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6. 공원에서

by 글마중 김범순

- 옛 암스텔빈 기차역 -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네덜란드는 날씨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온종일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잤더니 여독으로 쌓였던 피로가 모두 풀렸다. 오후 늦게 비가 그치자 딸이 공원으로 산책을 하자고 했다. 가까운 곳에 옛 기차역이 있고 얼마 가지 않아 공원이 시작되었다.

- 키 작은 토끼풀 꽃 -

무슨 꽃인가 궁금했는데 토끼풀 꽃이었는데 우리나라 하고 색이 달랐다. 나물 뜯기 좋아하는 내 눈이 번쩍 떠졌다. 무성한 모시풀이 여기저기 있었기 때문이다. 딸에게 여린 모시잎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약초나 다름없는 훌륭한 나물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모시 개떡이나 모시 절편, 모시 송편이 유명하다는 것도. 언제 모시풀을 뜯어다 삶아 맛있게 무쳐 줘야겠다.

- 우거진 숲과 모시풀, 산딸기 덩굴 사이에 놓인 다리. 난간 디자인이 독특하다 -

네덜란드에서 모시풀은 그냥 잡초일 뿐이었다.

모시 껍질로 시원한 여름옷을 만들어 입은 우리 선조의 지혜가 돋보였다.

-거울이 된 호수 -

공원은 끝없이 이어졌고 한쪽에 많은 벚나무가 있었다.

유럽 최대 크기의 벚꽃 단지이며 꽃이 만개하면 장관이라고 했다.

2011년 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에서 심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친교가 두터워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보다 정착하기 훨씬 쉽다고.

- 오리는 아닌 것 같고 너는 대체 누구냐? -

공원 숲에는 깨금(개암)나무가 아주 많았다.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전래동화 도깨비와 개암을 사투리로 깨금이라고 했다. 내가 자란 산골짜기에도 깨금나무가 아주 많았다. 가지 끝에 달린 깨금이 영글기 시작하는 8월이 되면 깨금 따먹을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꿈은 해마다 산산조각이 났다. 산소 벌초하러 갈 때 길을 내려고 모조리 베어서였다. 일여덟 무렵의 어린 나는 막을 수 없는 어른들의 횡포가 그토록 억울하고 분할 수 없었다.


언젠가 남동생이 먼 산 깊은 골짜기에서 잘 익은 깨금을 한 주먹 따왔다. 나에게 돌아온 건 딱 한 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본 깨끔은 아몬드보다 덜 고소했고 크기와 모양은 피스타치오와 비슷했던 것 같다. 젊은 한때 나는 시어머니한테 물려받은 산비탈 밭에 추억의 깨금나무를 심을까 많이 망설였다. 실천했으면 특화 작물로 크게 성공했을 지도? 아니면 말고.

하도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깨금나무가 아니었다. 깨금나무는 1~2m 정도밖에 자라지 않으며 깨금이 바로 헤이즐넛일고 했다. 깨금나무와 잎이 비슷한 그 나무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해묵은 가로수였고 숲과 운하 가장자리에도 우거져 있었다. 많은 집들은 담장 대신 지지대를 가로로 묶어 팔 벌린 것처럼 키우기도 했다.


낯익은 잎을 가진 낯선 그 나무.

이름이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냥 이름 모를 낙엽활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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