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양성의 성공 이재명, 실패 윤석열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정당이 수행하는 주용 기능의 다른 하나는 정치적 충원이다. 각각의 정당은 각종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 등 선출 과정을 통해 그들을 대표한 후보자를 선출한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 후보가 된 이들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정치 엘리트로 성장한다. 공천과 선거 그리고 당선을 통해 충원된 정치 엘리트들은 지방 또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 받는다. 이는 그 자체로 정치 지도자 양성 과정이기도 하다.
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그리고 야당의 당수)는 대부분 긴 시간 동안 정당과 내각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경험하며 역량을 키워온 이들이다. 대통령제에서도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의회 정치나 지방정치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았고 그 역할에 대한 평가를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치적 경험이 거의 전무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돌풍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당을 통한 정치 지도자의 육성은 이와 같은 정치적 아웃사이더의 등장 가능성을 낮추고 예측 가능한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한편, 정당 정치가 발달한 서구 국가에서는 정당이 당 차원에서 젊은 당원, 지지자들에게 정치 교육과 리더십 훈련, 정책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교육을 시킴으로써 차기 지도자를 육성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당의 인재 양성은 인재 육성 프로그램, 당직자 등 내부 인재 발굴, 경선을 통한 신인 발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하에서는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대비되는 사례를 통해 최근 그리고 앞으로의 인재 양성 발굴이 어떠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성남시장에서 대통령까지, 인재 영입의 방향 제시
2025년 6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민주당에 입당하여 여러 차례의 낙선 후 2010년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통령에까지 이른 그의 이력은 정당의 '정치 엘리트 발굴 및 검증 기능'을 설명하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사례다. 이재명의 사례는 과거의 중앙당 중심, 하향식 엘리트 육성 방식과 달리, '비주류 아웃사이더'가 정당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최상층부로 진입하는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정치 엘리트로 성장하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인재 발굴 단계’다. 전통적으로 정당은 중앙에서 잠재력 있는 인재를 발탁해 당직을 맡기거나 전략적으로 공천하며 엘리트로 키워나간다. 하지만 이재명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변호사로서 당내 주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경선 시스템을 통한 정치 엘리트 등용문
그가 주류 정치에 진입할 수 있었던 첫 관문은 정당의 '공천' 시스템이었다.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당)이 성남시를 경선 지역으로 선정하였고, 이재명이 이 기회를 통해 당의 공식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는 정당이 중앙에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 단위 활동가에게도 제도권 정치로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은 마련해주고 있음을 뜻한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재명은 '부채 청산', '청년배당', '무상교복' 등 파격적인 정책을 성공시키며 '유능한 행정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시기는 그가 중앙 정치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치적 브랜드(실행력, 개혁성)와 정책적 자산을 쌓는 중요한 인큐베이팅 기간이었다. 정당은 그에게 '성남시장'이라는 공적 무대를 제공했고, 그는 그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다음은 ‘육성 및 경쟁’ 단계다. 성남에서의 성공은 그를 지역 정치인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대한민국 최대 광역단체장인 경기도지사 도전은 그의 정치적 시험대였다. 정당은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기 위한 '경선'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장을 열었다. 그는 당내 다른 유력 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자신의 대중적 지지와 정치적 힘을 입증해야 했다.
치열한 경선을 통한 인적자원의 검증
이 과정은 후보의 정책, 비전, 위기관리 능력 등을 유권자와 당원들에게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필터링' 기능을 수행한다. 경선 승리는 그가 단순히 성남시를 잘 이끈 것을 넘어, 더 큰 조직과 예산을 운영할 능력이 있음을 당과 대중에게 공인받는 효과를 낳았다.
