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합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시합이 일주일이 채 남지 않게 되자, 관장은 트레이너들을 시켜서 내가 경기에 완전히 준비되도록 체력 강화 및 내가 취약한 분야를 집중 훈련시켰다. 라차담넘 경기장에 나오는 선수들은 프로선수들의 최소 기량 이상을 갖추었기 때문에 두 선수 사이의 수준의 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 이상은 잠깐의 방심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선수의 차이 중 하나는 경기 중 체력안배 능력이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은 아니며 오랜 경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시합경험이 몇 번 밖에 되지 않는 나로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장과 트레이너들로부터 훈련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전수받는 길 뿐이었다.

스리랑카 출장은 백 퍼센트 준비되었으며 시합까지의 남은 며칠은 온전히 경기에만 신경을 써야만 했다. 관장은 라차담넘 경기장이 내가 이전에 경기를 가졌던 링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다. 계속되는 관중들의 환성 소리와 귀가 거슬리도록 울려 되는 악기 소리들이 나를 처음부터 당황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상대 선수는 나를 하나의 제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실전 경험에서도 월등히 앞서며 라차담넘 경기장에서는 여러 번 시합을 가진 적이 있는 선수라고 하였다. 관장은 그 선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중요한 경기는 아니지만 내가 뛰는 시합에도 관중들 및 도박사들의 판돈이 걸리기 때문에 상대 선수는 나를 초반에 이겨 버리려고 할 것이므로 첫 라운드는 어떻게든지 잘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에게 판돈을 거는 사람들은 역선택을 통해서 더 큰돈을 따려고 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내가 이길 경우는 낮은 시합임이 분명하였다.


관장이 나의 시합 상대로 연결하려고 했던 선수가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 나와 대전하지 못하게 되고 엉뚱하게 상대적으로 강한 선수와 연결되었음이 짐작되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한 선수일지라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뜻 밖에 대범해졌다.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방콕생활에서 세 번째 경기이자 마지막 시합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이 시합은 태국을 떠나게 되며 내가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식으로 엄숙히 여겨졌다.


외국인들을 자신의 체육관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나를 홍보용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관장의 계획은 예상보다 강한 선수가 나의 대전 상대선수로 정해진 이후에는 차질이 빚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관장은 한때 라차담넘 스태디움 및 룸피니 스태디움을 주름잡던 무에타이 미들급 챔피언다운 카리스마와 경험을 지닌 남자였다. 내가 남은 시간 동안 겁을 먹어서 기가 죽지 않도록 정신적 부분을 강하게 유지시켜 주려고 그는 신경을 섰다.


"장. 무에타이에서 중요한 정신은 어떠한 상대와도 맞서 싸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에요.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키가 더 크더라도, 체중이 더 나가더라도, 절대 주눅이 들지 않고 용감히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무에타이 하는 사람입니다. 혹은 그 반대의 선수를 만나더라도 절대 상대 선수를 얕잡아 봐서도 안 돼요. 그리고 경기에서 현란하게 이기는 모습보다는 힘들어도 견디며 끝까지 버티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박수를 치게 되죠. 나의 오랜동안의 수련에서 터득한 교훈입니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


관장은 나의 주먹을 잡고 시합 전 날의 마지막 훈련을 마치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드디어 시합의 날이 왔다. 관장과 트레이너들과 같이 차를 타고 라차담넘 경기장으로 이동하여 건물 입구에 내렸다. 왕실의 색깔인 노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된 큰 건물이었다. 온갖 깃발과 함께 큰 대형 간판에는 오늘 시합에 나오는 선수들의 사진들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오늘의 주요 시합으로 지정된 선수들의 사진들이 정중앙에 크게 위치하였으며 그들 옆으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시합에 참가할 선수들의 사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도 나의 사진은 맨 끝에 위치하지는 않았다. 외국선수임을 배려해 주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추측이 되었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사진의 포즈상 나는 왼손잡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사진이 인쇄되며 아마 거꾸로 나온 듯하였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며 관장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선수대기실로 들어와서 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첫 경기가 시작된 듯하였다. 링 위에 싸우고 있는 선수들의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경기장 안은 굉장한 함성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아마 자기가 판돈을 건 선수를 응원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와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트레이너가 나의 주먹에 밴드를 감아 주기 시작하였다. 이제 몇 경기 후에는 나의 시합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나의 몸에 기름을 발라 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고 나서는 트레이너는 나에게 태국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기도를 해 주었다. 그가 더 걱정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밖에 있던 경기장 직원이 선수대기실 안에 있는 우리를 보고 뭐라고 외쳤다. 그러자 관장과 트레이너는 나를 데리고 대기실을 나와서 링으로 가는 길의 입구까지 와서 멈춰 섰다. 링 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합이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링 위에 쏟아지는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두 선수들은 마지막 라운드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일분이 남게 되자, 링 위의 선수들은 이미 상당히 지친 듯이 서로를 빙빙 돌기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자 경기장 안의 관중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심판은 경기를 잠깐 멈추고 양 선수들을 불러서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를 가를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경기를 하기에는 두 선수들은 지쳐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에 경기는 끝났고 승자가 결정되자 두 선수들은 링을 내려갔다.


