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을 수렴하고, 여론에 평가받는 집단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시민의 의사가 여론이 수렴되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이다. 여론은 개별 시민의 생각과 바람에서 시작한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국공립 어린이집이 부족하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건강이 걱정된다". 이는 어쩌면 매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시민의 '의사'는 아직 흩어져 있는 목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비슷한 '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개인의 문제는 사회의 공통된 관심사, 즉 '여론'으로 발전한다.
언론과 미디어는 이런 문제들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공론화한다. 정당(political party)이나 시민단체, 이익집단(interest & civic group)은 토론회나 캠페인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직한다. SNS, 커뮤니티, 집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이 퍼져나가며 더 큰 목소리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어린이집 부족'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보육 환경 개선'이라는 사회적 여론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당은 이러한 여론을 '공약'이라는 구체적인 정책 약속으로 만들어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제시합니다. 시민들은 '보육 환경 개선'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후보나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그들의 의사를 가장 강력하게 행사한다.
일련의 정치 과정을 통해 전달된 여론은 국가기관에 의해 실질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진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정부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법안'을 만들고, 관련 예산을 편성해 공약을 실행에 옮긴다. 정부는 확정된 법과 예산에 따라 실제로 어린이집을 짓고, 보육교사 처우를 개선하는 등 정책을 집행한다.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행된 정책에 대해 시민들은 다시 만족하거나 불만을 느끼며 새로운 '의사'를 표출한다. 이는 또 다른 여론을 형성하여 기존 정책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 이 끊임없는 순환과 피드백이 바로 건강한 대의민주주의의 모습이자 '정치'의 본질이다.
정당, 권력 획득을 목표로 하는 집단
정당은 정치권력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이익 표출(interest articulation)과 이익집약(interest aggregation) 기능이다. 이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핵심 과정이다. 쉽게 말해, 흩어진 목소리를 모아 의미 있는 정책 제안으로 다듬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익표출이란 시민이나 각종 단체가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를 정치 체제에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 과정의 가장 첫 단계로, 사회에 어떤 문제와 요구가 있는지를 알리는 과정이다. 주로 개별 시민, 이익집단(의사협회, 농민회, 노동조합 등), 시민단체(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등이 중심이 되어 목소리를 낸다.
정당 역시 이익표출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이러한 표출된 이익들을 듣고 수렴하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이나 당직자들이 간담회를 통해 주민들의 민원을 듣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익집약은 이렇게 표출된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이익들을 모아 우선순위를 정하고, 다듬어서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종합하는 과정이다. 이 기능은 주로 정당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부동산 정책의 끊임없는 순환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은 정당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하고, 여론이 정책 실행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2000년대 초반 이제 막 외환위기 극복한 대한민국은 경제 전체를 살리기 위한 일종의 '응급 처방'으로 저금리 기조를 도입했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고 원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20%가 넘는 초고금리 정책을 썼는데, 이는 경제를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얼어붙은 경제'를 녹이기 위해 반대로 금리를 대폭 낮춘 것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들은 줄도산과 대량 해고 사태로 실업률이 치솟은 상태였다. 당연히 가계는 지갑을 닫았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투자를 완전히 중단했다.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를 되살리는 것이 당시 정부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시중에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를 유도함으로써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2002년 카드 대란 사태도 이러한 내수 부양책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저금리 정책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은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만약 고금리가 계속됐다면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의 대규모 파산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한편, 살아남은 기업들이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줘야 했다. 저금리 정책은 기업들의 이자 상환 부담을 직접적으로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부채를 줄이고 사업 구조를 재편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때마침 찾아온 국제 경제도 저금리 기조에 영향을 미쳤다. 김대중 정부는 기존의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IT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벤처 기업이 탄생하려면 값싼 자금 조달이 필요했다. 저금리는 벤처 기업들이 은행이나 투자자로부터 쉽게 돈을 빌려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여기에 2000년 미국 '닷컴 버블' 붕괴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기 침체 방지를 위한 금리인하 또한 우리나라의 저금리를 유도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도 해외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적인 환경 또한 제공해 주었다.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 부동산 과열
이처럼 2000년대 초반의 저금리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책이었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한국만 고금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막대한 자금이 생산적인 투자 외에 부동산과 같은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과열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만들어 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집값의 급격한 상승은 자산 격차의 증대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불패 신화",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와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부동산 투기로 버는 불로소득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부에 과세 제도를 뜯어고쳐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막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나온 노무현 후보는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고 선언하면서, 부동산 가격 안정과 세금 형평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부동산에 대한 여론을 집약해 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는 2005년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높은 세율의 세금을 매기는 '종부세'를 도입했다. 집을 여러 채 가졌거나 비싼 집을 가진 사람한테 보유세를 무겁게 물림으로써 투기 심리를 억누르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외에도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매기고 주택담보대출 규제(LTV, DTI)를 강화하는 등 강력한 정책들이 계속 발표되었다.
