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12. 바꿀 건 빨리 바꾸자
틈날 때마다 명이 로드를 거쳐 호숫가까지 산책했다.
네덜란드는 봄꽃이 천지였다. 아는 것도 있지만 이름 모를 풀꽃들이 더 많았다.
저녁 식사에 딸 대학 후배 넷을 초대했다. ㄱ은 결혼 2년 차로 임신 3개월이고, ㄴ은 두 달 뒤에 성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비 신부였으며, ㄷ은 3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고, ㄹ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데다 인테리어 업자가 계약금만 챙기고 사라져 속앓이가 한창이었다. 넷은 직업이 있고 어떤 연유로 네덜란드에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된 것 같았으며 전부 네덜란드 남자랑 사귀고 있거나 결혼했거나 헤어졌거나 했다.
작정하고 덤빈 네덜란드 내부공사 팀한테 딸도 사기를 당해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을 썩였다고 털어놨다. 울컥해서 격하게 한마디 했다.
“한국 영사관은 뭐 해? 우리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해서 집어 쳐 넣어야지?”
“그분들은 더 큰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을 거고, 설령 고소한다 해도 감옥 시설이 너무 좋아서 겁내지 않아요.”
“맞아요 탈옥은 무죄래요. 탈옥하기 위해 벽을 부수거나 하는 2차 행위가 범죄고.”
딸과 후배들은 공사 사기 사건만 빼면 쾌적하고 안전해서 네덜란드가 살기 좋다고 입을 모았다. ㄴ이 얼른 단점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솜털도 밀지 않고 속눈썹도 못 달만큼 신부화장 못한다고. 그 말에 이어 어림잡아 서른둘쯤 된 것 같은 ㄹ이 우는지 웃는지 모를 얼굴로 아직도 살림살이를 제자리에 정돈하지 못해 미치겠다며 맥주를 거푸 들이켰다. 이역만리(異域萬里) 네덜란드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까 내 자식이라도 되는 양 안쓰러웠다.
딸은 2021년 4월부터 네덜란드에서 살기 시작했다. 속 끓이던 공사가 근 1년 만에 마무리되면서 교회에 나가 교민들과 친해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대학 선후배들을 찾아 모임을 만들었다. 외롭지 않고 피해 보는 일 없도록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라 회장은 맡지 않았다.
빈 맥주병이 늘어났다. 이제 슬슬 자리를 피해 줄 때가 된 것 같아 일어나려는데 ㄱ과 ㄴ의 대화에 다시 앉았다.
“시아버지 칠순 잔치라 온 가족이 다 모인대서 마음먹고 큰 선물을 준비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며 손편지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한 갑이면 된다는 거예요. 그냥 생일도 아니고 칠순인데? 그랬더니 자기네들은 그런 거 전혀 안 따진다고 화분 하나만 선물해도 좋아한대요.”
“맞아요, 2~3만 원 정도 선물이면 아주 기뻐해요. 부담이 없어야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더라고요. 예비 시댁에 갔을 때 가만히 있기 뭐 해 주방에 따라 들어갔더니 예비 시어머니가 여기는 내 공간이고 너는 손님이니까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대접받는 것이 황송하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아주 합리적이었다.
갓 결혼해 첫아이를 키우는 부부는 몹시 쪼들린다.
집 장만이 어려운 우리나라는 10~20년 차 부부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6월 22일 음력 5월 5일 단오는 내 생일이다.
바꿀 건 빨리 바꿔야 한다.
2019년에 결혼한 막내아들한테 문자를 보냈다.
꼬망쥐야. 이번 엄마생일부터 용돈 이체하지 말고
카톡으로 3만 원짜리 케이크 쿠폰 보내주라.
나, 선진문화 빨리 받아들이는 세련된 엄마이자 시어머니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