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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Aug 12. 2023

딱 기다려 네덜란드

28. 카드야 어디 있니

                                                           -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사위가 물었다.

 "여행한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으셨어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브뤼허 예쁜 집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딸네 집에 오니까 마음이 편했다. 

아마 낯설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하는 모양이다.


자고 나니 아침부터 또 비가 내렸다.

딸과 나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온종일 낮잠을 잤다.


  "할머니 비 그쳤는데 산책 안 하세요?"

오후 4시 넘어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손녀가 물었다.

피로가 거의 풀려 얼른 밖으로 나왔다.

명이로드에 들어서면 왜 그렇게 풍요롭고 행복한지!

며칠 사이 명이 로드는 나뭇잎이 우거져 더 푸르러져 있었다.

                                                                 - 활짝 핀 명이 꽃 - 

날씨가 흐리고 거의 매일 비가 와서 그런지 커다란 버섯도 피었다.

색깔이나 모양으로 봐서 독버섯은 아닌 것 같았다.

채취 본능이 불길처럼 일면서 손이 먼저 나가려고 했다.

이성이 점잖게 나무랐다.

여긴 공원이야, 다른 사람도 봐야지!

호수 건너 아련히 보이는 교회.

위안과 사랑의 시작이며 끝이다.

 

  "엄마, 사위가 여행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저녁 산대요!"


아무리 얼굴이 두껍다 해도 저녁은 내가 사야겠다.

한도 백삼십만 원짜리와 새로 만든 천만 원짜리 카드 중 어떤 걸 가지고 갈까 망설였다. 

호텔 식당이라니 비쌀 것 같아 천만 원 한도 카드를 챙겼다.


웬일인지 자동차를 두고 택시로 이동한다고 했다. 

자동차로 가자고 하고 싶었다.

걸쩍지근한 채로 그럴 까닭이 있겠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 암스테르담 오쿠라 호텔 로비 -

사위가 말했다. 미슐렝 별을 받은 식당은 무리해서라도 꼭 가봐야 한다고.

일본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일식으로는 처음으로 미슐렝 1스타가 된 오쿠라 호텔 식당이라고 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일까? 보다는

일식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살짝 비틀린 감정이 되었다.

군산에서 곡물 수탈 현장 사진을 본 뒤로 더욱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졌다.

비웃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음식이 예술 작품처럼 훌륭하고 맛있어서. 

                                                  - 촛불과 생일 축하 초콜릿이 올려진 파이 -            

   "장모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소원 빌고 촛불 끄세요."

   "응?"


5월 4일 라익스 - 전야제

5월 5일 파리 - 생일 축하

5월 11일 오큐라 - 후야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생일 축하받은 사람 없을 걸?

나, 이런 사람이야!


후식을 먹고 나자 기모노를 입은 어린 직원이 사위한테 계산서를 건넸다.

  "예약하신 분이지요? 카드 단말기 여기 있습니다." 

영어도 못하면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택시로 돌아오는 길. 

겉옷을 들치고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며 사위한테 말했다.

  "오늘은 내가 사려고 작정했었거든. 그런데 사위는 생일 축하한다고 하지 지갑도 없이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 꺼내는 것도 부끄럽지. 그래서 말도 못 꺼냈어. 오늘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는 내가 꼭 살게."

  

사위가 껄껄 웃으며 나중에 한국 가면 맛있는 거 많이 해달라고 했다.


화장을 지운 뒤 세수하고 지인들이 보낸 카톡에 답글을 썼다. 자기 전에 카드를 지갑에 넣으려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라? 카드가 없다. 아까 택시 안에서 꺼내 들고 너스레 떨 때 바닥으로 떨어트린 모양이다. 이거 정말 큰일 났다. 택시 기사한테 전화해 보라고 사위를 깨우고 싶었지만 밤 1시가 넘었다. 얼른 집밖으로 나가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택시 내린 자리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없었다.


비밀번호를 모르니 현금인출은 못하겠지만 가게에서 물건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전화기에 알람 뜬 것이 없는 걸 보니 아직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다. 혼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기 벅차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러 대전에 있는 큰아들과 통화했다.


  "엄마,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요?"

  "다 찾아봤는데 없어!"

  "괜찮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분실 신고부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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