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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Feb 23. 2023

위빳사나 명상과의 첫 만남 (1/4)

<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2)


2022년 4월, 나의 직장 생활에서 첫 '쉼'을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경험하고 공부하고 수련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명상>이었다.

왜였을까? 명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휴직 기간 동안 가장 신경써서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은 '나만을 위한 어루만짐'이 아니었을까...

머리와 가슴이 모두 엉켜있는 생각과 감정들로 복잡하니, 

편안하게 어루만지면서 풀어내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명상을 한다면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되어 마음도 차분해 지는 대충 이런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출처 : 구글



명상은 2019년도에 한 차례 경험을 해보았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2019년,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어 왔던 친분이 있는 스님이 이런 제안을 해주셨다.

"너, 마음 어지럽고 그러면 매주 금요일마다 스님한테 와서 명상 좀 해봐. 내가 너 등록시켜줄께, 내려와."


그렇게 처음 인도 명상 기법 중 하나인 '사띠' 명상을 접하게 되었다. *사띠는 '알아차림'이라는 의미

몇 달에 걸쳐서 다양한 기법을 배웠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잡념을 알아채고

조용히 떠나보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잡념을 지워내는 이 기법은 꽤 도움이 되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다고 할까?

그러나 매일 15~20분을 앉아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슬슬슬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고, '쉼'이라는 것을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나에게 찾아온 것은

'명상' '인도'였다. 

왠지 정신적인 수양은 인도에서 하면 좋겠다는 배움의 첫 단추는 인도에서 채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2019년 처음 명상을 알려주신 스승님이 인도에서 공부를 하셨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도움을 요청드렸고 이런저런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다. 

인도는 정말 수천가지의 명상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잘 알고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위빳사나 명상을 소개받았고, 국내에서도 같은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내가 다녀온 '담마코리아'이다. 


명상 코스에 등록하기 전, 자연스럽게 또 당연하게 인터넷에서 다양한 후기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나 또한 다녀온 경험을 나누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10일 코스 중에 S.N 코엔카 선생님이 강조하시기도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철저히 본인만 알 수 있는 경험의 축적과 홀로 외롭고 굳건하게 떠나는 길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질 수 없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고,

또한 내가 경험한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잘된 것인지 잘되지 않은 것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기에

나의 명상 코스 참가 후기를 공유한다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후기를 남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떤 과정이 될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이유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고민 끝에, 후기는 아래와 같은 순서와 내용으로 구성을 하고 총 4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회>

1. 위빳사나 명상 (담마)에 대한 간략한 소개

<2회>

2. 10일 코스 소개 (일과표 포함)

<3회>

3. 10일 코스를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경험

<4회>

4. 교육담당자로서 바라본 10일 코스의 구성과 배운 점 

5. 10일 코스를 참석하시고자 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1. 위빳사나 명상이란?


위빳사나 명상 이야기는 약 2,500년 전 인도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사람들이 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아니 끊임없는 고통과 번뇌에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알려진 것처럼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자였고, 

29살까지 왕자로서 우리가 부러워할만큼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마차를 타고 가던 길에 우연히 보게 된 장면들이 있었는데, 

노쇠한 노인, 병들어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 삶을 다하고 죽은 시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화와 고요함이 얼굴에 가득 담긴 수행자를 보게된 것인데

이러한 경험에서 싯다르타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불행과 고통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왕족으로서의 삶을 뒤로한채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무한이 많은 수행법과 고수들이 있다. 

2,500여년 전의 인도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싯다르타는 스스로 수많은 수행법들을 경험하였고, 

35살이 되던 시기에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깨달음을 얻게 된 이후 다른 사람들도 고통과 불행해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고자 

45년 간 본인이 수행한 방법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 수행의 진수가 위빳사나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10일 명상 코스에서 매일 진행되는 법문 시간에 반복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있는데 

위빳사나 수행법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만든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다.

누구든지 본인들이 만든 것이라면 자신있게 혹은 더 홍보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예를 들면, 수학에서도 과학에서도 심리학에서도 누구누구의 법칙이라고 자신들의 이름을 넣어서 만든 것을 우리는 쉽게 보지 않았는가.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우주 공간에 원래 거기 있던 행성조차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지 않는가.

태풍도 그렇구.

그러나, 싯다르타는 본인이 만든 것이 아니고, '발견'이라고 표현했다.


왜일까?

위빳사나 명상은 어떠한 종교나 철학, 교리, 믿음 등과 전혀 관련이 없이 모든 경계를 초월한

누구나에게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상관없이) 적용이 가능한 

자연의 법칙(Law of Nature)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Universal) 명상법이다.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서 께달음의 경지로 이르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신, 종교 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는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스스로 근면하게 적용하는 것이기에 

싯다르타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수행 경험을 통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보편적인 지혜를

그저 남들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했디 때문에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다.




위빳사나 명상이 지향하는 방향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부정성을 스스로 정화하는 과정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위빳사나 명상은 3가지(실라, 사마디, 빤냐)의 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실라]

10일 코스가 시작이 되면 가장 먼저 모든 수련생이 지키겠노라 확언하는 것이 있다. 

위빳사나 명상의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마음 가짐이라고 이해하면 좋은데, 이러한 계율을 '실라'라고 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5가지의 계율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고, 부정한 육체관계를 갖지 말아야 하고, 

이성을 가릴 정도로 어떤 것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즉 술이나 마약에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들이다. 

