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꼭 읽어야겠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표지 속에 남매의 모습이 정겹기도 했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책을 읽는 동안 입가에서 짓는 웃음부터 허망한 슬픔, 삶의 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할머니의 말투가 머릿속에서 맴돌기까지 했다. 출퇴근하며 읽은 3일간의 전철에서의 책 읽기는 시대를 거스르며 나에게는 또 하나의 마음속의 정원이 되어 주었다.
6살 동구의 가족 이야기
동구의 어린 여동생이 태어나는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 여동생이 네 살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대략 4년간의 이야기.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 그리고 6살 동구에게 생긴 여동생 영주. 다섯 식구가 인왕산 허리 아래 가난한 곳에서 살고 있다. 무역 회사를 다니시는 아버지,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해 구박을 받는 어머니, 평소에도 ‘이 새끼야’를 달고 사는 할머니의 험한 말투와 며느리에 대한 악담을 그렇게나 퍼붓는 할머니 틈에 사실 초등학교 3년이지만 제대로 한글을 읽지 못해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한없이 착한 동구 가족들의 살벌한 이야기이다. 가족들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시대적 배경 또한 어린 서술자인 동구에 비친 것이기에 직접적인 것보다는 간접적인 형태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역사적 흐름이 드러난다.
특히 큰 뼈대가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천사 같은 담임 박영은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선생님은 동구에게는 가장 흠모의 대상이자 삶을 이끄시는 주체로 선생님을 생각하는 동구의 마음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어머니를 불러 얘기하며 머리는 좋은데 읽고 표현하는 것이 안 되는 난독증의 증세를 보이는 동구를 관리해 줄 수 있는 센터로 가보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 동구를 어디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어머니의 잘 부탁한다는 말에 결국 방과 후에 1시간 남아서 공부하기로 한 동구에게 맛있는 거도 사주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한글 공부를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며 동구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그리고는 동구가 학년이 끝날 때쯤 부모님에게 동구가 글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동구에게 칭찬을 부탁하는 편지까지. 박영은 선생님을 4학년 때는 담임으로 뵙지 못하고 결국 한 학기 이후에 사라져 버린 박영은 선생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린 동구에게는 슬픈 소식처럼 데모한다는 얘기, 죽었다는 얘기까지 그런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구의 순수한 마음과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풋풋하게 너무나 잘 그려져 있다. 또한 그렇게 좋아하던 착하고 똑똑한 영주와 감을 따기 위해 목마를 태운 상태로 넘어져 영주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하고 아깐 동구에게 있어서 영주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으리라. 좋아하는 선생님은 사라지고 좋아하는 동생은 죽고 아픈 동구의 이야기를 가슴 아프지만 맛깔스럽게 펼친 작가의 놀라운 필력이 느껴지는 좋은 소설이다.
무엇보다 고부간의 갈등이 잘 그려진 소설로 며느리에게 악담을 퍼붓는 시어머니가 왜 그리도 미운지 그런 시어머니의 악담에 정신 병원으로, 친정으로 가버린 어머니로 인해 집안에는 할머니, 동구, 아버지밖에 없는 상황 속에 풀어가는 동구의 따뜻한 마음, 시골로 할머니와 함께 내려가겠다는 동구의 마음은 글을 읽으면서도 순수한 동구가 정말 빛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런 순수한 마음의 소년이 있을까? 그 소년에게 때로는 말벗이 되어 주고 조언을 해주는 주리 삼촌과 할머니의 좋은 이웃이 되어 준 모실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항아리를 깨고 집을 나갔을 때 그 모든 것을 정리해 준 상구 어머니 등 이웃 주변 사람들의 마음씨 좋게 도와주는 모습까지 350페이지 분량이 되는 꽉꽉 채워진 소설을 읽다 보면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소설이 이래서 재미있구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 편보다는 할머니 편을 들어 어머니를 화나게 한 아버지, 그 아버지로 인해 화가 났지만 어린 영주를 떠나보내며 흘리신 아버지의 눈물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집안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아버지는 참으로 우유부단하고 굉장히 따뜻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 아버지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길지는 않지만 맛깔스러운 단어와 표현으로 소리 내어도 읽음직한 소설의 문체는 읽는 내내 참으로 대단하다 느낄 정도로 잘 읽힌다. 무엇보다 제목 속의 등장하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가 사는 곳, 부잣집 삼층집에 있었던 정원, 동구가 좋아했던 곳으로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동구에게 정원은 삶을 쉴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도 마음속의 정원 같은 곳이 있다. 그곳이 보이는 공간이든 그렇지 않은 공간이든 나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간 속에서 동구는 아마도 아름답게 성장해 가고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에게 ‘영주의 죽음은 허망하면서도 삶이 이렇게 흔들릴 수 있구나’를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방황하고 무기력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존재들로 인해 속상하게 느낀 찰나 영주의 죽음 앞에 나는 무너졌고, 이러다가 죽음에 이르는 큰일이 있다면 공부가 입시가 취업이 무슨 소용인가 살아있다는 존재만으로도 그냥 이 삶을 무사히 지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나의 악하고 약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너의 존재로서 너 스스로의 삶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영주의 존재를 떠나보내는 나도 이렇게 슬픈데, 식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소설 속 박영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아빠도 괴로웠고 희망이 없었던 할머니는 더더욱 슬펐고 우리는 이런 죽음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계속 흘러가는 것이기에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 같다. 삶과 죽음, 가족들 간의 아픔과 기쁨.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들과의 만남과 이별, 좋은 이웃들의 모습까지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느껴지는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좋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동구의 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