관장은 링으로 가자고 트레이너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관장, 트레이너들과 함께 링으로 가는 레인을 따라 걸어 나왔다. 링 사이드의 간이식 의자에 앉아 있는 관중들 속에서 친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셀린과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체육관에서 같이 강습을 받았던 태국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해 주었다. 걸어가면서 그들에게 나는 목례를 하였고, 계속 걸음을 진행하여 링 위로 올라갔다. 링 위에 비치는 조명은 의외로 강렬하였고 나에게는 관중석은 상대적으로 아주 캄캄해져 버려서 나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조차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등석, 삼등석 구역 관람석의 태국 현지인들의 함성소리로 나의 귀가 먹먹해져 갔다. 그리고 관장의 말대로 끊임없이 울려대는 태국 전통 피리소리와 타악기 소리는 나의 정신을 몹시 혼미하게 하고 있었다. 관장이 일찍부터 이 점을 귀띔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요란스러운 소리에 나는 더 당황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상대 선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태국인들 중에서 눈이 움푹 들어가고 무표정이며 강인하게 생긴 남성들을 가끔 보곤 했었는데, 그런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의 가슴과 등에는 녹색으로 온갖 문형의 문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 근육을 보니 이전에 시합을 가졌던 선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해 있었으므로 그의 훈련강도와 경력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강한 상대일 것이라고 익히 듣고 있었지만 링 위에서 막상 상대 선수를 보게 되니 긴장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장은 잠시 후 없어지고 나는 관장이 나에게 전 날 들려준 무에타이 정신을 속으로 떠 올리고 있었다.


상대 선수는 나를 잠깐 흘깃 보더니 바로 돌아 서 버리고는 시합 전에 행하는 무에타이 선수의 의식을 링 위에서 시작하였다. 링의 중앙에 자리 잡은 그는 전사로서의 의식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음악들이 그의 춤에 더해지며 그의 의식은 더욱 현란해져 갔다. 나도 그의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의식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의식이 끝나자 각자의 링 모서리로 돌아왔고, 관장은 나에게 합장을 하며 나의 머리띠를 벗겨 주고 내려갔다. 코너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돌아 섰다. 상대방은 이미 자리를 잡고 무표정의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종이 울렸고 심판은 우리 둘 사이의 공간을 손으로 한번 강하게 아래로 그으면서 시합의 시작을 알려 주었다. 관장의 예상대로 경기 시작 후 이십 초 정도가 지난 뒤에는 그의 일방적이고 거센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합의 선수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그들보다 기량이 훨씬 앞서고 노련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었고, 타격감이 빠르고 킥을 위한 사전 회전력이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간적이었다. 그의 스텝으로 보아서 펀치와 킥이 예상되면 바로 공격이 날아왔다. 확실히 월등한 상대였다. 하지만 나는 기가 죽지 않았다. 그의 펀치와 로킥, 미들킥이 강도 있게 이어져 갔다. 그는 자신감이 더 붙었는지 힘을 더 실어 가기 시작했다. 힘이 실려 갈수록 방어하는 입장인 나로서는 그의 공격에 더 큰 충격이 느껴지며 힘들게 고통을 참아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공격에 힘이 더 들어 갈수록 그의 예비동작이 커졌고, 공격 사이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의 공격이 이전보다는 예상이 되었고 방어할 시간도 더 생기게 되었다. 관중들은 그의 공격이 이어지며 나에게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환성을 연발하였다.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한 공격이 어느새 가세되었다. 이런 근접 전은 그동안 트레이너들을 통하여 충분히 보완이 되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그의 공격 속에서도 나에게 치명타를 주는 것은 하나도 없게 나는 만들 수 있었다. 첫 번째 라운드를 힘겹게 버텨 내었다. 그의 공격 패턴을 거의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대로 수비로 일관하여 계속 당하다간 충격이 쌓여 TKO를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관장은 일단 첫 라운드를 버텼으니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트레이너는 나의 상처부위가 가능한 한 빨리 아물도록 재빨리 마사지를 해 주었고, 시원한 연고를 발라서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었다.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으며, 상대방은 패턴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는 나를 손으로 뒤로 밀어 버리더니 순간적으로 빠르고 강한 하이킥을 날렸다. 그의 하이킥은 날아오르는 각도와 방향이 특이하였고, 자신만의 하이킥 스타일이 개발된 듯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나는 상대 선수에게 하이킥을 한 번 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이미 그의 예비 발동작에서 하이킥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오른발을 재빨리 뒤로 이동시켜서 몸을 뒤로 움직이게 하여 그의 가공할 하이킥을 피하였다. 그의 왼쪽 다리는 내 얼굴 앞 오 센티미터 정도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이킥의 회전으로 돌아 서 버린 그의 옆구리 부분이 나의 눈에 들어왔고 나는 순간적 회전력으로 미들킥을 날렸다. 그는 피하는 스텝을 본능적으로 취하였지만 나의 순간적 속도를 막아 내지는 못하였다. 자신의 옆구리에 나의 미들킥을 허용해 버리고 나자 그는 갑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고 분노해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팔을 걸어 상대의 머리 뒷부분을 잡고 맞붙은 상태에서 그는 몸을 옆으로 비틀어서 나의 중심을 무너뜨린 뒤에 나를 옆으로 넘어뜨려 버렸다. 나의 몸은 잠시 동안 공중에 머물다 링 위에 떨어져 버렸다. 링 바닥에 떨어질 때 받은 충격으로 나는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자 그는 다시 맹렬히 공격해 들어왔다. 오른발을 뻗어서 그를 밀어내는 방법으로 두 번째 라운드의 남은 일 분을 버티어 내었다. 나는 링 모서리의 의자에 앉아서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 힘들게 집중하며 관장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 그가 미쳐 버려서 저 선수는 힘을 너무 소진하였을 거예요. 장은 정말 두 번째 라운드를 잘 버텼어요. 마지막 세 번째 라운드에서는 상대방이 이전 라운드처럼 거칠게는 몰아붙이지 못할 테니까, 장은 이제부터는 훈련한 대로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고 마지막 일 분부터는 승부수를 띄우도록 해요."


