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그랑 태국 원정기

3. 원수 같은 잠

by 글마중 김범순

12월 30일 오전 6시 49분


수면제 두 알 덕분에 여섯 시간 푹 잤다. 살 것 같다.


아침 먹을 때 윤정 짱이 전날 골프 치는 사이 500바트 한 장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여권, 환전한 현금, 카드 등이 들어있는 지갑을 가방에 넣어 카트에 묶어 두었다 벌어진 일이었다. 골프 웨어 만들 때 기능성과 유행에만 초점을 둬서 그렇다. 현금과 카드를 감쪽 같이 휴대할 수 있어야 완전한 골프복 디자인인 것이다.


동화나라로 초대하는 반얀트리


타잔이 잡고 날아다녔을 것 같은 반얀트리! 어제도 오늘도 이 나무 밑에만 서면 어린 날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나를 만난다.


여덟 살이었다. 친구 아버지는 밤나무 맨 아래 가지에 그네를 매고 오래 앉아 놀 수 있게 짚으로 촘촘하고 네모지게 엮은 방석을 얹었다. 부럽게 바라보던 그 시선을 휘휘 늘어진 줄기로 옮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를 그네나무라고 부르고 싶어. 괜찮지?"



길가에 떨어져 있는 열매를 주웠다.

봄이 오면 아파트 옆 공원 즐겨 찾는 길목에 심을 것이다.



캐디가 저기 이구아나 있다고 소리쳤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고 사진도 정확하게 찍히지 않았다. 확대해보았지만 정체가 뭔지 확실히 모르겠다.


오후 라운딩 두세 홀 지났을 때 연못에 까만 게 보였다. 썩은 나무 둥치인 줄 알았는데 불쑥 솟는가 싶더니 빠르게 물속으로 사라졌다.


캐디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사람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다고 하니까 골프공을 가르치며 볼을 외쳤다. 그때 진흙 범벅이 된 젊은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저토록 힘들게 돈을 벌기도 하는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짠했다.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건강해서 공 줍는 일도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거라고.


감정이 널뛰는 갈대숲




카트를 기다리고 있는 원숭이


오후가 되자 원숭이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원숭이도 나처럼 오전에는 늘어지게 자고 오후에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팀 민자 씨 귤을 가져가고 누군가의 음료수 병도 훔쳐다 마개를 비틀어 마셨다고 했다. 한 번 빼앗기면 되찾을 수 없으므로 캐디 넷은 돌아가며 쇠스랑처럼 생긴 도구를 들고 카트를 지켰다. 이제 원숭이는 신기하고 반가운 동물이 아니라 경계 대상이 되었다.


두고두고 커내 볼 인생 컷!


풍경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4년 된 오른쪽 골프화 밑창이 덜렁거려서다. 그 발에 힘을 주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발뒤꿈치가 쓰라렸다. 출국 전 골프 가방 챙길 때 연습장 대표한테 물었다.

"새 신 가져가요, 아니면 헌 신 가져갈까요?"

대표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헌 신!"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


수현 짱한테 신발 상태를 보여줬다. 나이 먹은 캐디와 회장님 부군이 고무줄을 건넸다. 고무줄 세 개를 신발에 끼우니 감쪽같아 36홀 라운딩을 무사히 마쳤다.


저녁 식사 때도 저품질 망고를 실컷 먹었다. 망고 한을 풀리는 목적을 꼭 달성하고 말것이다.


식사 후 본부 직원한테 쩍 벌어진 신발을 보여주고 본드를 빌렸다. 신발이 유선형이라 본드가 흘러내려 어설픈 내 솜씨로는 붙일 수 없었다. 여벌로 가져온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낮에 충분히 움직였으므로 수면제 없이 자야겠다.


버즈를 귀에 꽂고 오디오 북을 들었다. 단편 소설 50분짜리가 끝나 다른 소설을 고르고 있는데 수현짱이 내가 코를 골며 자더라고 했다.


소설 두 편을 더 들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쉽게 잠드는 수현 짱도 웬일로 깨어있다. 왜 그러느냐니까 전기장판에 데었다고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4시가 훌쩍 넘었다.


5시 20분에 일어나야 하는데 영 자신이 없어서 수현 짱한테 부탁했다.


"나 아무래도 수면제 먹고 오전 내내 자야 겠어요. 오전 라운딩 쉴 거니까 깨우지 말고 회장님한테 전해 줘요."


4시 23분에 수면제 두 알을 먹었다. 화상으로 생긴 물집에 놀라고 피곤했는지 수현 짱은 금방 잠들었다.


실컷 자고 일어났다.

도대체 몇 시일까?

6시 25분이었다.

수면제 두 알로 두 시간밖에 못 잔 것이다.

참으로 원수 같은 잠이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수현 짱을 따라나섰다.

수현 짱이 아침 못 먹어서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불면증으로 맘 고생을 많이 시켜 몹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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