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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쉽게 읽기 4) 국가, 민족, 국민국가

윤석열의 국민국가

by 김광민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석열은 2024. 12. 3. 22시 23분 TV 생중계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핵심 사유는 ‘반국가 세력의 척결’이었다. 곧바로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발표되고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무장 진입하였다. 다행히 국회는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윤석열은 포고령 발표 5시간 30분 만인 12월 4일 5시 4분 국무총리실을 통해 국무회의의 계엄 해제안 의결을 발표했다.


tempImagea2mdlK.heic MBC 뉴스 화면 캡쳐


이렇게 윤석열은 ‘반국가 세력’의 척결을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그는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204명의 찬성으로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계엄 4달 만인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 되면서 대통령직을 박탈당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이후 40년 이상 성숙해 온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설사 계엄을 발생한다 해도 성공할 것이라 믿은 이는 더더욱 적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단행했고 5시간 30분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풍차를 향해 돌진한 돈키호테와 같이 ‘반국각 세력 척결’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대통령의 무모한 만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내세웠던 ‘반국가 세력의 척결’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많은 고민거리를 남겨 주었다.


국민국가의 균열을 이용한 국민의 분열


윤석열의 ‘반국가 세력’은 국민국가(國民國家, Nation-State)를 전제로 한다. 국민국가는 문화적·혈연적 공동체인 '민족(Nation)'의 경계와 정치적·법적 공동체인 '국가(State)'의 경계가 일치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물론 혈연, 출신 지역, 조상, 언어, 전통 등의 요소로 구성되는 단일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인 에스닉 그룹(ethnic group)에 기반한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가 아닌 특정 국가의 국적(citizenship)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시민 내셔널리즘(civic nationalism)을 지칭하는 때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의 성격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전형적인 '국민국가'의 모델로 여겨지고는 한다. 우리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단군신화에 기반한 강력한 민족적 동질성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수천 년간 한반도에서 단일한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는 역사의식이 더해진 결과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에는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국민국가라는 대한민국의 모델은 내, 외부에서 심각한 균열을 맞이하고 있다. 우선 내부적 균열은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다문화 사회가 그것이다.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자의 증가는 대한민국의 ‘한민족 혈통’이라는 신화를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 즉 ‘한민족 혈통’이 아닌 '국민'을 다수 포함하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로의 진화는 민족과 국민이 동일하다는 신념에 균열을 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국민국가 모델이 내부에서 균열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외부적 균열은 남북 분단이다. 이는 하나의 '민족(Nation)'이 두 개의 '국가(State)'로 분단된 상황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자 자신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 즉 '한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국민국가'라고 주장하며 체제 경쟁을 벌여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에 사는 북한 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러한 관점은 북한 역시 다르지 않다.


‘반국가 세력’은 이러한 ‘분단’이라는 외부적 균열을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논란을 폭발시킨다. 윤석열이 “반국가 세력의 척결”을 외칠 때 대한민국 국민은 분단된 국민국가의 모순 속에서 개인이 어떤 '국가'에 충성하고 어떤 '민족'의 미래를 지향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윤석열은 "당신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서 현존하는 국민국가인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에 충성해야 한다. 하지만 반국가 세력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우리 민족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또 다른 국가(북한)를 추종하거나, 그들의 방식으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려 한다. 이는 당신이 속한 국민국가에 대한 배신이다."고 외친 것이다.


결국 '반국가 세력' 논쟁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된 모순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충성심의 충돌'이다. 한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현실의 국민국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서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것은 '반국가 세력‘이 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민족'의 개념을 더 우선시하며,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민족 전체가 하나 되는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이념적 지향점이 북한과 가까워질 경우, 앞선 입장에서는 이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게 된다.


국민의 분열을 이용한 국민의 배제


하지만 윤석열의 ’반국가 세력‘은 ’국민국가의 분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본래 국민국가에서 국민은 해당 국가의 국적(citizenship)을 가진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법적, 포괄적 개념이다. 하지만 '반국가 세력' 논리는 여기에 암묵적인 조건(이념)을 추가한다.


"진정한 국민이라면 마땅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긍정하고 수호해야 한다."


이 논리 안에서 '국민'은 단순히 국적 소유자가 아니라, 국가의 핵심 이념(자유민주주의)에 동의하고 충성하는 사람으로 그 의미가 축소된다. 국가의 체제에 반대하거나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은 국적은 유지하고 있을지언정, '진정한 국민'의 자격에는 미달하는 존재, 즉 '자격 미달의 국민'으로 규정된다.


윤석열은 '진정한 국민'의 범주에서 밀려난 이들을 단순히 '의견이 다른 국민'이 아닌,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Internal Enemy)'으로 몰아세웠다. '반국가 세력'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윤석열에 의해 내부의 적, 즉 ’반국가 세력‘으로 지목된 이들은 외부의 적(북한)과 연계되어 있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내부에서부터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위험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getImage.do?size=700&fileSeq=FILE_0000051244-2707 홍성담 화의의 '5얼-11-혈루-6',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시민을 공산세력(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어 학살했다.


윤석열의 계엄은 "'내부의 적'이 된 '자격 미달의 국민'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국가의 생존을 위해, '진정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기본권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무력화해야 한다."는 선포였다.


즉, 윤석열의 계엄은 특정 국민 집단을 법의 보호를 받는 동등한 주권자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위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였다. 국적을 박탈하는 법적 배제를 위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권리적 배제'인 셈이다.


국민국가의 분열을 이용한 국민의 배제를 멈추려면


결론적으로, 윤석열의 '반국가 세력을 이유로 한 계엄' 주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비전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윤석열과 그의 내란을 동조한 세력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이념적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체제에 위협이 되는 반대 세력은 '국민'의 이름으로 과감히 배제하고 축출해야 한다는 배타적·동질적 국민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반국가 세력 척결' 논리는 정확히 이 시각에 기반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포용적·다원적 국민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민주주의 국가란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공존하며, 폭력적 수단이 아닌 이상 아무리 급진적인 주장이라도 토론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 시각에서 '반국가 세력'이라는 규정 자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험한 딱지 붙이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윤석열이 '반국가 세력의 척결'을 계엄의 사유로 내세운 것은, 국가의 위기를 명분으로 '국민'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축소하고, 특정 이념을 기준으로 국민을 '우리'와 '적'으로 나누어 일부를 배제하려는 위험한 논리다. 국민국가의 분열을 이용해 특정 국민을 배제하려다 국민에 의해 쫓겨난 윤석열이라는 빌런은 언제든 또다시 분열의 틈을 파고들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또 다른 빌런을 막아내고자 한다면 다문화 사회 대한민국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평화 체계를 확립하는, 국민국가의 분열을 메우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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