렸던 날씨는 전혀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하늘은 맑았고 햇살이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르투갈의 마지막 하늘에 작별을 고하고,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체크인 검색대를 통과해서 탑승구까지 계속 이동하였다. 마드리드로 가는 에어 유로파 항공기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승객들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창가 쪽 좌석이어서 입구에 앉은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다. 손목에 찬 시계의 바늘을 한 시간 늦게 다시 맞추었다. 스페인은 서머타임이 적용되고 있어서 포르투갈보다 한 시간이 빠른 것 같았다. 비행기는 오후 4시경에 포르투갈의 포루투 공항을 이륙하였고, 상승하는 과정에서 대서양이 보였다. 서쪽으로 선회하더니, 육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창가 좌석에 앉아서 비행기 창을 통해 유럽의 하늘과 지형들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포르투 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 15분 후에 비행기는 스페인 현지 시간으로 저녁 6시 15분에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마드리드 도심의 호텔까지 택시를 예약해 놓았는데, 출국장 밖으로 나와서 20분이 지나도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내 이름을 적은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 이름이 적힌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 줬는데, 왓스앱으로 기사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고, 큰 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현재 내 위치와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었다. 곧 기사는 나의 앞에 나타났다. 성격이 과묵한 것 같고, 별로 말이 없으신 분인 것 같았다. 왜 늦게 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도로를 달리면서 그가 왜 늦게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어서 퇴근시간으로 교통정체가 있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였다.


밤 10시 30분에 호텔 근처의 공연장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예약해 놓았고, 공연 시작 전까지 약 3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밤 구경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짐만 호텔 방안에 놓아두고 거리로 바로 나와 버렸다. 스페인의 수도답게 마드리드의 도심은 활기가 넘쳤다. 어둠이 내려도 거리의 레스토랑과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일 방문할 프라도 미술관의 위치와 출입구를 확인하고 공연장 방향으로 다시 걸어왔다.

공연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서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였다. 주문하기가 복잡하여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를 시켰다. 스테이크도 나와서 오랜만에 고기맛을 맛볼 수 있었다. 레드 와인도 한잔하고 공연시작 전에 식당을 나왔다. 마드리드의 물가는 비싼 편인데, 방금 식당에 먹은 것은 오늘의 메뉴라서 그런지 음식 내용에 비해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인 14유로가 나왔다.

오늘 방문한 플라멩코 공연장인 '타블라오 1911'(Tablao 1911)은 마드리드에서 제일 오래된 플라멩코 공연장으로 1911년부터 운영한 곳으로 역사가 112년이나 된 곳이었다. 플라멩코가 탄생한 안달루시아 지방인 그라나다, 세비야에서 본 공연은 플라멩코의 전통에 다소 충실한 것이었다고 느껴졌다. 마드리드에서 본 이 공연은 상대적으로 현대식이었다. 우선 음악이 룸바 플라멩코의 느낌에 가까웠고, 두 개의 스페니쉬 기타에 바이올린 한 개와 카혼 한 개, 가수 두 명이 연주와 노래에 합류하였다. 플라멩코 춤은 여자 2명, 남자 1명이 췄다. 그라나다 동굴 플라멩코는 상당히 투박한 맛이었는데, 마드리드의 플라멩코 공연은 세련되었다. 사진촬영이 허락되었는데, 동영상 촬영까지 허락하는지는 안내방송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공연동안 계속 동영상을 촬영해 버렸다. 다행히, 촬영을 제지하는 직원들이 없었다. 포르투갈에서 파두 공연을 보고 오니, 플라멩코는 다소 센 느낌이었다. 댄서들의 눈빛들도 강렬했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한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 마음을 뒤로 한채,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호텔로 바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솔광장, 마요르공장까지 걸어가 보았다. 스페인에 도착했던 첫날에 방문했던 곳들이어서 감회가 깊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구경하였고, 그들의 전통음악에 대하여 공부하고 느끼고 왔다. 나 자신이 2주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믿었다. 자정 1시가 넘어가자, 나는 다음날 귀국일정으로 피곤하지 않기 위해 호텔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은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샤워 후에 짐을 정리하여 아침 11시가 조금 못 되어 체크 아웃하고 호텔을 나왔다.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어서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고야와 피카소 작품들을 어느 구간에서 특별 전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고야의 작품들은 이전에 사진화보집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그 진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피카소는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에 다닐 때, 프라도 미술관에 와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한다. 오래전에 같은 공간을 걸어 다녔을 피카소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거의 모두 종교적인 내용이었고,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역사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꽤 작품들의 수가 많았다. 약 3시간 정도를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낸 후 밖으로 다시 나왔다. 미술관 가까이 있는 공원에서 어떤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외롭게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나도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었으므로, 그의 연주를 두곡 정도 감상한 후에 기타 가방에 2유로를 놓아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나와 근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에 아토차 기차역으로 약 15분 정도를 걸어갔다. 기차역 앞에 공항 직행버스를 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였다. 5유로를 내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미술관에서 너무 걸어 다녀서 피곤했는지 이내 잠들어 버렸다. 다행히 내가 내려야 되는 공항의 제1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에 눈을 뜰 수가 있었다.

탑승구까지 직행하기 위해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 밖에서 마드리드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게 될 딸과 함께 약 2주 전에 이곳에 도착하였고, 코르도바에서 딸과 헤어진 후에 약 10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하고 왔다. 50대 초반의 나에게 오랜만에 투자를 해 본 값진 경험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결정하지 못해 망설였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아내가 나한테 한 말이 생각났다. "오십 초반까지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런 시간과 돈을 자신한테 투자도 못해요? 그냥 고민하지 말고 결정하고 갔다 와요!" 그렇다. 잘 한 결정이었다고 판단이 되었고 아내에게 속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엘레나를 위한 발라드'(Ballata per elena bellissima)를 아내에게 연주해 주고 싶었다. 이 곡은 러시아 클래식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Victor Kozlov(빅토르 코즈로프)가 1994년에 작곡하였으며 그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헌정한 곡이다.

https://youtu.be/HBK7tG8pX48?si=kH5fV4AQWwgvnsTY


2주간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정이 저문 시점에서, 포르투의 호텔방 벽에 적혀 있었던 글을 아래에 옮기며 나의 여행기를 끝맺고 싶다.


Vive cada instante

Ama a cada hora

Disfurta cada segundo


매 순간을 살아라

매 시간을 사랑하라

찰나를 즐겨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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