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가 발견한 쉬운 진리를 어러운 진리로 만들었다
석가는 단 한 번도 석가부처를 믿으라고 한 적이 없다
석가 이전부터 있었던 진리 즉, 법法을 믿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각자가 스스로 자신을 믿으라고 하였다.(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
《칼라마경(Kalama Sutta)》은 칼라마족 사람들이 석가에게 와서 다양한 스승들이 서로 다른 논리를 주장하는데 어떤 말을 따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석가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라고 믿지 말고, 여러 사람이 믿는다고 믿지 말며, 경전에 있는 말이라도 믿지 말라. 그리고 스승이 맞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오직 너희가 직접 관찰하고 판단하라."라고 하였다, [역자註: 여기서 경전은 베다경전을 말함. 불교는 이때 경전이 아직 없었으며 암송暗誦으로 전법하였음]
"이 것이 선善하여 나와 다른 이에게 이롭고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법을 따르고 실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법과 각자 스스로를 믿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직접보고 직접 검증하고 이롭고 유익한 것만 실천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교는 경전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다. 삼보(불, 법, 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강조하였으며 아함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에서 모두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석가의 가르침을 종교라는 상황에 맞추어 일부 변형하였다.
석가는 스스로 깨우친 진리를 가르쳤고 이 진리는 분명하고 명료했다.
제자들은 불교를 종교화 하면서 스승의 근본철학을 오도誤導하였다. 믿음정도가 아니라 불교에 아예 기복신앙을 넣었다. 그리고 힌두교의 박티신앙과 유사한 정토신앙을 도입했다. 무아無我와 상충되는 논리의 윤회輪廻까지 차용하였다.
그리고 윤회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게 형이상학적인 논리로 추론해 놓았다. 아비담마 피타카(abhidhamma-pitaka) 중 빠띠삼비다 막가(patisambhida-magga) 경전에서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인 [죽음마음]과 다음 생의 [재생연결심]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일 뿐 동일한 영혼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아의 원리에 따라 [조건적 연속]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어렵게 기록을 하였다. 그런데 윤회를 설명하면서 사후영혼에 관한 설명은 없다. 동일한 영혼 없이 윤회로 이어지는 게 윤회가 맞나. 불교의 無我와 힌두교의 輪廻의 형용모순을 피하려다 보니 생겨난 귀결이다.
그래서 미얀마 등 남방불교에서는 삼사라(samsara, 윤회輪廻) 대신 푸나바바《punabbhava, 재생再生》란 말로 무아와 윤회를 버무려 놓았다. 윤회와 재생의 중간적 표현으로 '윤생輪生'이라고도 한다.
또 남방불교에서는 "불교는 윤회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영혼의 윤회가 아니라 업業의 재생再生을 말한다."라고 한다.
업의 재생은 유전遺傳에 의해 생겨난다.
석가의 진리는 쉽다. 석가의 가르침이 너무 쉬우니까 상좌부승려들이 가르침을 난해하고 현학적이며 신비감을 더해 이론을 전개하면서 힌두철학을 같이 섞어 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힌두베단타철학의 《윤회사상》이다.
석가는 대각 후
첫 설법에서 《중도》와 《사성제》 그리고 《팔정도》를 말씀하셨다(초전법륜). 두 번째 설법에서 《삼법인》인 <無常> <無我> <苦(두카)>를 말씀하셨고(무아상경), 세 번째 설법에서는 《삼독》인 <탐><진><치>를 경계하라 말씀하셨다.
사실상 이 세 번의 설법 안에 모든 진리가 다 들어 있다. 더 이상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석가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 인도사회를 이해해야 한다. 인도는 베다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브라만교가 만든 《카스트계급: BC1200》제도가 있었다. 신분이동은 할 수 없었으며 '불가촉천민(달리트)'은 이미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도에는 神이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어 3억 3천만이라고 한다.
석가는 일반대중이 神이라는 무형의 대상에 미혹되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윤회는 《自我》가 있어야 하기에 윤회를 깨는 논리로 《無我》를 강하게 말씀하시면서 윤회를 부인하였는데 제자들은 윤회를 교리에 넣었다.
세 번째 설법에서 어리석을 《치痴》를 경계하게 하여 지혜(반야)를 깨우치라 하셨다.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법(진리)에만 의지하라고 마지막 떠나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역시 제자들은 어겼다.
석가의 《무아사상》은 불교 교리의 토대였다. 다른 종교에서 이를 인정하는 곳은 없다. 불교에서만 주장하는 논리이지만 내가 볼 때는 애매한 측면도 있다. 윤회사상을 들여오면서 기본 토대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자아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다시 태어나는 어떤 연속성은 인정해야 하니, 이 둘 사이의 관계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용모순, 모순허용논리(Paraconsistent Logic)이다.
기존 인도 사상체계에서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기존 종교인들과 사상가들 사이에 철학적 갑론을박이 많았을 거라 추정된다. 석가는 비주류였는데도 이후 어떤 철학자도 사상가도 2500년 동안 이 논리를 깨지 못했다. 《무아사상》 논리는 확고하다.
우파니샤드철학에 의한 《윤회사상》 때문에 하층계급이 지옥 같은 생활을 면하려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만(윤회) 신분이동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석가는 기존 종교와 철학이 지배하는 인도사회에서 현학적이고 문자향이 짙은 기존의 《자아(아트만)》개념과 《윤회사상》을 혁파하고 《무아(아나트만)》와 《무상》 그리고 《연기법》을 내세워 불교를 창설하고 미몽에 쌓여있는 대중들을 구원하였다.
석가는 신을 중심에 놓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놓았다.
해탈과 열반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신을 믿지 말고 스스로 神(부처)이 되라고 하셨다. 일체유심조이다. 신은 精神안에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석가의 사상을 오역했다.
풍초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