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기쁨(2)

김광규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기형도 '전문가'

by 김승희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 김광규

동짓달에도 날씨가 며칠 푸근하면

철없는 개나리는 노란 얼굴 내민다

봄이 오면 꽃샘추위 아랑곳없이

진달래는 곳곳에 소담스럽게 피어난다

피어나는 꽃의 마음을

가냘프다고

억누를 수 있느냐

어두운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의 힘을

보이지 않는다고

업신여길 수 있느냐

땅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하늘로 피어오르는 꿈을

드높은 가지 끝에 품은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힘차게 위로 솟아오르고

조용히 아래로 깊어지며

밝고 넓게 퍼져 나가기를

그러나 행여 잊지 말기를

아무리 높다란 나뭇가지 끝에서

저 들판 너머를 볼 수 있어도

뿌리는 언제나 땅속에 있고

지하수가 수액이 되어

남모르게 줄기 속을 흐르지 않으면

바람결에 멀리 향냄새 풍기는

아카시아도 라일락도

절대로 피어날 수 없음을


젊은이들에게 나무의 속성을 통해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힘차게 위로 솟고 아래로 깊어지며 넓어지며 꽃을 피우는 것 그러나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땅속에 있는 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뿌리가 튼튼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뿌리처럼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뿌리에서 나오듯 내면의 강인한 힘을 키우는 젊은이로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전문가 / 기형도


이사 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 내는

그 유리 담장을 박살 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 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유리 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유리 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이사 온 그의 집에 유리를 깬 아이들. 그러나 괜찮다고 말한 그. 계속 유리를 깨던 아이들은 결국 그의 충직한 부하가 되고 벽돌을 나르는 존재가 된다. 이 시는 우매한 민중을 이끄는 권력자의 달콤한 술수를 보여주는 놀라운 시이다. 어쩌면 이러했던 시대, 이럴 수 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시여서 씁쓸하다. 과연 나는 유리를 깨는 그 아이, 권력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렬로 서서 묵묵히 벽돌을 나르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존재 앞에 굴복하게 된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대중을 교묘하게 이끄는 전문가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중을 존중하며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바른 안목을 지닌 지혜로운 청지기라 생각한다. 이 땅에 지혜로운 청지기가 많아지기를, 깨어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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