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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쉽게읽기 12) 이원집정부제

다양한 특성, 다양한 이름의 통치 형태

by 김광민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는 이원행정부제(二元行政府制, dual executive system), 반(준)대통령제(半(準)大統領制, semi-presidential system), 쌍두정부제(雙頭政府制, two headed executive), 총리형 대통령제(總理型大統領制, premier presidential system), 분권형 대통령제 (分權型大統領制, Decentralized Presidential Syste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이는 외형상 미국의 대통령제와 유사하지만, 부통령이 없고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가 있다는 점에서 내각제에 가까운 복합적인 성격의 이원집정부제의 특징을 어느 하나의 이름만으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는 사람의 관점, 즉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이 사용되어 온 것이다.


다양한 특성에 따른 다양한 이름


‘이원집정부제’는 행정부의 '구조'를 강조한 명칭이다. 행정부(집행부)가 두 개의 중심축(二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구조적 특징을 가장 중립적으로 설명한다. 즉,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의 신임을 받는 총리와 내각이라는 두 주체가 함께 행정부를 이끌어간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다.


‘반(半)대통령제’는 제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이원집정부제가 '절반(半)은 대통령제'의 성격을 띤다는 의미다. 대통령제의 핵심 요소인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의원내각제의 핵심 요소인 '의회에 책임지는 총리'가 공존하기 때문에 '완전한 대통령제'는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대통령제를 기준으로 삼아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쌍두정부제’는 강조점: '지도력' 형태에 초점을 맞춘 명칭이다. '머리가 두개인(雙頭) 정부'라는 뜻으로,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명칭이다. 대통령과 총리라는 두 명의 리더가 정부를 이끌어간다는 지도력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언론이나 일반 대중이 시스템의 특징을 쉽게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제도의 '목표와 기능'에 중점을 둔다. 주로 대한민국과같이 강력한 대통령제를 가진 국가에서 정치 개혁을 논의할 때 사용된다.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이 가진 과도한 권력을 총리에게 나누어 주어 권력을 분산(分權)시키자는 개혁의 목표와 이상을 담고 있다. 즉, 제도의 구조나 성격보다는 '대통령의 권력 약화'라는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성이 담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의 사례를 통해 별도로 살펴보겠다.


이원집정부제의 탄생


이원집정부제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Weimar Republic)과 핀란드(Finland)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탄생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인 바이마르의 헌법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며 국가 비상사태 시 막강한 긴급명령권을 가지는 대통령을 두는 동시에, 의회(Reichstag)의 신임을 받는 총리와 내각을 두었다. 이는 이원집정부제의 첫 번째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대통령과 의회 간의 극심한 대립과 정치적 불안정은 결국 나치 히틀러의 집권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핀란드는 1919년 헌법을 통해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과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함께 이원집정부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국가로 꼽히며 현재까지 이원집정부제를 유지하고 있다.


png-clipart-coat-of-arms-of-germany-weimar-republic-german-empire-holy-roman-empire-ray-of-light-emblem-logo.png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원집정부제를 최초로 도입한 사례로 알려져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국장


다만 현대적 모델의 이원집정부제 등장은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원집정부제’라는 용어 역시 프랑스의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Maurice Duverger)가 바로 이 프랑스 제5공화국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


따라서 프랑스가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제도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도입은 학자들의 이상적인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국가 분열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라는 한 인물의 강력한 의지가 만들어 낸 극적인 산물이었다.


정치적 혼란이 불러온 이원집정부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프랑스 제4공화국은 전형적인 의원내각제 국가였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프랑스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수많은 정당이 난립하여 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정당이 등장하지 못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정당이 이념과 정책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손을 잡고 연립정부(연정)를 구성하는 정국의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불안정한 연정은 작은 정치적 갈등에도 쉽게 붕괴했다. 12년 동안 무려 20개가 넘는 내각이 들어서고 무너졌으며, 심지어 단 하루 만에 붕괴한 내각도 있었다.


