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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마표류기 Sep 16. 2021

말 사귀기 8

22. 만드는 데 5개월, 망가뜨리는 데 5분


     

말의 기억력은 대단합니다. 아픈 상처를 평생 기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를 전문용어로 악벽이라고 합니다. 말은 간혹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는 심리적 불안이나 육체적 고통을 느낄 때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져 못된 버릇이 됩니다. 전문가일수록 좋은 말에게 나쁜 습관이 생기지 않도록 말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한번 나쁜 습관이 생기면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게 말에게도 적용됩니다. 물론 전문가의 손길을 집중적으로 받아 7~8개월 정도 훈련을 하면 고칠 수도 있습니다. 악벽이 없는 말을 만들려면 기승자는 오랜 기간 정성을 들여 말에게 나쁜 버릇에 대한 정확한 교정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배웠던 자전거 타는 방법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것만 보아도, 처음 받았던 교육은 쉬이 고쳐지지도 또 잊히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탔던 ‘필란더’라는 말은 출구만 보면 거기로 나가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또 반대편에서 말이 다가오면 안절부절못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튀어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악벽을 고치기 위해 저는 출구를 무시하고 지나가 보기도 하고, 일부러 다가오는 말 옆으로 추진을 주어 지나가 보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훈련을 통해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완벽히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만나기 이전에 필란더는 특히 앞발 들기 일명 ‘기립’을 정말 잘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악벽 중에서도 최고로 위험한 악벽입니다.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넘어서 말에 깔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말 조련사 분이 이 악벽을 고치기 위해 학생 선수 중 몸무게가 100kg인 친구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한동안 탔더니 더 이상 앞발 들기를 하지 않았다네요. 제가 말이어도 정말 앞발을 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승마에서 기승자와 말이 연애를 하듯 서로를 보듬어 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좋은 말을 만드는 데 최소 5개월이 걸리지만, 잘못된 부조나 기승자의 나쁜 습관으로 말을 망가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합니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상처 받은 마음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 이 말을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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