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전생에 무수리라
네 명 중 나만 골프 초년생이었다.
남자인 손 교수는 드라이버 200m를 날리고 홀인원 경력이 있는 지회장과 구력이 오래된 윤 미용장 역시 아주 잘 쳤다. 한눈에 분위기를 파악한 캐디는 은근슬쩍 내 골프채만 받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2번 홀에 도착하자 내 차례인데 서둘러야 진행이 원활하다며 제 마음대로 순서를 바꾸더니 클럽 하우스 안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할 거니까 사인부터 하라고 했다. 간식을 준비해 온 우리가 거절하자 급히 몰아세운 속셈을 들켰는데도 무안해 하기는커녕 불쾌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3번 홀 그린에서는 분풀이 상대를 나로 점찍었는지 옆에 바짝 다가서서 각도가 안 맞는다고 손으로 퍼터 헤드를 휙 밀치기까지 했다. 캐디 간섭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으나 전생에 무수리였는지 나는 싫다고 의사표시를 하지 못했다. 기분도 그렇고 실력조차 없으니 당연히 홀컵에 다다르지 못했다. 캐디는 대여섯 살짜리를 나무라듯 으이구! 했다. 뭐야, 이건 핀잔을 넘어 구박에 가깝잖아? 이 대접을 받으려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여기까지 왔나 몹시 언짢았다.
카트가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 눈 아래 아득한 골프장이 펼쳐졌다. 세 사람은 난코스라고 걱정했지만 골린이(골프초년생)인 나만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탄성을 질렀다. 캐디가 한껏 비웃었다.
“다른 분들은 다 괜찮은데 사모님이 제일 큰 문제라고요.”
그 한마디에 잊었던 울분이 치솟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문제라니, 뭐가 문젠데?”
캐디 말투가 금방 상냥하고 공손해졌다.
“저는 다만 OB 나서 공 잃어버리고 사모님 속상하실까 봐서요.”
“됐어요. 앞으로 절대 참견하지 말아요!”
화내면 지는 싸움이다.
그런 줄 알지만 소리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캐디의 깍듯한 예우를 받으며 골프를 다 끝냈다. 손 교수가 말했다.
“말도 마세요. 캐디 심부름하면서 골프 친 적이 아주 많았답니다.”
다음날 연습장에서 회원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정도는 다반사고 자기 남편도 캐디들한테 푸대접받고 속상해한 적이 많다고 했다. 좋은 게 좋다고 기분 나빠도 꾹꾹 참으며 그냥 지나친 게 일부 캐디들의 근무 태도를 안이하게 굳혀 놓은 것은 아닐까?
캐디는 서비스가 기본인 전문 직업인이다.
앞으로 기본을 벗어나 선을 넘는 캐디가 있으면
즉시 지적하고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카운터에
불만 사항으로 접수한다고 경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