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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며느리가 시집갔다.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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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가 남긴 선물 -

남편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76세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친한 친구 여섯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A와 가장 친했다. 첫 딸이 세 살 정도 되었을 무렵 남편이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더듬거렸다.

“A의 부인이 난임이라 우리보다 먼저 결혼했는데 아이가 없어. 절친한 친구는 자식이 생기면 사돈을 맺고 자식을 못 낳으면 대신 낳아 우정을 다지는 일화가 있어.”

“그래서, 나더러 씨받이 하라고?”

“내가 A와 얼마나 친한지 당신도 알잖아?”

“가족보다 친구라? 그래 좋아, 당장 이혼해!”

남편의 지나친 오지랖과 달리 몇 년 뒤 A는 땋을 낳았다. 우리 큰아들보다 두 살 어린 A의 딸이 커서 말이 늘고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남편은 호쾌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며늘아 시아버지다. 아버지 바꿔라.”

그럴 때마다 A의 딸은 흥, 시아버지는 무슨? 하며 몹시 기분 나빠했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A의 가족과 함께 스키장을 갔다. A의 딸은 우리 큰아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막내만 데리고 놀았다. 참다못한 큰아들이 막내를 밀어내며 소리쳐서 우리를 한바탕 웃겼다.

“저리 비켜, 내 아내감이야!”


남편이 수업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의사가 그 밤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친인척, 친한 친구들, 동료 교사와 임직원, 학부모, 대학 선후배, 각종 모임 회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 복도와 중정을 가득 메웠다. A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뛰어나갔다.

“지금 죽으면 친구도 아니야 이 나쁜 새끼야!”


A의 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큰아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용사가 되었다. 일이 이쯤 되자 남편은 A의 딸을 감히 며느리라고 부르지 못했다. 큰아들에게 결혼할 여자친구가 생겼다. 아들과 같이 미용실을 할 때라 머리 하러 온 A 부부에게 큰아들 여자친구를 소개했다. 갑자기 A 부부 얼굴이 일그러지며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여전히 A의 딸이 남편의 며느릿감으로 유효했었다고? 뜻밖이었다. 진즉 의사표시를 하던가? 아니지 딸 가진 집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겠어.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크게 배신한 것 같아 감정이 아주 묘했다. 점잖은 A는 그날만 그랬을 뿐 큰아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지난해 시월 A의 딸이 시집을 갔다.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예식이 끝나고 나오는데 하객들한테 꽃을 나누어줬다. 컵에 꽂아 식탁에 올려놓자 남편이 말했다.

“며느리가 꽃을 선물하고 시집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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