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by 김승희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가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그런 기억이란 어떤 기억일까?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에서의 한서윤(신지아)의 기억이 바로 그런 기억이 아닐까?


사랑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는 것은 기쁨이지만 또한 슬픔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 기억의 당사자를 더 이상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다면 그 기억이란 더욱 큰 슬픔일 수 있다. 그 기억 속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크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리움의 대상이 남긴 마음속의 추억을 어떻게 담아내냐는 것이다. 그리움을 새록새록 추억하며,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고 그 사랑의 기억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지면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자 행복이 아닐까?


교통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서윤은 사고 전의 기억은 나지만 사고 이후에는 잠을 자고 나면 그 기억이 사라진다. 그래서 서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에 써둔 일기를 보며 기억하고, 자신이 써놓은 것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기에 서윤은 누군가와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그런 그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 학교 선생님, 그리고 절친인 지민(조유정)이다. 그런 서윤이가 자신에게 다가와 ‘나랑 사귈래?’라고 말한 김재원(추영우)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은 정말 관계를 맺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사귐의 조건 중 하나도 진짜 날 좋아하지 말 것이었다. 물론 재원 역시도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해서 고백한 것은 아니고 자기 짝꿍이 매일 친구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해서 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재원의 말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만남은 이어지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메모하는 서윤이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재원은 싫지 않다. 그런 재원이 첫 데이트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서윤이가 재원이를 알지 못한다며 급작스럽게 차에서 내리고 난 후 결국 서윤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원은 그런 서윤이에게 “너랑 노는 게 재밌거든. 그래서,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너랑, 나랑, 내일의 너를 같이 속이자”며 “내일의 너도 내가 즐겁게 해 줄게.”라는 말을 한다. 그 이후 그들은 자전거도 타고, 아쿠아리움도 다니고, 불꽃 축제며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나누고 그 매일매일의 기억을 노트북에 수첩에 영상에 서윤은 기록한다. 그런데 그들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추억은 결국 심장병을 앓고 있는 재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이 난다.(재원의 죽음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재원이 운동을 싫어하고 뛰고 난 후 가슴을 쥐어짜는 장면에서 아 병이 있었구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죽기 전에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면 서윤이가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자신의 기억을 지워주기를 지민에게 부탁한다. 그러기에 서윤은 재원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재원의 모습을 그리던 그 기억이 남아서인지 재원을 스케치북에 그린다. 그리고 친구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자꾸 그리게 된다고 익숙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지민이 서윤의 집에 갔을 때 그녀의 방을 가득 채운 재원의 그림을 보고 지민은 그동안의 일을 말하며 사과한다. 그 말을 듣고 영상을 보며 지금까지의 일기를 보던 서윤은 재원과 갔던 추억 속의 그 바다를 보며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아픔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조금씩 널 잊어가는 거라면 난 조금씩 너를 기억해 내볼게."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서윤과 재원이 즐겁게 만들어가는 풋풋한 장면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비극적인 아픔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밝고 희망적이며 영화 제목처럼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게 든다. 특히나 재원이 죽고 재원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 속에 서윤만 남고 재원이 사라지는 장면은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가슴이 저려왔다. ‘사랑의 기억을 저렇게 도려낸다고 그 기억이 사라질까?’ 분명한 것은 사랑의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어제의 기억을 잊어버린 서윤에게도 그 사랑의 기억은 남아서 익숙하게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린다는 것, 그 사랑의 감각은 되살아남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사랑의 기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모두 영원하지 않다.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순간이지만 그 사랑의 가치는 영원하고 그 사랑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 속에 우리의 감각 속에 영원히 살아남는다. 그러기에 짧은 사랑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사랑의 가치는 마음속에 기억 속에 영원히 숨 쉴 것이며 그것은 슬픔이고 아픔이지만 또한 사랑했던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기쁨이자 행복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억을 사랑의 따스함으로 채웠으면 한다. 사랑으로 채워진 따스한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서 우리를 살게 할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온몸에 새겨두기를 소망하는 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일본 영화(2022년)도 있으니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영화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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