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3. 무엇이든 처음이라

by 글마중 김범순

걱정했던 것과 달리 곧바로 공항 대합실로 이어졌고 풍선과 꽃다발을 든 딸이 손을 흔듦며 엄마! 했다.

사위가 어디론가 가더니 카트를 끌고 와 짐을 전부 실었다.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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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딸네 집에 도착했다.

입구에 세워진 환영판에 감동했다.

현관문이 열렸다.

항상 이러고 사는 줄 알고 신을 신은 채 저벅저벅 레드 카펫을 밟고 들어갔다.

딸이 멈추라며 문 열자마자 신을 벗어야 한다고 했다.

아뿔싸, 처음이라 그만.

딸 친구가 안에서 나오며 꽃다발을 건네며 주방으로 안내했다.

집 뒤에는 거짓말처럼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현실인지 동화 속인지 모르겠다.

- 주방에서 내다본 풍경-

- 물가 데크에서 본 위쪽 풍경 -

저녁은 초대형 가방에 싣고 온 묵국수를 먹었다.

손녀들이 먹고 싶다고 해서 겹겹으로 싸들고 왔다.


작은 손녀 방에 짐을 풀었다. 화장실 수도꼭지가 우리 것과 달라 익히는데 한참 걸렸다. 수건과 드라이를 꺼내려고 서랍을 여니 고장이 났는지 덜렁거리기만 하고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딸한테 물어보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아무도 없고 발소리를 들은 강아지만 뛰어왔다. 거실 한쪽 소파에 사위가 자고 있고 딸은 보이지 않았다. 불이 환히 켜진 뒤채를 보니 고2 큰손녀가 과제를 하고 있었다. 딸이 거기 있을 것 같아 현관문을 통해 그리로 갔다.

“엄마 여기 왔니?”

“아니요.”

되짚어 와서 현관문을 열었다. 단단히 잠겨 열리지 않았다. 주방에서 뒤채로 드나드는 문을 열었다. 역시 열리지 않았다. 이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 뒤채로 가서 큰손녀에게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럴 리 없다며 재빠르게 나와 주방 쪽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았다. 현관문도.

“정말 다 잠겼네요.”

큰손녀가 사위와 딸에게 계속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사위는 그날 새벽 장기간 해외 출장에서 돌아왔고 딸이 마중 나갔으니 둘 다 나 못지않게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어쩌냐? 드라이하고 수건이 없어서 씻지도 못했다.”

“수건 하고 드라이 화장실 서랍에 있어요.”

“고장 났는지 안 열려. 그래서 네 엄마한테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 서랍은 밀어야 열려요.”

밀어야 되는 것을 죽어라 당기기만 했으니. 어리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청소년들이 나 같은 상황에 처했으면 오히려 쉽게 열었을 것이다. 당겨야 열린다는 고정관념이 상상력과 융통성을 가로막은 것이다.

“뒤채 다락에도 손님방이 있거든요. 할머니 어쩌면 저랑 오늘밤 거기서 자야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일단 거기서 샤워부터 하세요.”


2층 다락으로 올라가 옷을 벗고 더듬더듬 샤워기를 틀었다. 쏴-! 머리 위에서 찬물이 쏟아졌다. 다시 더듬거리며 간신히 물줄기 방향을 바꾸었다. 어쩌면 좋으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재채기와 기침이 쏟아졌다. 얼른 옷을 입고 세수만 했다. 물벼락 맞은 얇은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었다. 하는 수 없이 수건 두 장을 숄처럼 어깨에 두르고 작업실로 내려와 서성이며 손녀 작품을 감상했다. 전날 밤 세 시간밖에 못 자서 자꾸 하품이 나고 으슬으슬 추웠다.

“할머니, 의자에 앉지 그러세요.”

“내가 서성거려서 신경 쓰이냐?”

“아니요, 다리 아플까 봐서요.”

“너무 추우니까 앉기가 싫다.”

“잠깐만요, 히터 틀어드릴게요.”

내 기대를 저버리느라고 히터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서성이며 큰손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춥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큰손녀와 미술과 문학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열한 시 반에 뒤채로 왔는데 어느덧 새벽 세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참, 아빠가 핸드폰으로도 현관문 열 수 있다고 했어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쩌면 쉽게 들어갈 수도 있어요.”

기쁜 마음으로 큰손녀를 따라 현관문으로 뛰었다. 손녀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핸드폰을 누르는 동안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손잡이가 도륵거리기만 할 뿐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르륵 문이 열렸다. 우리는 총알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가방과 씨름하느라 땀을 많이 흘려 꿉꿉했지만 너무 떨리고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 목욕이고 뭐고 작은 손녀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재채기와 기침이 끊임없어 수면제를 먹고 간신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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