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흑산도
파도는 여전히 거셌지만 멀미 없이 푸르다 못해 검은 흑산도에 도착했다.
전화기와 머리카락을 삼켜버릴 듯 요동치던 유람선의 흔들림에 단련이 돼서 그런가?
흑산도까지만 왔는데도 섬에 고립되는 일은 없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숙소를 정하고 섬 일주 택시를 탔다.
“흑산도로 말할 것 같으면.”
기사는 고장 난 녹음테이프 같았다.
말에도 강약과 고저와 장단과 운율이 있어야 감정 전달이 잘 되는데 저런다.
도초도 프로 기사님과 비교되어 흑산도에 대한 흥취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고인돌 유적지 앞에 다다랐다.
내려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지만 못 들은 척 대충 설명하고 성급히 출발했다.
먹던 떡 같은 나였지만 이건 아니었다.
“기사님, 고인돌 유적지 사진 찍게 되돌아가 주세요.”
“고인돌 사진 찍는 것으로 두 시간 일주한 셈 치고 숙소로 돌아가자는 말인가요? 그러면 저야 좋지요.”
“되돌아가기 싫으면 섬 일주한 뒤에 다시 유적지까지 데려다주세요.”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부가 출발점과 가까우니 그렇게 해달라고 좋은 말로 부탁하자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도 하지 않고 길가에 있는 엉뚱한 나무를 후박나무라고 우겼다.
2010년에 흑산 일주도로 준공기념으로 세운 천사 동상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으면 홍도가 보이는 곳이다.
기사는 우리를 내려놓고 통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구나 시간을 다투는 통화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한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간혹 아름다운 곳이 있었지만 그저 그런 것 같았다.
홍도의 비경을 감상하기 전에 흑산도를 먼저 들렀어야 했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앞에 섰다.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나 역시 아득한 육지가 그리워 검게 타버렸을 것아 가슴이 턱 막히며 울컥했다.
일주를 마치자 유적지까지 가는 것에 심술이 난 기사는
S자 내리막 산길을 나는 듯이 휘달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다.
흑산도 진리 지석묘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흑산도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통일 신라 시대부터라고 전해지지만
고인돌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살아왔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출발점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7시.
첩첩산중에서 자란 우리 셋은 횟집을 가볍게 지나쳤다.
여행에서 음식 취향이 같으면 공감 폭이 커서 훨씬 돈독해진다.
흑산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회를 먹지 않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에 잔뜩 주려있던 우리였기에 탕을 먹기로 했다.
제부가 어느 식당 문에 붙은 메뉴를 보고 단박에 결정했다.
지점장 시절 즐겨 먹었는데 식당이 없어져 안타까웠노라며.
이름은 들어봤나? 홍어애탕!
먹음직스러운 탕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국물 맛을 본 제부가 본고장 맛이 살아있다며 감탄했다.
제부의 극찬에 드디어 이번 여행 중 맛의 방점을 이곳에서 찍나 보다 기대를 잔뜩 걸었다.
"······!"
나는 간신히 서너 국자 비우고 여동생은 한 수저 뜨다 말았다.
세 사람 중 하나만 만족해도 훌륭한 식사인 것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식당 여주인은 여동생네가 서울 산다니까 반색을 했다.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 거제도로 시집왔다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던 서울살이를 애틋하게 그리워했다.
많이 남은 홍어애탕과 농어 튀김은 포장해 달라고 했다.
헤어질 때 나는 식당 여주인을 안아주며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밥 먹이며 흑산도를 빛나게 하는 삶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다고.
이튿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누워있고 싶었지만 내가 언제 또 흑산도에 오겠나 싶어 부둣가로 나갔다.
단조로우면서도 아련한 풍경
어젯밤 늦도록 가게 한쪽에서 친구들은 술 파티를 하는데 혼자 주문받고 물건 팔던
숙소 옆 건어물 가게의 젊은 주인은 벌써부터 택배로 보낼 건어물 포장에 여념이 없었다.
저토록 성실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부유하게 된 것이다.
외진 섬마을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부지런한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여동생이 숙소를 나오며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재수 없던 어제의 택시 기사였다.
모르는 척하려다 옜다 인사다! 하는 마음으로 목례만 까닥했다.
아침 식사 역시 별로였다.
섬이라 음식 가격은 비쌌으며 흑산도 역시 과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파도가 잔잔해서 첫배는 흔들림 하나 없이 고요했다.
흑산도가 멀어지며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믿음직한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