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거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맨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 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 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며칠 전 전절 안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을 때였다. 퇴근 시간이었고 조금씩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쯤 연세가 있어 보이는 어떤 분이 전철을 타셨다. 많이 힘들었는지 거의 바닥에 앉으려고 하셨다. 피곤했지만 일어서려고 했는데, 그 뒤쪽에 있던 남학생이 자리를 양보하는 거였다. 속으로 참 다행이다 싶다고 외치면서 은근슬쩍 그 남학생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자리를 양보하는 일,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일, 모두가 떠난 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쓰레기를 줍는 일, 터덜터덜 가방을 메고 혼자 걸어가는 친구의 어깨를 감싸며 함께 걸어가는 그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 요즘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싶은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그 따뜻한 행동들이 곳곳마다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얼마나 누군가에게 따뜻한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에 떠올려지는 시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복효근)’이라는 시와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라는 시다. 화자에게 가장 따뜻한 저녁을 안겨준 선재의 따뜻한 행동은 붕어빵 다섯 마리가 아니라 어떤 무게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이다. 선재와 같은 따뜻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자에게는 얼마나 행복하며 그 따뜻한 행동이 전해져 화자 역시 그런 행동을 누군가에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에 나오는 주인아저씨. 국물이 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시는 주인아저씨, 다 알면서도 모자의 행동을 애써 외면하며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주인아저씨의 그 행동이야말로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가슴 따뜻한 행동이다. 그 따뜻한 행동을 느끼는 화자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따뜻한 행동은 따뜻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행동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그 마음의 울림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울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팍팍하고 굳어진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단비와 같은 것이다. 광야 같은 세상, 험하고 힘든 세상이라 말한다. 살기가 힘들고 사람이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한다. 믿을 사람 없고 누군가의 도움조차도 혹시나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조심스럽게 도움을 주려고 해도 혹시나 상대방이 어떨까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마음으로 우러나는 따뜻한 행동은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그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용기를 얻게 되고, 위로를 얻게 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따뜻한 행동이란 아주 대단한, 정말 헉소리 날 정도의 그런 행동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작은 어쩌면 사소한 일상의 평범한 행동일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리를 양보하는 일부터 쓰레기를 줍는 일, 따뜻한 말 한마디, 정성이 묻어나는 손 편지. 바쁜 친구를 대신해 청소해 주는 일, 평소와는 다른 얼굴을 한 친구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일, 땀 흘리며 애쓰는 누군가에 물 한 잔 갖다 주는 일 등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보이는 작은 선함이 모여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런 곳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이지 않지만 잘 몰랐지만 그래도 이런 따뜻한 손길이 있어서 지금 그래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피곤하고 힘들어 주저 않고 싶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 내밀어준 누군가의 따스함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주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따뜻한 손길에 축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