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13. 잘 자라 우리 아가

by 글마중 김범순


토끼가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

그런 중에도 인기척이 나면 움찔! 반응을 보였다.

사료를 주면 힘겹게 씹었다.

하루, 이틀, 사흘 ·····


토끼는 오줌을 한자리에만 눈다.

영리하거나 깔끔해서라기보다

냄새가 지독해서 천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생존 방식이다.

변기에 앉히고 잡아주면 꾹꾹 참았던 오줌을 한꺼번에 눴다.

얼마나 아픈지 나흘째는 누운 자리에서 그냥 쌌다.


“엄마, 토끼는 아파도 신음을 못 해요. 아무래도 병원에 데리고 가야겠어요.”


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에 온 지 11년 6개월이나 되어 돌아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닷새 되는 아침 바나나를 으깨 먹여보았다.

식욕은 있으나 삼키지 못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밤 9시.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토깡아 우유 줄까?”

고개를 움직여 먹고 싶다는 표시를 했다.

우유와 김 빠진 콜라를 작은 그릇에 담아 귀를 잡고 먹였다.


“아유 잘 먹네. 고마워. 잘 버텨줘서!”


설날 밤 3시 30분.

아들이 아가야, 밥 줄까? 하며 품에 안았다.

토끼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단말마와 함께 오줌을 주르르 흘리고 숨을 거두었다.

사람이나 토끼나 죽기까지의 여정이 너무 괴롭고 길어서 슬프다.

토끼는 어머니 산소 발치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토끼가 없는 거실은 휑하니 찬 바람이 불었다.

사과 깎을 때마다 껍질은 토끼 줘야지 하고 들떴다가 아 참, 토끼 없지!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생명이 살다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넓었다.


오늘 아침 베란다 청소할 때 건초 상자를 정리했다. 툭하고 서비스로 넣은 말린 클로버 봉지가 떨어졌다. 토끼가 가장 좋아하던 먹이였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단말마(斷末摩)

1.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2. [불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14. 벽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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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방에 걸려 있는 시계가 멈추었다.

시침 조절 손잡이가 망가져 속을 썩인 지 오래되었다.

건전지를 교체할 때면 펜치로 잡고 돌려 간신히 시간을 맞추었다.

고쳐쓰기 위해 시내에 있는 시계포로 갔다.

만약 고칠 수 없다면 새로 사야 했기에 남편도 동행했다.

주차하고 휠체어에 앉은 남편한테 시계 담은 가방을 안겼다.

인도로 접어들 때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앞바퀴가 걸려 휠체어가 요동을 쳤다.

그 바람에 남편이 안고 있던 시계가 바닥에 떨어져 테두리가 바짝 깨졌다.

수리비는 15,000원이고 새 시계는 35,000원이었다.

우리는 시계를 사기로 했다.

“35년 전 수업하다 쓰러진 남편이 퇴직할 때 제자들이 선물한 귀한 시계거든요. 안타깝지만 버려주세요.”

주인 영감과의 대화를 들으며 젊은 수리 기사가 감동했다.

뜻밖으로 새 시계는 방에 어울리지 않아 남편이 싫다고 했다.

황급히 시계포에 전화를 걸었다.

주인 영감은 점심 먹으러 갔는지 부인이 받았다.

“조금 전에 시계 산 사람입니다. 버려 달라고 했던 벽시계 절대 버리지 말고 기사님한테 고쳐 달라고 하세요. 꼭 전하셔야 해요. 꼭요!”

일주일 뒤 전화로 고쳤는지 물었다.

주인 영감은 그런 말 못 들었다며 가게가 비좁아서 그날로 시계를 버렸다고 했다.

버려달라고 할 게 아니라 고쳐 달라고 했어야 했다.

감동하던 기사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고 시계포로 갔다.

주인 영감이 벌컥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아, 버렸다니까요!”

수리 기사가 나를 알아보고 이 시계지요? 했다.

”맞아요. 오기를 잘했네요. 고쳐 주세요.“

“통화내용 듣고 짐작은 했는데 사모님이 이상한 전화라는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깨진 테두리 하고 유리만 버리고 보관해봤어요. ”

일주일 뒤 시계를 찾으러 갔다.

”여러 번 오시게 해서 특별히 10,000원에 모시겠습니다.“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 하마터면 영원히 작별할 뻔했다.



15. 아기 토끼가 왔어요


홈플러스에서 생후 6주 된 하얀 토끼를 사 왔다.

하도 작아서 쳐다보기만 해도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토끼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불안해했다.

안정될 때까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았다.

외국에 사는 큰 손녀가 이름을 구름이라고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름이는 차차 경계심을 풀고 건초를 악착같이 먹고 총알처럼 뛰어다녔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이갈이 비타민을 주는 아들 뒤를 따라다니고

내가 베란다로 나가면 사과껍질 빨리 달라고 칸막이를 물어뜯으며 조른다.

주말 연속극이 시작되면 구름이를 안고 남편과 같이 본다.

그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극!극!극!

안겨있는 것이 싫어서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아들이 검색해 보고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내는 소리래요.”

세상에!

가슴이 무너졌다.

아직 아기나 다름없으니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

인간의 이기심으로 새끼를 빼앗긴 어미의 슬픔은 또 어쩔 것인가?

토끼는 너무 일찍 젖을 떼면 면역력이 없어 병에 약하고

훌쩍 자라면 사람과 친해질 수 없어 6주 무렵에 어미와 분리한다고 했다.

미안하고 그지없이 안쓰러웠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엄마는 아니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또 하나의 죄를 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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