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운사이징'
인구과잉이 인류 최대 위협으로 작용할 것임을 알고 실험한 인류 최초의 세포 축소 기술 다운사이징 기술(2,744분의 1 비율로 축소, 180cm->12.9cm)을 개발한 노르웨이 연구소의 요르겐 박사, 이 기술 덕분으로 사람들은 소인이 되고, 소인이 사는 레저랜드로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간다. 현실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집 하나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던 폴과 오드리 부부도 레저랜드로 가려고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결국 가족과 헤어질 수 없었던 아내 오드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결국 폴만 레저랜드에 남게 된다. 이혼도 하고 홀로 외롭게 살던 폴은 그곳에서 베트남 반 체제 인사지만 강제로 작아지는 벌을 받은 녹 란 트란을 만나게 된다. 작업치료사였던 폴은 청소도우미를 하고 있는 녹 란의 의족을 고치려다 의족을 망가뜨리고 그녀를 돕게 된다. 그녀가 거주하던 빈민촌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돕던 폴. 그녀로부터 폴을 구해준다고 폴의 이웃이었던 두샨이 폴이 노르웨이 출장을 가야 한다고 했는데, 녹 란 역시 노르웨이의 요르겐 박사로부터 한 번 오라는 편지를 받았다며 결국 함께 노르웨이에 가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 갔더니 요르겐 박사는 다운사이징한 사람이 인류의 3% 불과하며, 호모사피엔스는 멸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지하에 노아의 방주를 마련하고 다운사이징한 사람들은 인류의 멸망을 피해 아름다운 이곳을 떠나 지하로 떠나게 된다. 폴 역시도 그곳으로 함께 가려고 했지만 가족들이 있고 도울 곳이 있는 빈민촌으로 돌아가겠다는 녹 란의 말을 따라 레저랜드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그녀와 함께 빈민촌의 사람들을 도우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 만족할 만한 것은 없다. 거인이든 소인이든 사람 사는 곳은 여전히 부익부. 빈익빈. 거기에는 아픔도 슬픔도 여전히 가난함도 존재한다. 물론 죽음도 있다. 그렇다면 작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작아지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구과잉의 문제,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축소시킨 다운사이징 기술, 그 기술로 인해 탄생한 소인국에는 커다란 주택과 화려한 생활, 아픔도 없고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렇게 소인이 된 사람은 3%도 안 되고 이곳 또한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나 화려한 레저랜드와 달리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빈민촌은 그야말로 어떤 곳에도 가난하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베트남에서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결국 작아지는 벌을 받게 될 때 오직 살아남은 한 사람. '녹 란' 다리는 꺾이고 레저랜드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폴,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의사가 아닌 회사의 육체적 상담고문, 작업치료사로 성실히 살아가는 주인공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소인을 선택하고 아내와 함께 작아지는 주사를 맞는데 결국 주사를 맞지 않은 아내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되고 홀로 남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은 폴이 다운사이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 작아짐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삶임을 깨닫게 된다.
꼭 작아져야만 할까. 작아진다는 것은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작아졌다고 정말 사람들이 달라질까. 많은 문제들이 해결이 될까? 결국 작아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없음은 여전히 환경의 위험 속에 갇히고 메탄가스로 인해 결국 그들은 더욱더 깊은 지하로 갈 수밖에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정책도, 어떤 뛰어난 기술도 제대로 호응이 되지 않는다면 사장이 되거나 정말 인류의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이란 정말 있기는 한 걸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화 속 가장 주목할 것은 폴과 녹 란이 다운사이징 사회에서 보여준 선한 영향력이다. 녹 란은 자신 역시도 몸이 불편하지만 청소도우미를 하며 빈민촌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아픈 이들을 챙겨준다. 폴 역시도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들을 돕고 결국 마지막에도 여전히 배달을 하며 폴이 배달해 준 음식을 먹는 한 노인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결국 그들이 보여준 선한 영향력이야 말로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사회든지 선한 영향력을 베푸는 자들로 인해 사회는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지향적인 삶 속에서도 그것만이 갖는 문제점은 늘 도사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에 나에게도 다운사이징의 기회가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 마지막 폴이 지하의 노아의 방주를 택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가 놓인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의미 있는 삶이란 단순히 살아남아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변 이웃들과 아픔을 나누며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삶이 아닐까. 대단히 큰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작은 도움을 전하는 것, 친절한 폴의 배달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할아버지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폴을 보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베푸는 삶을 살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