관장도 흥분해 있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최대한 많이 해주며 링을 내려갔다.


마지막 라운드의 종이 울렸다. 예상 밖으로 그는 종이 울리자 바로 나에게 뛰어 왔고 점프를 하여 무릎 킥을 날렸다. 나는 순간 반응으로 나의 오른쪽 몸을 안으로 돌려서 그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프로선수인 그가 나를 너무 얕보고 시합에 나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가 있었다. 이번 라운드에서는 순간적인 방심이 서로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한방들이었다. 그가 노렸던 것은 KO였던 것 같았다. 아마 그가 판정승으로 이기려고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더라면 나는 이길 수 없는 경기였었다. 그가 더 승점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시간을 영리하게 경기하는 것이 더 유리하였었다. 그러나 이름 없는 나 같은 외국인에게 판정승으로 이기는 것이 그에게는 아마 수치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의 훅 펀치에 나는 비틀거렸고, 나의 스트레이트, 어퍼컷에 그도 흔들렸다. 하지만, 마지막 일 분이 남게 되자, 나는 전형적인 무에타이 기술로는 그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서로가 서로의 기술을 알아 버렸고, 시간이 나에게는 불리해져만 갔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길 만큼 링 위에서 과감해졌다. 맡붙어서 싸우다 다시 그를 살짝 밀치고 뒤돌려 차기를 순간적으로 날려 버렸다. 나의 오른발이 그의 턱에 적중하였음을 다음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나는 택견을 오랫동안 배웠고, 대학생배 전국 택견대회에서 수상한 적도 있었다. 택견의 순간적이고 빠른 회전력에서 나오는 힘과 기술은 무에타이 선수에게는 익숙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그 기술을 마지막 라운드의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휘청거렸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링 위에 쓰러졌다. 심판은 카운트를 시작하였으나 그는 시간 내에 일어서는데 실패하였다. 심판은 KO 승임을 알리는 손짓을 하였다. 청중들은 관중석이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질러 대었다. 링 사이드의 아는 얼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링 밑으로 달려와 열광하고 있는 모습이 정신없이 서 있는 나에게 보였다. 관장과 트레이너들이 링 위로 올라와서는 나를 끌어안았다.


나의 마지막 시합은 이렇게 막을 내렸고, 환호를 받으며 링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