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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Jul 14. 2024

삽화

108. 지난 일 2

 사진 출처 : 양지안 인스타그램


11년 전 새로운 여자 원장과 강 팀장이 부임했다. 강 팀장은 시청 주사였다가 승진하면서 다시 교육원으로 발령받았다. 강 팀장은 자신보다 직급이 높으면 굴종하고 낮으면 지나치게 경멸하는 쓰레기 공무원의 전형적 인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교육원 강사들을 못살게 굴고 무시했다. 정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     


새로 부임한 여자 원장은 인사할 때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지나쳤다. 강사 모두 3년 전에 근무하던 김 원장님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열흘 정도 지난날 강 팀장이 도도한 모습으로 나타나 원장실로 오라고 했다. 원장은 역대 수강생 모집 현황 집계 서류를 손에 들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새벽부터 줄 섰던 미용사 자격증반이 왜 몇 년 전부터 추가 모집을 해도 정원미달일까요? 강사님한테 원인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2009년 이전에는 미용사 자격증만 있으면 헤어, 피부, 네일 미용사로 취·창업이 가능했는데 법이 바뀌어서 자격시험이 분리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 교육원도 재작년부터 피부미용 자격증반과 네일 자격증반을 신설했거든요. 미용사 자격증반을 삼 등분한 상황이라 수강생 수가 적습니다. 게다가 국비 지원 미용학원과 교육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

  “그건 원인 분석이 아니라 핑계잖아요!

원장이 큰소리로 내 말을 딱 끊었다.

  “하반기 수강생 모집 때도 똑같으면 미용사반은 폐지하고 바리스타 반 신설할 계획이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강 팀장은 원장 뒤에서 고소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목을 휙 그어 보였다. 이를 앙다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귀신들은 뭐 하냐?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여자 원장은 강사들을 모아놓고 이례적으로 교육원 개원 25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열겠노라 선포했다.

  "미용반은 한국 무용반처럼 보여줄 것도 없고 폐강될지도  모르니까 빠져도 좋고요."

보여줄게 없다니? 오기가 바짝 치솟아 참가하겠다고 했다.


수강생들과  의견을 모아 선발한 모델 15명과 틈나는 대로 강당으로 올라가 해외 직구 댄스 음악 CD를 틀어놓고 혼연일체가 되어 워킹과 춤 연습을 했다.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재현하고 형광색 인조 머리카락으로 핑크 카라 꽃다발을 만들고 공작과 타조 깃털에 머리카락을 붙여 근사한 인디언 추장 모자도 만들었다. 천사처럼 예쁜 수강생한테는 춤 동작을 크게 하면서 신랑 신부 행진할 때 색종이 가루를 끊임없이 흩뿌려 무대를 환상적으로 연출하도록 했다.    

  

미용 반이 25주년 기념행사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강당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원장 혼자 강의실로 올라 와 헤어 쇼가 이렇게 멋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으며 나한테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미용사 자격증반 폐 철회입니다!

  물론입니다. 교육원 근무가 처음이라 제가 실수했습니다. 시장님을 비롯한 여러 기관장님한테 칭찬을 하도 많이 받아서 특별 지원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마음 푸십시오.”

  “그럼 우리 미용 반도 컴퓨터 강의실처럼  냉난방이 가능한 대형 에어컨을 설치해 주세요. 35분씩 시간 잴 때마다 수강생들이 비지땀을 흘립니다. 매년 8월 예산 수립 때마다 신청했지만 예산 부족이라고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이튿날 일찍 에어컨이 설치되고 냉방 버튼을 눌렀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돌아가던 대형 선풍기 네 대가 치워지고 산뜻하면서 서늘한 공기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수강생들은 헤어 쇼 때 쓰고 남은 색종이 가루와 파마 종이를 흩뿌리며 환호했다.   

  

원장의 자세가 바뀌니까 강 팀장도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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