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은 참으로 길다.

영화 ‘만추’ 감독: 김태용, 주연: 탕웨이, 현빈

by 김승희

남편을 살해한 죄로 7년째 감옥에 있는 중국인 애나(탕웨이)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나오게 된다. 시애틀로 가는 버스를 탄 애나, 누군가에 쫓기듯 급하게 버스를 올라타는 한국인 훈(현빈). 버스를 탔지만 차비가 없어서 차 안을 둘러보던 훈은 애나를 보며 30불을 빌리게 되고, 함께 시애틀에 오게 된다. 오는 도중 30불을 갚을 때까지 자신의 시계를 맡아 달라고 한 훈, 훈은 사실 딱히 어떤 직업이 있다기보다는 돈이 많은 누나들을 에스코트하는 사람이다. 그런 누나들 중 한 명인 옥자라는 분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던지 그것을 알아챈 남편이 훈을 쫓고 있다고 훈에게 조심하라고 누군가 전화로 알려준다. 훈은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애나를 주시하고 애나는 그런 훈을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채 돈을 갚겠다고 준 전화번호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족에게 간다.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이지만 사실 가족들이 반겼던 이유는 돈이 없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려고 하는데 그러면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결국 동생 애나의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오빠와 언니, 그런데 엄마의 묘비명에 쓸 내용이 잘못되어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보며 불편한 애나. 애나가 잠시 집을 나와 마당을 돌아다니던 중 바로 옆집에서 부인과 얘기를 나누는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와의 인연이 있는 듯 얘기를 나눈다. 그 남자 왕징은 오빠의 친구로 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이다. 결국 그와의 인연을 이루지 못하고 애나는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왕징이 함께 도망을 가자고 해서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미리 그 사실을 알고 남편이 협박을 했고 그 협박한 남편이 애나를 때린다. 그때 뭔가 잘못 됐는지 남편이 죽게 된다. 애나가 죽였을 수도 아니면 사고로 인한 죽음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애나는 그 일로 감옥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지내고 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까?


3일간의 휴가 중 그녀가 잠시 나온 시애틀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귀걸이를 하고 기분을 전환하려 하지만 자신의 죄수번호와 위치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고는 다시 예전의 옷으로 갈아입고 감옥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다시 망설이며 나온다. 그때 우연히 훈과 만나게 된 애나. 애나는 훈에게 자신과 함께 자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둘은 모텔로 들어가지만 결국 애나는 훈과의 잠자리를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게 되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 애나에게 너무도 쿨하게 자신이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너무나 편하게 대해주는 훈. 그런 훈에게 시애틀을 잘 아냐고 물으니 훈은 잘 안다고 무엇을 먹고 싶은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밥을 먹고, 관광버스를 타기도 하고, 아직 문이 닫힌 놀이 공원에서 범퍼카도 타면서 시간을 보낸다. 범퍼카를 타던 그때 문이 열리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본다.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보던 훈이가 마치 더빙처럼 말을 입힌다. 그 말을 듣던 애나. 지금까지 그렇게 말이 없던 애나가 말이 트인 듯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봇물처럼 쏟는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그녀였나 싶기도 하고,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환상적인 장면이다. 이런 대화를 통해 애나가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 되는 계기였을까? 어딘가로 뛰어가는 애나와 그녀를 쫓아가는 훈, 그들이 멈춘 곳 시장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마침 유령 관광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놀라게 된다. 미국이라는 곳에 마치 유령과도 같은 애나와 훈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드디어 애나가 훈에게 자신의 얘기를 한다. 자기는 내일 감옥에 가야 한다며 어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나왔다고 한다. 이 말에 훈은 놀라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녀의 심정을 공감했는지. 그녀에게 중국말로 좋다는 하오와 반대되는 화이라는 말을 물어보고 나서는 그녀의 말에 두 가지 말로 반응한다. 이때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오게 됐는지 말을 꺼내게 되고 어디서부터 이렇게 됐는지 얘기하게 된다. 그리고 애나와 헤어지기 전 걸려 오는 전화 한 통, 애나에게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훈이 먼저 간다. 훈이 간 곳에 있던 옥자. 옥자는 훈에게 돈을 주며 자기와 함께 살자고 한다. 그러나 훈은 남편이 자기를 쫓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런 자신에게 주저하는 훈을 보며 괜찮다고 하지만, 그녀를 호텔에 모셔주고 훈은 빠르게 그녀가 기다릴 것 같은 그의 방으로 가지만 그녀는 시계만 침대에 두고 가 버린다.