이러한 만성적인 정치 불안으로 인해 정부는 지도력을 상실했고,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무기력한 제4공화국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은 '알제리 전쟁'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가 독립을 요구하며 전쟁을 벌이자, 프랑스 사회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1958년 5월, 알제리에 주둔하던 프랑스 군부의 강경파 장군들이 파리 본국의 유약한 정책에 반발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프랑스 본토와 알제리 주둔군 사이에 군사적 충돌, 즉 내전 발발 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제4공화국 정부는 이 상황을 수습할 아무런 힘도, 권위도 없었다. 국가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 정치권과 국민들은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구한 전쟁 영웅이자, 제4공화국 체제에 반대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던 샤를 드골이었다.


드골의 강력한 지도력이 만들어낸 제도적 결과


국민적 신망이 두터웠던 드골은 이 위기를 수습할 유일한 인물로 여겨졌다. 절박해진 국회는 드골에게 총리직을 맡아 국정을 수습해달라고 요청했다. 드골은 이 요청을 수락했지만, 한 가지 강력한 조건을 내걸었다. 바로 "무기력한 제4공화국을 끝내고, 강력한 국가 지도력을 보장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 수 있는 전권(全權)을 나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국회는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총리가 된 드골은 곧바로 새로운 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의회의 '정치 놀음'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하고 안정적인 대통령을 만들되,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대통령제의 장점(안정성)과 내각제의 장점(책임성)을 결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은 이원집정부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담고 있었다.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민투표 부의권, 그리고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긴급대권(헌법 제16조)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동시에 총리와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지며, 의회는 내각 불신임 결의를 통해 내각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드골은 1962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선출 방식을 의원들의 간선제에서 국민이 직접 뽑는 '국민 직선제'로 바꾸는 개헌을 단행했다. 이로써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와는 별개로 국민 전체로부터 직접 정통성을 부여받는,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의원내각제의 만성적인 불안정성과 식민지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샤를 드골이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주도하여 만든 '맞춤형 해결책'이었다. 이는 위기 시에는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력으로 국가를 이끌고, 평상시에는 총리가 의회와 협력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독창적인 시스템으로, 이후 60년 넘게 프랑스의 정치적 안정을 이끄는 기반이 되었다.


이원집정부제와 다른 책임 총리제


앞서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의 그것과 비교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점을 살펴봤다. 이러한 이유에서 흔히 한국의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책임 총리제가 거론되고는 한다. 책임 총리제는 언 듯 이원집정부제로 보이기도 하지만 두 제도 간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20250528514653.jpg DJP 연합은 책임 총리제의 시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 사진=연합뉴스


두 제도는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과 실행 방식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책임 총리제는 헌법 개정 없이 현행 대통령제의 틀 안에서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이원집정부제는 헌법을 바꾸어 정부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책임 총리제는 새로운 정부 형태가 아니라, 현행 대통령제 안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총리에게 자발적으로 대폭 위임하고, 그 권한 행사를 보장해 주는 국정 운영 방식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外治)와 국가의 큰 방향에 집중하고, 국내 정책(내치, 內治)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은 총리에게 맡기는 것이다.


책임 총리제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약속'에 기반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그 권한이 축소되거나 철회될 수 있다. 즉, 강력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제도인 것이다.


책임총리제, 정치적 약속


정리하면 책임 총리제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CEO(대통령)가 유능한 전문경영인(총리)에게 '앞으로 회사 내부 살림은 당신이 알아서 다 하시오. 나는 큰 방향만 보겠소'라고 구두로 약속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CEO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그 약속을 깨고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원집정부제는 주주(국민)가 선출한 이사회 의장(대통령)과 이사회(국회)가 선출한 전문경영인(총리)이 회사 정관(헌법)에 따라 '의장은 대외 업무를, CEO는 내부 경영을 책임진다'고 명시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것과 같다. 이는 개인의 약속이 아닌, 바꿀 수 없는 회사의 규칙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책임 총리제는 '정치적 약속'에 가깝고, 이원집정부제는 '제도적 보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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