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13 부창부수

by 글마중 김범순

- 5월 1일 공원. 기온이 우리나라보다 낮아 막 피기 시작하는 나뭇잎 -

“엄마, 스튜디오 개관 전시 때 온종일 도와주셨던 목사님 하고 사모님 오셨어요.”

사진으로 봤던 모습과 달리 목사님은 전형적인 목사님보다 정중하고 내공 있는 모습이었고 개혁을 꿈꾸는 스타일이라 멋있기까지 했다.

목사님 내외에 이어 키 작고 바짝 마른 일식 요리사 마사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와 조리기구를 세팅했다.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 모르겠으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네덜란드에 와서 전문 출장 요리사로 성공했단다.

목사님이 물었다.

“네덜란드에 처음 오셨지요. 어떤 점을 느끼셨어요?”

“들이 끝없이 넓은 게 부러웠어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까요. 날마다 지평선만 보니까 전부 내 땅인 것처럼 아주 흐뭇하네요. 50년대 우리나라 산골은 소나무 속 껍질을 깎아 먹고 시래기죽, 밀기울과 등겨 개떡, 감자, 고구마, 술지게미를 끼니 대신 먹었거든요.”
“맞습니다. 저도 충북 산골출신이라 누구보다 잘 알지요.”

네덜란드는 산이 10%이고 나머지는 평야 지대였다. 드넓은 벌판에는 온갖 새들과 오리와 백조가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그지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 한편 저 땅에 밀을 심어 나누면 지구상에 굶는 사람이 줄어들 텐데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목사님, 네덜란드는 왜 저 넓은 들에 곡식을 심지 않고 그냥 놀리지요? 아깝잖아요.”

“아, 폴더 말씀이시군요? 갯벌 간척한 땅을 폴더라고 하는데 염분이 완전히 빠지려면 50년이 걸린답니다.

폴더에서 나고 자란 풀에는 염분이 많아 그 풀을 먹고 자란 소는 우유도 짜대요. 그 우유로 치즈를 만들면 겉에 소금 결정이 생기는데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값비싼 특산품으로 아주 유명하지요.”


마사의 초밥과 깔끔하면서 깊은 맛의 일본 된장국은 아주 특별했다.


식사가 끝나고 오래도록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이라 그런가 조곤조곤 재미있게 이야기했고 사모님은 사과꽃처럼 웃었다. 목사님이 해외에서 주관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생활비 지원과 사모님 덕분이었다.

목사님이 독일에서 공부할 때 가난한 유학생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여 밥상을 차리게 해 사모님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 사모님을 그렇게 고생시키고도 목사님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뿌리가 깊어 여태까지 청소는 물론 설거지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해외에 오래 살았으니 머지않아 부창부수(婦唱夫隨) 목사님이 될 것이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니 창밖에 달이 보였다. 창호지 바른 문안에서 자라 유리창으로 달과 별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나이 칠십 넘어 딸네 집에 와서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 달빛이 너무 예뻐서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까웠다.

- 지하 방에 난 창으로 보이는 달. 밖에서 보면 땅에 있는 유리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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