장례식장에 조문 오신 분들을 맞이하는 애나. 장례식장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훈이 찾아오고 훈과 대화를 나누던 왕징과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 싸움으로 인해 애나는 왕징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보며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런 애나를 보며 왕징도 미안하다고 한다. 애나의 억눌렀던 마음이 처음으로 분출된 그 장면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된다. 모든 일을 마치고 감옥으로 돌아가게 된 애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던 훈이 그 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안개가 너무나 많이 끼어 휴게소에 멈추게 되고 그들은 잠시 내리게 된다. 그때 난데없이 훈의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어지는데, 그렇게 한 사람은 바로 옥자의 남편, 아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왜 옥자를 죽였나고, 훈은 옥자가 어디 있냐고 묻지만 피 묻은 가방만을 보여주며 네가 돈을 빼앗고 죽이지 않았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찰이 올 것이라고 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야 하는 훈, 아마 그때 잠시 인사를 나누고 오겠다고 했을까. 훈이 애나에게 오고 두 사람은 정말 애절하고 긴 키스를 나눈다. 보도에 의하면 가장 긴 키스 장면으로 2분 이상이 넘는다고 한다. 그 짧은 만남의 종지부를 찍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마음과 서로가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만남의 끝에 두 사람은 애절하면서도 진실된 마음을 나누게 된다. 별말이 없던 훈은 그렇게 빠르게 달려오는 경찰차에 몸을 실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애나는 커피를 사 오며 훈을 찾지만 훈은 없다. 그제야 훈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2년 후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나오게 된 애나는 당신이 나오는 날 여기서 다시 만나자고 휴게소에서 했던 훈의 말을 기억하며 휴게소에서 훈을 기다린다. 오지 않는 훈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애나의 모습 위로 자막이 올라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3일간의 애절하고도 짧은 애나와 훈의 사랑 이야기,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애나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나누는 애나의 섬세한 그 변화의 과정을 보자면 두 사람의 그 짧은 만남을 통해 진실한 마음을 나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그런 애달프고도 애절한 키스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수많은 대화와 강렬한 사건, 자극적인 그 어떤 것도 없지만 시애틀을 배경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오고 가는 대화와 표정, 특히 섬세하게 변하는 애나의 표정들과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참으로 헛헛한 마음과 짧은 우리의 인생 속에 스치는 강렬한 사랑을 느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멋만 부리며 사는 훈, 왜 이렇게 가벼운 삶을 살고 있나 싶은 훈이지만 애나를 보며 편안하게 해 주려 하고 무엇보다 그녀를 웃게 하는 훈, 애나의 상황을 알면서 애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는 훈을 보자면 인간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결국 그녀처럼 그도 누명을 쓰고 감옥을 가게 되는 그런 상황으로 그래서 결국 더 큰 이별을 하게 되는 모습까지 만추라는 늦은 가을에 느끼는 그 쓸쓸함은 적막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고, 사랑이란 그렇게 강렬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사랑도 끝나고 그 이후에 그리움은 참으로 길구나 싶다. 벼랑 끝 상황처럼 놓여 있는 그들에게 사랑의 순간이 사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짧은 애절함 속에 그들이 스쳐 지나갔던 순간순간들이 새겨지면서 얼어붙었던 애나의 마음을 열었던 그 인간적인 훈의 마음이 정말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랑 때문에 아파했던 애나, 사랑으로 인해 9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자신을 다스려야 했던 구속 상태에서 느꼈던 삶의 아픔. 이제는 그 사랑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려 하지만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훈이 없는 빈자리를 보며, 쓸쓸한 인생이 참으로 애잔하면서도 늦가을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강렬하지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그 얼굴에 드러나는 미묘한 변화들과 거리의 모습과 걸어 다니는 두 연인의 모습이 연한 수채화처럼 마음에 새겨진다.

인생이란 시애틀의 뿌연 안개처럼 흐릿하여 그 앞을 알 수 없지만 강렬한 사랑의 순간들이 있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그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고 더 큰 그리움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마음속에 감추어둔 사랑과 이별의 얘기를 들으며 사색에 잠기듯 애잔한 사랑과 그리움에 물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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