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늘 전쟁터같았다. 매일 매일 바뀌는 시장 속에서, 작디 작은 스타트업은 항상 바쁘게 움직여왔다. 1달전의 내가, 지금 나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스타트업 4년차, 단 한 순간도 한 달 뒤의 상황을 예상해보고 맞춘 적은 없던 것 같다. 반복되는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우리 몸이 건강히 살아있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같달까?
스타트업에서의 삶은 자율성이 매우높다. 내가 중요한 일을 먼저 찾아서 보고를 해야하고, 진행했던 내용들에 대해선 여러가지 관점으로 판단하고 개선책을 제안하는 등 유기적이었고 즐거움이 컷다. 즐거움 반 어려움 반으로 열심히 업무를 하다보니 회사는 성장하기 시작했고, 하나 둘 팀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 몇 달만에 경력직 2명, 신입 3명이 들어왔다.
직함만 팀장이었던 나는, 5명의 팀장이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5명 중 내가 알려줘야할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경력직도 2명이나 있었고, 사수도 내가 아니라 이사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팀장으로서 할게 없었음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 다행은 오래가지않았다.
첫번째 관문, 팀장은 상담사가 아니다.
5명으로 팀장, 하지만 특별한 업무가 있는 것은 아닌 채로 살아오기를 3개월.
모두가 회사에 적응을 했고, 팀원들간의 여러가지 상호작용이 생겼다. 몇명 안되는 팀 속에서도 공감, 화합, 성과같은 감정은 물론 갈등, 불만 등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 또한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끈들은 하나씩 나에게로 오기 시작했다.
업무적으로는 많이 엮이진 않으면서도, 그들과 감정적으로 엮이기 시작했다. 각 팀원의 상태에 맞게 내부적인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조정해야했다. 효율은 내지못하면서도 팀원의 피로도를 높이는 요소가 있다면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면담을 할수록 그들의 감정을 어디까지 잡아주어야 하고, 어디까지 방관해야 될 지 기준점이 모호해지고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정말 힘들어한다면,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운영에 반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더러 효율적이지 못하다. 내가 처리해야할 일들은 두배가 늘었지만, 온전히 나의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나 또한 상담의 시간을 효율화시켜야했다.
(업무 중 급하게 면담요청을 해서 갔더니, 전세대출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로 30분을...)
생각보다 간단한 답을 이끌어 냈다. 팀장은 상담사가 아니다. 면담의 목적은 감정케어가 아니라, 감정케어를 통한 효율화 그리고 성과달성이 되어야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면담관리를 시작했고 팀원관리와 나의 업무에 대한 밸런스를 한층 더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 고정양식 vs 자유양식?
스타트업 4년차에게 있어 서류양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양식이란?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법 그 이상 그 이하의 가치도 없었다. 잘 만들어놓은 양식은 반복적인 업무를 함에 있어, 업무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게 반복적인 업무라는게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새로운 시장을 뚫고 나가고 새로운 상품을 새로운 고객에게 선물해야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석툴과 성과지표를 설정하며 우리가 올바르게 나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뿐이었다.
하지만, 단 몇달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팀원들에게 항상 자유양식으로 보고를 받았지만 제안서는 읽기 어려웠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했다. 나는 제안서에서 고민의 흔적이 없음에 아쉬움을 표했고, 그들은 양식이 없음에 난색을 표했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었다.
정해진 틀에서만 고민하는 것은 실력을 키우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렇기에 각 멤버들이 양식과 논리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초안은 스스로 잡되, 확실한 수정 가이드를 줌으로서 방향성을 이해시키면서도 업무의 효율성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팀장이 모든 양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팀원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편하고 업무효율 또한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업무하고,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다는 관점에서는 상당히 아쉽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법인카드에 대해서
팀장을 달고나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라면, 법인카드의 사용권한이 생겼다는 것
그래서 가장 힘들어보이는 월요일 아침이면, 팀장의 권한으로 커피를 사주곤 했다. 재미있게도 따로 상한금액이 없다. 팀장 센스껏 점심, 저녁, 커피, 회식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팀장의 권한을 챙겨주고 밀어주었던 대표님의 배려랄까.
하지만, 언제나처럼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잦은 식사와 커피는 팀장의 권한이 아닌, 직원의 복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오히려 안 사주는 날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반복되자, 법인카드 결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런 명분없이 커피사는 것은 줄이기 시작했다. 업무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 면담을 목적으로 구매하거나, 유난히 팀적으로 분위기가 쳐지는 날 등 명확한 명분이 있을 떄 위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직원의 복지가 아닌, 원활한 팀운영을 위한 자금으로 인식하고 운영하도록 노력했다.
(돈에 대한 문제이다보니, 유난히 어려웠고 민감했던 고민이었던 것 같다.)
네번째, 성장에 욕심이 없는 팀원은 어떻게 대해야할까?
빠르게 급변하는 스타트업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직원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태를 잘 알고 있기에 당장의 업무의 효율은 나오지않더라도, 성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업무를 분배하고 프로세스를 조정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치고나와서, 제 역할 그 이상을 하는 팀원도 있지만 생각보다 아쉬운 성과와 성장을 보여주는 팀원도 있었다.
성과도 없고, 역량에 대한 성장도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은 많은 고민을 끓게 만들었다. 성장에 대한 창구를 열어주기 위해 면담도 진행하고 업무조정도 수없이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가치관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두가지가 크게 기억에 남는 듯 하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죠", "회사에서의 성장은 꼭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않아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했다. 왜 모든 사람은 성장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면담이 끝난 후 빠르게 업무를 조정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업무의 비중을 높이고, 고민이 많이 필요하며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업무의 비중은 낮추기 시작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업무조정이었다.
(물론, 그 팀원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높았던 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을 했다.)
다섯째, 좋은 팀 문화란 무엇일까?
팀장의 역할은 팀원 하나하나에 대한 성과는 물론, 팀으로서의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했을 때 즐겁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팀장으로 해야할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업무습관을 만들었다.
1.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문화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다. 산수처럼 한가지 원인이 결과로 다가오질 않는다. 누구 잘못이 더 큰 지를 논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 없다. 책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되, 각자의 영역에서 개선책을 고민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지않고 내부에서 찾는 팀은 반드시 성장하고 값진 성과를 낼 것이다.
2. 스스로 회고할 수 있는 문화
어떤 업무이든, 반드시 평가는 진행되어야 한다. 단, 그 목적은 학생처럼 시험을 잘 봐서 점수를 얻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나아가는 방향성이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근거로서 활용해야한다. 단, 그 판단의 주체는 팀장이 아닌 업무를 진행했던 팀원 스스로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팀장은 그 판단의 방법, 혹은 분석에 대한 인사이트가 적합한지 추가적인 의견을 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야한다.
3.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문화
회사는 팀원 한 사람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한다. 하지만, 팀원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대의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 내가 없으면 삐걱거리는 회사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나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자신이 그 업무를 회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부품이 아닌 유기적인 조직이라는 인식은 팀원으로 하여금 즐거움과 성취감을 동시에 줄 수 있다.
글을 마치며
팀장은 나에게 주어진 일만을 잘 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하고 성장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하며, 팀이라고 하는 조직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구성원간에 신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가장 머리 아프게 했던 5가지를 중심으로 작성하였으나 사실 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혹은 아직 느끼지 못한 어려움은 더욱이 많은 것이다.
치열하고 고민하고, 더 성장한 내일을 준비하는 모든 팀장분들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