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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여름이었다.

순수와 염세, 그 사이

by 가생이

교직에서 연차가 생기다 보니,

학생들과 비교하여 초임일 때에 비해,

저 스스로 점차 염세적으로 변한다는 걸 느낍니다.

그나마 저를 변치 않게 붙잡아 주는 존재들이,

아이들입니다. 저는 점차 늙어가지만,

가르쳐야 하고 제가 상대하는 존재인,

아이들은 끽해봐야 8살과 13살 사이니까요.

제가 햇병아리교사였을 때나, 제가 환갑에 가까워지더라도 아이들은 변치 않고 항상 8살과 13살 사이인 아이들 뿐이니까요.


오늘 화재대피 훈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학교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협조하는 소방관분들에 따라 여러 상황을 만들어 가이드나 매뉴얼을 따릅니다.


오늘은 훈련하는 시간에 햇살도 따갑고, 무더웠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니, 소방관분들이 시원한 물줄기를 하늘을 향해 쏴주더군요.

그 물줄기를 향해 뛰어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습니다.


선생님들은 물줄기를 피하고,

학생들은 물줄기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참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러 어린아이들은 한여름에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등, 하교를 하기도 합니다.

비를 맞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하고, 오히려 시원해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담임선생님이나 엄마들의 마음을 무시한 채 말이죠. 하하


저는 20대 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감성에 젖어들곤 했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오고, 차로 출퇴근을 하고 나면서부터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생각이 바뀌더군요.

그리고 주변 동년배들도 그렇게 생각하니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하늘에서 내리는 것들을 점차 멀리하고 있는것 같네요.

햇살을 피하려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눈과 비를 꺼려하게 되니까요.

순수에서 멀어지고 있는 저 조차를 당연한 현상으로 생각하게 되니,

참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과 같은 아이들 모습을 보면

반성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훈육해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교사는 순수해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해야 함을요.


오늘도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

어딘가 비워진 제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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