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즐거움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by 김승희

‘어쩌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참으로 흥미롭고도 놀라운 책이다. 어느 사이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독후감 도서로 이 책이 있었다. 많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두 곳에서 추천한 책이라 ‘아 읽을 만한 책이겠다’ 생각하고 주저 없이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을 다룬 참으로 독특한 소재의 책이면서도 주인공 영두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것이 치유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너무 절묘하게 담아낸 독특하면서도 마음에 남는 책이라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찾아보니 이동진 작가도 2024년 책으로 이 소설을 추천하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책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셨다. 그런 분들이 아닐지라도 독특한 소재와 문체, 여러 개의 다층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시간을 넘나들면서도 자연스럽게 구성해서 읽는 묘미를 느끼면서도 소설 읽는 재미에 빠질 수 있게 하는 그래서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를 채용하고 싶어 한다고 찾아온 건축사사무소에서 백서 작업을 하는 곳이 창경궁 대온실 보수 공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30대 영두는 창경궁이라는 얘기를 듣고 14살 강화도 석모도에서 서울 낙원 하숙으로 와서 경험했던 이곳(원서동)에서의 힘든 상처 때문에 하려 하지 않았지만 친구(은혜)의 딸 산아의 말처럼 ‘모르는 것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에 힘입어 그곳에서 일하기로 한다. 강화도에 홀로 아버지를 두고 온 낙원 하숙에는 낙원 하숙의 주인 안문자 할머니와,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 손녀 리사, 그리고 삼우 아저씨, 유화 언니가 살고 있었고 할머니를 도와주시기 위해 딩 아주머니가 오셨다. 그런데 손녀 리사와는 비슷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아니 리사와 리사의 친구의 괴롭힘으로 인한 상처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석모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서 지워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낙원 하숙에서 살 때 금성무를 닮은 이순신이라는 마음 따뜻한 첫사랑과의 추억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낙원 하숙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힘든 생활과 순신과의 일들이 그려지면서 또한 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소장, 소목수, 작도, 제갈도희 디자이너와 함께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 대온실에 배양실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 뼈가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과연 그것이 누구 뼈일까 조사하게 된다. 그때 자료를 통해 낙원 하숙의 주인 안문자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 잔류하는 일본인으로 전쟁 중에 대온실의 공무원이었던 그의 양부가 안문자 할머니와 남동생을 창경궁 지하실에 머물게 했던 일, 그때 양부가 죽게 되었고 양부를 죽인 사람을 할머니가 잿물을 그 사람의 눈 속으로 밀어 넣으며 도망가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영두는 그 사람들의 뼈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배양실 조사 과정에서 벌인 일로 영두는 수리 보고서를 쓰는 일에는 제외가 된다. 비록 제외가 되지만 그전에 창경궁 온실과 관련된 일을 하며 그녀가 받은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그 자료들을 통해 기록된 것들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이야기가 된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 이야기다. 원예농업가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며 이곳을 만들기까지의 노력들이 소설 중간중간에 이어진다. 참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기 어려운 몇 개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1850대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프랑스, 미국, 강화도, 서울에 이어지는 공간까지 정말 다채로운 이야기가 작가에 의해 아름답게 연결되고 그려진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소설 속에 푹 빠져 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기 위한 과정에서 결국 14살의 상처 입은 어린 영두가 30대의 영두로 다시 낙원 하숙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남기며 마음속에 상처가 그냥 덮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의 치유적 과정에서 대온실이라는 역사 속의 공간이 또한 복원되는 과정이 겹치면서 인간의 삶이란 개인과 사회 속에서 함께 엮어가는 씨실과 날실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소설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것 중의 하나가 영두와 영두 친구의 딸 산아와의 이야기이다. 강화에 살고 있는 산하네 학교로 서울에서 스미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는데, 말이 없고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상처를 받고 온 스미에 대해 영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도움을 구한다. 영두가 스미의 심정을 이해하며 어떻게 격려해 줘야 할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얘기를 해 준다. 그때 영두가 산아에게 했던 얘기들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어쩌면 상처 입은 영두가 상처 입은 스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지 않나 생각도 해본다. 상처 입은 자가 그 마음을 알 듯이, 스미를 도우려는 따뜻한 산하의 마음이 드러나면서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어 무엇보다 마음속에 남는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을 정도로 문장들이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도 마음속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멈칫하며 생각하게 되고, 기록해 놓게 된다. 그리고 문장들 하나하나 명료하면서도 그 감정과 그 심정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논문이 아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 이후에 엄청난 참고자료를 보면서 얼마나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애를 썼는지가 느껴져서 그것만으로도 소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창경궁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장소이자 아픔이 서려 있는 공간 속에 마지막 생존자처럼 살아 있는 창경궁의 온실처럼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비극적인 상황 속에 마지막 생존자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때로는 비극의 역사를 오롯이 가지고 있기에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도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그곳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향연과 빛을 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나왔지만 ‘이해하다’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던 소설이다. 무엇을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할까.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삶은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된 삶이란 우리가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고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해가 될 때 깨달음이 있고 그런 이해를 하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해된 사건만이 나의 깨달음에 머무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이해되지 않은 것들도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개인의 역사든 공동체의 역사든 각각의 역사에 흘러가는 아픔의 상처와 치유는 그 궤를 달리할 수 있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창경궁의 대온실은 창경궁에 유폐된 순종을 위로하기 위해지었다고는 하지만 궁이 온실이 되어야만 했던 슬픔의 역사가 온실에 남아 있다. 비록 슬픔의 역사를 거치며 또한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온실로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주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살아남은, 존재한 자가 또 줄 수 있는 빛의 영역이 있지 않은가 싶다.

상처가 치유된 영두의 30대는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이전의 영두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영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해되지 않은 많은 부분들까지 한 번만이 아니라 한 번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소설이다. 다시 한번 더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 안에 더 많은 생각들을 품게 되지 않을까. 오늘 이 책을 누군가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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