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4 갈등

by 글마중 김범순
논산 도서관 1층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논산 도서관에서 글쓰기 공부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비탄과 우울은 자취 없고 낭만과 사랑만 가득한 신의 외갓집 같은 시월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란 나, 김샘, 이샘, 미샘이다.

미샘이 청초함 겨루기에 여념 없는 구절초 무리에 입바람을 불어 꽃을 흔들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이샘이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는다.

장미원을 지나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더라고 나물이 나를 홀렸다.

"뜯고 싶은데 봉지가 없어요."

"칼도 없잖아요?"

"신이 주신 칼 있잖아요. 손!"
"그럼 됐네, 나 봉지 있어요."

이샘이 까만 비닐봉지를 건넸다.

세상에 이렇게 얌전할 수가?

말 빠르고 일 빠르고 덜렁거려 꼼꼼하지 않을 것 같던 이샘이었다.

"하하하, 나답지 않아서 놀라는 거 좀 봐. 수납 공부할 때 배웠어요."

이제부터 분리수거하기 아까운 비닐봉지는 접어야겠다.

하지만 봉지만 생겼다하면 습관대로 배부른 부직포 가방에 쑤셔 넣었다.

힘드니까 오늘만 그냥!

안 돼, 접어!

냉정한 이성과 나긋하고 게으른 감성이 갈등한다.





5. 2021년 12월 17일 오후


12월 20 월요일은 미용장 대전 지회 연례행사로 뮤지컬을 관람하는 날이다.

버스를 대절해 서울까지 가는 크나큰 문화행사였다.

15일부터 PCR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 메시지를 올리라는 공지가 떴다.

어제 PCR 검사를 받고 오늘 아침 10시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그런데!

음성 확인 유효기간이 12월 19일 24시까지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저께 코로나 3차 접종을 해서 욱신거리는 팔과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서울 나들이로 들뜬 기대감이나 하니까 게으른 나를 눈발 날리는 거리로 내몰 수 있었을 것이다.

차로 가면 5분도 안 걸리지만 나선 김에 몇 가지 살 것이 있어 걸어갔다.

검사받고 오는 길에 마트도 들르고 백화점과 연결된 지하보도 난전에서 현금 주고 방울토마토도 사고 아파트 옆 국밥집에 들러 포장을 주문했다.

"해장국 나왔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마트 영수증만 있고 카드가 없었다.

카드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주인한테 기다려달라고 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렸다.

신고가 우선이었지만 카드 번호를 모르고 난전에서 돈 꺼낼 때 떨어트렸을 수도 있었다.

카드 주운 사람이 백화점에 가서 명품을 사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숨을 몰아쉬며 영수증에 적힌 마트 번호부터 눌렀다.

"그 카드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계산할 때 누군가 자꾸 말을 거는 바람에 영수증과 포인트 카드만 나한테 건넸다고 했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직원의 실수는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해장국을 들고 국밥집을 나서는데 신호음이 울렸다.

- 회원 여러분 서울 문화행사 취소합니다.

거리두기 4단계에 준하는 조치로 오늘 24시 이후 사적 모임 ·····!




6. 크리스마스


부랴부랴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5분 거리에 있는 연습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1번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다.

9시 7분.

어라?

문이 잠겨 있다.

기계치라고 문까지 나를 무시하나?

세차게 흔들었지만 굳게 잠긴 것이 분명했다.


- 평일 6시. 토요일 9시 시작 -


차가 밀려서 늦는 건가? 토요일 오전인데 차가 왜 막혀?

신뢰감이 확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공원으로 돌려 산책하고 다시 와보니 9시 48분.

아직도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받을 리 없는 연습장에 전화를 걸어 통화 내역을 증거로 남겼다.


씩씩거리며 돌아오는 길 칼바람이 몰아쳐 더 화가 나고 약이 올랐다.

귀가 시려 두 손으로 감싸고 신호를 기다렸다.


오후에 다시 가기 위해 외투만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몸을 녹이며 브런치 글을 읽다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어휴 - !

하마터면 토요일에 왜 문 안 열었느냐고 법석 떨어 미친 할망구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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