이러한 계율을 지킬 것임을 확언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명상 수행법에 따라 아무리 열심히 수행을 하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것은 위빳사나 명상이라고 할 수가 없으니,

실라는 명상 수행을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실라의 내용을 보면 딱히 명상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이자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특별히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마디]

두번째는 알아차림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집중해서 감각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무엇을 알아차리는 것일까? 

바로 나의 호흡과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리리는 것이다.

다양한 명상법들 중에서는 호흡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들도 있다.

그러나 위빳사나 명상에서는 호흡은 절대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는다.

호흡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호흡을 하는데 '내가 지금 숨을 쉬어야지'라면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숨을 쉬지는 않을테니까.

호흡을 의도적으로 조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명상의 첫번째 단계이다.


내가 숨을 쉴 때, 코를 통해 공기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평소 신경써서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될테지만 10일 코스 중에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알아차리고 코 아래 입술 위의 인중 위치에 작은 삼각형을 가상으로 만들어 놓고

호흡을 하면서 그 작은 공간에 어떤 느낌,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를 연습하게 된다.

이렇게 내 몸에서 어떠한 감각(Sensation)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사마디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호흡 알아차리기 → 인중의 제한된 작은 공간의 감각 알아차리기 → 온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 알아차리기)


알아차리기의 정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위에서 위빳사나 명상은 자연의 법칙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자연에서는 그 어느 것이든 발생하면 소멸을 한다. 어느 것에도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발생하면 반드시 소멸한다. 태어나면 죽는다. 꽃이 피면 반드시 지는 것처럼 

신체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시작되면 결국엔 사라진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해서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알아차리고

그 감각으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적인 동요(어떠한 판단이나 생각)없이

그저 가만히 그 감각을 관찰한다. 언제까지? 없어져 소멸될 때까지.


[빤냐]

위빳사나 명상의 마지막은 평정심을 갖는 것, 세상 그 어떤 갈망이나 미움에 동요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지혜를 수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6가지의 감각을 통해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소통을 한다는 것은 즉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5감 (눈, 귀, 코, 입, 피부)에 마음을 더해 총 6가지 감각을 통해서 자극과 반응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이 발생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반응으로 인해 감정이 좋거나 싫거나로 나뉘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은 점차 갈망과 혐오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너무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좋은 경험을 또 하고 싶어진다.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좋은 경험을 또 하고 싶다고 바라는 마음이 커지게 되면

갖고 있지 않을 것을 바라게 되는 마음으로 인해 욕심,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바램이 무너지게 되면 그때마다 더 더 더 그것을 다시 경험하기를 갈망하게 되는 데, 

그 결과 마음의 평정심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경험도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마음 속의 부정성을 계속해서 키워나가는 고통으로 변환이 되는 것이다.


빗스하게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우리는 좋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그로 인해서 짜증나고 화가 나고 싫어하는 즉 혐오의 마음이 생겨난다.

10일 동안의 명상 수련을 경험하게 되면 몸의 어느 부분에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때 고통, 통증이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화가 난다.

통증이 참을 수 없이 심하거나,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경험해야 하는지, 너무 화가 나서

이 감각에 대한 나의 반응은 미움과 혐오가 된다.

'다시는 이런 기분 나쁨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라며 감정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평정심을 잃게 된다.


위빳사나 명상의 마지막 단계인 빤냐에서는 몸의 감각을 알아채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며

어떠한 갈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그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소멸할 때까지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을 수행한다.

왜 이러한 고통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렇게 몸에서 올라오는 감각들은 과거, 즉 전생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놓았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부정성들이 명상의 과정에서 하나씩 표출되기 때문이다.

부정성이라고 하면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데, 

사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평정심을 잃음으로서 발생한 

나의 Reaction들의 누적값으로 이해하면 조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꾸준하고 근면한 명상 수행을 통해 평정심으로 마음 속의 이러한 부정성을 정화해야만

우리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 궁극적으로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부정성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정심을 갖고 유지하는 것이 명상을 통해 배워야 하는 소중한 지혜인 것이다.

평정심을 갖게 되면 지금 나에게 고착화되어 있는 습관, 즉 자극에 반응하는 습관으로 인해

감각을 알아채자 마자 올라오는 감정으로 부정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멈출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되는 상황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지난 날 겹겹히 쌓아온 부정성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평정심을 갖고 부정성을 정화해 나가는 지혜의 과정을 빤냐라고 한다.


* 한줄 요약

제가 이해한 위빳사나 명상은 살아가며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인 실라를 지키면서

감각을 알아채고 발생과 소멸을 관찰하는 사마디 단계를 꾸준하게 수련하고 

이러한 수련을 통해 관찰한 감각을 평정심을 기반으로 반응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듭하며 마음 속의 부정성을 정화하는 고행의 과정이다.

나의 모든 고통과 고뇌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행의 과정을 묵묵히 걷고, 그 성실한 노력의 끝에 마음속의 부정성이 정화가 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수련하는 방식,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10일 코스를 경험하면서 듣고 경험하며 배운 것과 위빳사나 명상 관련 책을 읽으면서 정리해본

나만의 위빳사나 명상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 해보았다.

한줄 요약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핵심은 고행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한 실제 명상 과정 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지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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