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는 스스로에게 배려는 상대방에게
이 세상을 살면서 꼭 필요한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엄마 가족 사랑 등등 많은 단어가 있지만 <절제와 배려> 나는 이 두 단어를 생각한다.
며칠 전에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은혜로 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은혜로 교회)을 보았다.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자식이 부모를 구타하는 '타작마당'이라는 종교의식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관계인 가족을 해체하여 오직 교주만 믿고 신봉하게 만드는 교회를 보면서 종교의 폐해를 다시 실감하였다.
기존 교단도 오십 보 백보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 교황청에서는 미국 보스턴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사건이 보도된 직후, 교황의 퇴진까지 거론하며 여론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미국 내 교단의 합의 보상금만 한화로 1조 3000억 원이나 된다고 하니 정말 할렐루야이다
<스포트라이트>라고 하는 영화까지 나올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사회문제이다.
국내는 또 어떠한가,
조계종 총무원장이 비리문제로 제명되고 권력을 지키려는 수구파와 뺏으려는 신진파 사이에 암투가 온 세상에 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이런 일련의 모든 일들이 옛날 같으면 권력의 힘에 다 묻혔을 일들이 세상이 밝아지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권력의 신비감이 약해지니까
세상 밖으로 천기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현대인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결국엔 믿을 곳이라곤 없다. 나와 가족뿐이다.
그러면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답은 없다 그러나 줄일 수는 있다. 그 방법이 2가지 단어만 마음에 담고 살면 된다.
<절제와 배려>이다.
절제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고 배려는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다.
이 두 단어만 마음속에 지니고 살면 종교도 필요 없고 사회생활은 편안하게, 대인관계도 무난하게, 내 마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삶 자체가 욕심인데 이 욕심을 절제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산다면 조그만 행복이지만 자주 만나게 될 것이고
남을 대할 때는 조금씩 배려를 하여 항상 상대방을 먼저 챙기는 습관을 생활화한다면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이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한번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은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영원은 순간의 연속이고 다음 순간은 이 순간에서 태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시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제 만났던 사람이 내일 나하고의 관계를 결정한다.
어제 약간의 배려가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내일 나에게도 좋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내가 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은 미련하게 종교에 빠져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이 두 단어를 신과 같이 생각하고 살아보라 그래서 열심히 살고 이 세상 끝 마칠 때는
천상병시인의 귀천 중 <소풍>처럼 다시 본래 내가 있던 곳으로 먼지가 되어 날아갈 뿐인데...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풍초해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