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책을 정리하다 눈에 띈 일본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넘겼는데 오늘 그 책이 다시 눈에 띄었다. 한 번 더 읽어서 그런지 잔잔함이 더욱 오래 느껴진다.
수학의 기호가, 수학적 용어가 이렇게 다가올 수 있을까. 자연수, 소수, 루트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것 같지 않은 그 용어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나이 마흔일곱 살 1975년 사고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박사의 80분. 그 80분의 기억 속에 수학은, 기호는 살아 숨 쉬고 그 기억들이 결코 과하지 않으면서도 애틋하게 슬프게도 다가오는 작품이다. 1992년 예순네 살의 박사와 처음으로 마주한 파출부와 그리고 그 아들 루트. 이들이 펼쳐내는 모습이 결코 과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간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소설이 수학과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지만 또한 책임을 지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미망인인 형수와 그녀를 사랑했던 시동생(박사), 그들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고 사고로 인해 80분의 기억 속에 멈춰버린 시동생을 끝까지 돌보는 미망인의 모습은 애틋하다. 또한 어린 루트를 홀로 키우며 파출부로 살아가고 있는 작품 속의 서술자인 ‘나’가 보여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또한 깊이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쪽으로 흐를 때가 많고 그때 우리가 선택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사람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그 사랑을 어찌 거스를 수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운명처럼 다가온 일들로 인생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사랑으로 인해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지만 대체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란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슬픔을 경험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모두 멋지고 따뜻하다.
80분의 시간만 기억할 뿐, 그 80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 박사와 루트의 만남으로 인해 결국 루트는 수학 선생이 된다. 10살 때 박사를 만난 루트는 박사와의 만남으로 성장하며 22살에 수학 선생이 되었다. 루트에게 있어 박사와의 만남은 그 인생에 가장 귀중한 만남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인생은 만남의 소중함으로 그리고 그 상황에서 진심을 다할 때, 그 삶의 방향은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박사의 사고는 고통이지만 그래서 머물러 있는 그의 인생은 또한 고통이지만 결국 또한 사람에게 귀한 삶의 힘을 주었다. 우리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지만 그 순간 그 상황에서 우리는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인생이다. 박사가 숫자를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연발하듯 그렇게 수학을 사랑하는 것을 볼 때면, 혹시라도 내 인생의 사고가 났을 때 과연 내가 붙잡을 것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조차 수학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게 하는 소설은 아닐까
소설 속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박사가 나의 아들을 만났을 때 아들의 정수리가 루트 기호처럼 평평하다면서 루트라고 불렀는데, 그 아들에게 루트를 말하면서 박사가 한 말이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참으로 이런 기호야 말로 이런 사람이야 말로 꼭 되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품는 것, 특히나 나와 맞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이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기에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당장 나와 친밀한 사람들조차도 관대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다시 한번 박사가 한 말을 기억하며 누구든 꺼려하지 않고 보듬을 수 있는 관대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작품에 나온 다양한 기호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수없이 많은 상황 속에 너무나 멋지게 쓰인 기호들과 수식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처럼 나는 어떤 수식을 사랑할까? 따뜻하면서도 뛰어난 발상으로 감동을 준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