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7. 너와 나

by 글마중 김범순


아주 가끔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나를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외롭다.


다정하게 어깨 한 번 토닥이면 괜찮아질 것을.




오늘은 희(喜)

일찌감치 운동 끝내고 오전 내내 대청소하고 점심 차리고 장을 봐오느라 온종일 동동거렸다.

너는 종일토록 시기적절하게 엄살을 떨며 나를 수족같이 부려먹었다.

이기적인 너는 잘못은 물론 사과도 모른다.

철통 같은 벽이 가로막히며 절망의 나락이 지친 나를 삼켰다.

숨이 막혀 방금 들었던 저녁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 이대로 못 견디겠어. 밖에 나가 바람 쐬고 올게. -


네가 소리쳤다.

- 이게 뭐야? 짜서 도무지 먹을 수가 없잖아! -


농수산 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다가 염도계로 측정해 공들여 만든 저염식이었다.

나는 더 크고 독하게 고함쳤다.

- 먹지 마. 그리고 나 건들지 마! -


한관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죽고 싶었다.


내 마음을 읽었을까?

눈부신 섬광과 함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흠칫 뒤로 물러섰다.

정말 죽고 싶었는데 왜 피했을까?

인식하지 못한 죽음을 바랐던 것이다.


어둠이 스며든 공원 한쪽 아무도 다니지 않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너무 불쌍하고

밥 먹다 날벼락 맞았다고 어이없어할 늙은 수사자 같은 너도 가엾었다.


흐느껴 울기 딱 좋은 짧은 숲길이 끝났다.




8. 낙타의 눈물


EBS 세계테마기행!

그저께 도도한 암 낙타와 어미를 잃고 굶주린 새끼 낙타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낙타는 제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주지 않아 어린 생명은 아사 직전이었다.

뮈 ~ ~ ~ ~ ~ ~ ~ ~ ~ ~ !

주인은 암 낙타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경건한 자세를 갖춘 연주자는 주인 목소리와 비슷한 마두금 현을 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암 낙타의 까만 눈자위에 물기가 어렸다.

끝없이 빙빙 돌아 신과 만나는 터키 전통춤 세마와 비슷한 효과일까?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자 주인은 얼른 새끼 낙타에게 젖을 물렸다.

암 낙타는 내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였다.

소리가 일으킨 기적이었다.


* 마두금 : 몽골의 찰현악기로 머리 부분에 말머리 장식이 있다.




9. 기분 탓


기분이 자꾸 가라앉아 일주일 내내 한숨만 쉬었다.


사람한테 농락당했다는 것과

땅과 이별할 때가 되었다는 것과

산다는 사람이 있는데 가격이 싸서 보류한 것 때문이다.

글로 써놓고 보니 마음이 무거울 만도 하다.


일주일 전. 논 관리를 하는 박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냈느냐는 인사에는 대꾸도 없이 계약을 새로 해야 한다며 주민등록 번호를 불러주면 자신이 삼천 원짜리 도장을 파서 찍겠다고 했다. 진즉부터 이런 식인 줄 알고 있었지만 누군들 별수 있으랴 싶어 여태 맡겼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말했다.


“엄마 아빠는 참 답답해. 값도 안 오르는 시골 땅 왜 안 팔고 속 썩여요?”


서른넷에 혼자 몸이 된 인삼 장수가 있었다.

금산에서 인삼을 떼어 이천·여주·강원도에 팔고

강원도 특산 약재를 구해다 대전·금산에 팔았다.

산길 들길에 아무도 없으면 고무신 닳는 게 아까워 머리에 이고 걸었다.

연 걸리듯 걸려 있던 외상값을 모두 받은 날이었다.

뭉칫돈을 고무줄로 꽁꽁 묶어 고쟁이 주머니에 깊숙이 간직했다.

잠자리는 언제나 안전하고 돈 안 드는 여주 단골 약방 집 신세를 졌다.

밤중에 잠이 깬 그녀는 주머니에 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뒷간을 갔다 와서 두벌잠이 들었다.

10년 전 세상 떠난 뒤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남편을 꿈에서 만났다.

반가움과 까닭 모를 설움에 남편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었다.

자신의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깬 그녀.

얼른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돈이 없었다.

고쟁이를 내리고 올릴 때 뒷간 바닥에 떨어트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에 이어 누군가가 뒷간에 갔다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단숨에 뒷간으로 내달렸다.

돈은 고스란히 그 자리에 있었다.

죽어서도 도와주는 남편이 그지없이 고마웠다.

그녀는 그 돈으로 가장 사랑하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셋째 명의로 논을 샀다.

그 셋째가 75세인 나의 남편이다.


이 논은 우리 부부에게 그냥 논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부동산하는 남편 초등학교 후배한테 매매를 의뢰했다.

“얼마 받고 싶으세요?”

“평당 40만 원요. 몇 달 전에 박이 37만 원에 살 사람 있다고 했는데 안 판다고 했거든요.”

“40만 원요?”

부동산 사장인 후배는 이해할 수 없다며 누가 산다고 했었는지 박과 통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냥 해본 말이었대요. 땅값 올려서 못 팔게 하려고 수를 쓴 거지요. 오래도록 선배님한테 갖은 엄살을 떨어 소작료 적게 내며 직불금하고 장려금 타 먹으려고요.”

“그럼 얼마 받을 수 있는데요?”

“22만 원이면 당장 살 사람 있습니다.”

박한테 휘말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락하기 어려웠다.


심란해서 더는 견디기 어려워 남편과 시골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비석에 묻은 새똥을 문지르며 주저리주저리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참 이상도 하지.

기분 탓이라 며칠 갈지 모르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머니의 위로 때문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나. 비웃는 남편.


* 두벌잠 : 한 번 들었던 잠이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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