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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마표류기 Sep 16. 2021

말 사귀기 9

23. 질주본능



오늘 아침 날씨는 어제보다 쌀쌀했지만 준비운동으로 다행히 나와 말의 몸이 금세 데워졌습니다. 마장 중간중간에는 장애물들이 세워져 있고, 다른 말들도 5마리 정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말을 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말 한 마리가 질주하고 있네요. 이런!. 기승자가 말을 컨트롤하지 못해 녀석이 화가 잔뜩 난 모양입니다. 그냥 질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뒷발차기, 점프, 앞발 들기를 하며, 잠시 멈췄다가 다시 뛰는 등 정말 부산하게 돌아다니네요. 그랬더니 다른 말들까지 덩달아 날뛰기 시작합니다. 불안감이 전염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가 15분가량 지속되면서 마방에 있던 관리사 5분이 나와서 잡으려 애썼지만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다가가면 도망가고, 또 다가가면 또 도망가고.

사실 평소에 침착하고 훈련이 잘된 말이라고 해도 날이 춥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흥분하기 쉽습니다.

 특히 겨울날 실내가 아닌 야외 마장에서 말은 오로지 기승자만을 믿는 상황입니다.

기댈 펜스도, 봐줄 교관님도 가까이에 없는 상황에서 기승자가 불안해하거나 부조를 잘못 보내 말을 괴롭힌다면 말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멀리서 날뛰던 ‘망아지’ 같은 놈이 내 말에게로 달려옵니다. 속으로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필란더는 유난히 잘 놀라고 날뛰는 말인지라 더더욱 손에 땀이 났습니다.  하지만 나마저 불안해하면 ‘아비규환’이 될 것 같아 심호흡을 해 봅니다. 몸에 힘을 빼고 말이 평소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실제로 기승자가 숨을 고르게 쉬면 몸에 긴장이 풀리기 때문에 기승자의 체중이 고르게 말에게 분산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면 말이 중심을 잡기 편합니다. 하지만 말 위에서 고른 호흡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경력이 많아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기승자가 흥분하거나 겁을 먹으면 정면을 봐야 하는 시선이

땅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 달려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고삐를 돌 리거

나 피하면 그나마 잡고 있던 중심도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말도 놀라고 나도 놀라는

악순환의 연속이 됩니다.

 안심하세요. 질주하는 말이 나에게로 온다 해도 말에게도 눈이 있기 때문에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뛰어오는 말 때문에 우리마저 같이 날뛰는 것입니다. 역시나 나의 말도 예외 없이 같이 날뛰네요. 나는 추진을 줘 앞으로 가려했고 고삐는 당기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작은 원을 돌려고 했습니다. 작은 원을 돌면 말이 움직이는 궤적이 작아져 나의 고삐나 부조에 잘 반응하고 속도도 줄어들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행히 필란더의 속도가 줄어들고 반응도 좋아졌습니다. 동시에 여러 사람에 의해 날뛰던 말도 붙잡히고 결국 마방으로 끌려갑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진땀 나는 하루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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