하지만 종부세는 곧 엄청난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야권과 언론은 종부세를 '세금 폭탄'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중산층과 1주택자에게까지 세금 부담이 과도하게 전가된다는 뜬소문으로까지 번지며 국민들이 불안감을 자극했다. 결국 여론은 종부세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강력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이는 "정책이 시장 안정에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부동산 과열을 잡지도 못하면서 과도하게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와 진보 진영에서는 종부세가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필요한 개혁 조치라고 옹호했지만, 그 소리는 미약했다.
결국 종부세로 대표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과도한 부동산 세금 완화"하겠다며 "종부세를 대폭 수정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선거 결과,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성격이 매우 컸다.
정책에 대한 여론의 평가, 정책의 전환
부동산 이슈 속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공약대로 종부세의 세율을 낮추고 과세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등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상당 부분 되돌렸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종부세 사례는 '부동산 안정'이라는 여론에 부응해 정책이 만들어졌지만, 그 정책이 다시 '세금 부담'이라는 새로운 여론을 맞이해야 했다. 결국 여론은 다음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물론 부동산 과열이 계속된 것을 정책의 실패로만 평가할 수 있는지, 종부세가 세금폭탄이라는 주장이 사실인지 등 정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부분은 많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여론의 형편없는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여론에 따른 정책결정과 그에 대한 여론의 평가에 따라 다시 정책 방향이 전환되는 순환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사례다.
여론의 선택을 받지 못한 부동산 정책, 끊임없는 순환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 안정화를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기 부양을 위한 수요창출을 내걸었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 “빚내서 집 사라”는 메시지로 읽었다. 당연히 두 보수 정부에서도 부동산 시장은 안정되지 못했다.
연이은 보수 정부에 이어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 근절과 집값 안정'이라는 선한 목표를 내걸었다.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돕겠다는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정책이 옳다고 하더라도 효과로 입증되지 못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한 부동산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규제는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다”는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무주택자와 젊은 층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에 나서면서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양도세 중과로 인해 다주택자들은 매물을 팔기보다는 증여를 택하거나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는 시장의 공급을 감소시켜 희소성을 높였고,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임대차 3법은 기존 세입자에게는 일시적인 안정감을 주었을지 모르나, 신규 계약에서는 집주인들이 4년 치 인상분을 한꺼번에 반영하면서 전셋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자 전세 물건 자체가 사라지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며 전세 난민을 양산했다.
결과적으로, 수요를 억제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공급을 줄이고 잠재 수요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낳으며 역대 최고 수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신뢰를 잃은 정책, 등 돌린 여론
국민들이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에 등을 돌린 것은 정책의 '의도'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이 정반대로 반응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지며, 전셋집마저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의 고통'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이 곧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반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기 세력과의 전쟁'이라는 정책의 명분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효과로 입증되지 못한 정책은 결국 선한 의도마저 퇴색시키며,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불신만 깊게 새기는 결과를 낳았다.
결론적으로 민주당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책의 효과가 의도를 배반했을 때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쉽게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정책의 방향성이 옳다는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시장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예측하여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다시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꺼내든 이재명 정부
민주당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짧은 기간을 거쳐 2025년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추진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달리 세금 규제나 공급 확대보다는 대출 규제에 집중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신규 주택 구매 대출을 금지해 전세를 끼고 투자 용 부동산을 구입하는 갭투자를 사실상 금지했다. 더 나아가 규제구역 내 주택 구매 시 대출한도를 6억으로 제한해, 사실상 자기자본 없이 투기 용 부동산 구매를 제한했다. 같은 맥락에서 실거주 의무를 강화해 주택담보대출 이용 시 6개월 내 실거주 하지 않을 때 대출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LTV 비율을 70%로 하향 조정하고 소유권 이전 조건의 전세자금대출을 금지하는 등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자금줄을 조였다.
부동산 정책의 성패에 따라 정권이 변동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5.5%에 달한다. 이는 금융자산(예금, 주식, 보험 등)의 비중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동산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많은 국민들이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정권의 유지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 초기 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역대 가장 강력한 조치라 평가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노무현, 문재인 두 민주당 정부의 경험을 통해 부동산 정책의 성패가 정권 유지에 핵심 요소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집값 문제라는 민감한 여론이 이재명 정부에서 어떻게 수렴되어 어떠한 모습으로 실현되는지, 그리고 다시 여론에 어떻게 평가되는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하는 정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