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삶과 살아내야 할 삶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얼마 전 이숨작가님의 글을 처음부터 보다가 삶이란 걸 다시 생각해 봤다. 보통사람이 사는 일상적 삶이 다른 《어떤 이》는 살아내야 할 삶이기도 하다.
나는 사후 영혼이란 화두를 들고 씨름하고 있는데, 팍팍한 현실을 당장 살아 내야 하는 사람에겐 죽음너머의 이야기가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사람이 평등한 건 인격이지 귀천은 아니다. 우리가 공평을 말하는 건, 사람다움을 말하는 거고 인격의 가치를 차별하지 말라는 거다. 칸트는 "인간은 목적의 수단이 아니고 자체가 목적인 인격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는 게 정말 힘들다.
속담에 잘된 건 내 탓, 잘못된 건 조상 탓이란 말이 있으나, 명절에 제사를 버리고 해외여행 떠나는 사람은 대개 조상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근데 조상덕을 못 받은 사람들이 집에서 전을 부치고 있다.
본래 자유자본주의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제도였다. 신자유주의(레이건, 대처) 이후 환경이 바뀌었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못 사는 사람은 못 산다. 머리가 좋아도 돈으로 하는 공부는 이길 수 없다. 유튜브 같은 재능은 별개지만.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 학교 안 다니고 절 같은 곳에서 독학을 해도 판, 검사가 될 수 있었다. 고생하며 커도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었다.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었다. 그런 사다리는 이제 없어졌다.
공화(共和, 공동체가 화합하는)가 되지 않으면 사회가 불신으로 간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복 받고 잘 살 수 없으면 그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지금의 청춘이 그렇다.
이런 가운데 척박한 환경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어떤 이》 들에게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다. 환경은 바뀐다. 달이 차면 기운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을 거다.
인생은 <'새옹'이란 노인의 말馬>과 같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은 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