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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마표류기 Sep 17. 2021

말 사귀기 10

24 나무보다는 숲



기승을 하기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납니다. 마방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녀석을 생각하면 아침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게 사실입니다. 마방에 도착해보니 그 녀석이 맑은 눈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답답하니 제발 운동시켜 달라고, 땅을 박박 긁으면서 말하네요. 오늘은 비가 와서 실내마장으로 향합니다. 실내마장은 외부와 달리 사방이 막혀 있어 집중이 잘되는 편입니다. 말들은 멀리서 나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실내마장의 방음 기능은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비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말은 너무 예민하고 사회성이 떨어져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말들이 지나다니거나 얼쩡거리면 불편해합니다. 또한 순간 제가 방심해 조작을 잘못할 경우에는 튀거나* 반항해 버립니다. 참 힘든 말입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합니다. 실내마장으로 말들이 많이 밀려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들로 북적북적 대기 때문에 평보, 속보, 경속보를 연습하는데 다른 말들에 의해 길이 막힙니다. 몇 발자국 가다가도 다른 말의 궤적에 의해 내 말의 궤적이 끊겨버립니다. 자리를 옮기거나 방향을 바꾸더라도 말들이 워낙 많아 계속 끊기고 결국 말이 짜증을 냅니다.

 그런데 옆의 선배는 이 복잡한 공간을 잘 피하면서 다니네요. 심지어 답보변환**까지 하면서 여유를 부립니다.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선배님 왈, “아직 마장 전체를 보지 못해서 그래.”

  이것은 자동차 운전과 원리가 같습니다. 초보자는 운전대만 잡고 앞차만 보면서 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저도 초보때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앞차가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것에 지배당할 만큼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숙련된 운전자는 도로 전체를 볼 줄 압니다. 앞차, 뒤차, 옆 차의 간격을 보고 샛길로도 빠지고 속도에 변화를 주기도 하며 유연하게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전 아직 초보자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전체를 볼 여유가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좁은 공간에서 수없이 연습하며, 말의 경로가 막히면 피해 가거나 속도를 줄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수많은 변수에 익숙해지려면 30년을 타도 모자란다는 교관님의 말에 공감한 하루였습니다. 나무보다는 숲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 튄다: 말이 날뛰거나 혹은 놀라면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표현하는 말이다.

** 답보변환: 구보에서 행해지는 동작으로 우구보에서 좌구보, 혹은 좌구보에서 우구보로 발을 바꿀 때 이행운동 없이 공중에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플라잉 체인지(Flying change)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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