경기도지사로서 이재명은 계곡 불법 시설물 철거, 기본소득, 수술실 CCTV 등 자신의 정책 브랜드를 경기도 전역으로 확장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이는 그가 1,300만 인구를 책임지는 광역단체장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대선주자로서의 자격과 무게감을 스스로 증명한 과정이었다. 정당은 그에게 더 큰 스케일의 검증 무대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발굴의 완성’이다. 경기도지사직의 성공적인 수행은 그를 유력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정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최종 관문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이재명 후보가 당의 주류 세력이 지지하던 이낙연 후보와 맞붙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처였다.
정치 엘리트의 검증과 성장의 플랫폼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는 '비주류 아웃사이더'에서 당을 대표하는 '공식 대선 후보'로 전환되었다. 이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직접적인 선택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그의 리더십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과정이었다.
정당은 경선을 통해 '누가 가장 본선 경쟁력이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당의 모든 조직과 자원을 후보에게 집중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례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엘리트 발굴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날 정당은 더 이상 특정 엘리트를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Platform)' 역할을 한다. 이재명의 사례에서 경선(Primary) 제도는 당원과 대중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스스로를 증명하며 상위 단계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상향식(Bottom-up) 검증 시스템'으로 기능했다. 이재명과 같은 비주류 인물이 최상층부로 올라올 수 있는 시스템은 정당이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시대정신과 민심을 반영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수혈받아 역동성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는 원동력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사례는 개인의 능력과 대중적 인기가 정당이라는 제도적 틀과 만나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결국 한 정당의 최고 리더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손쉬운 명망가 영입, 인재 육성의 실패 사례 윤석열
윤석열은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년 반 만인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대통령직이 정지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취임 3년에 만에 대통령직을 잃게 되었다.
12.3 군사 쿠데타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절대적 오점을 남기고 탄핵당한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과정은 정당의 전통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이 실패하고, '외부 영입'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정당 시스템의 실패'로 규정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검증 시스템'의 실종이다. 윤석열을 영입한 국민의힘은 그의 정치력과 국정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당의 인재 양성 시스템은 단순히 사람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후보의 자질, 위기관리 능력, 소통 및 협상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검증의 포기, 윤석열의 영입
하지만 윤석열은 검찰총장으로서 특정 분야(수사 및 사법)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았을지언정 국정운영 능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히려 검찰 경력은 위계적인 조직 내에서의 경험으로 국정운영의 필수적인 타협, 설득, 갈등 조정, 의회와의 협력 등 '정치력'은 전혀 검증된 바가 없었다. 정당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초선 의원, 상임위원장, 당 대표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이러한 정치력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검증받았어야 했다.
정당은 당내 경선, 정책 토론회,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후보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촘촘하게 검증한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힘은 오로지 문재인에 대한 반대, 즉 '반문(反文) 정서'라는 단일 동력에만 의존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제1야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윤석열의 일시적인 높은 지지율에 편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후보의 국정운영 준비 상태를 심도 있게 검증하는 과정을 사실상 생략한 것이었다. 이는 마치 최고의 외과 의사에게 병원 전체의 경영을 맡기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한 셈입니다. 수술 실력과 병원 경영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수술을 잘한다고 병원 경영 능력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포기, 인재 양성
다음은 '인재 양성'의 포기 단계다. 정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당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인재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키워내, 당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부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직행시키는 것은, 수십 년간 당에 헌신하며 차근차근 성장해 온 내부 정치인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는 당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고생해서 성장해봤자 결국 밖에서 인기 있는 사람을 데려온다"는 패배감을 심어준다. 이는 장기적으로 당의 인재 풀이 고갈되고 내부 경쟁력이 약화되는 원인으로 작동될 것이다.
내부에서 성장한 리더는 당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며, 당직자 및 의원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반면, 외부에서 영입된 리더는 당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의 시스템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측근에 의존해 국정을 운영할 위험성으로 이어진다. 결국 대통령과 집권여당 간의 엇박자나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실제로 윤석열은 집권여당인 국민의 힘을 마치 자신의 사당인 것처럼 여겼다.
윤석열 개인의 권력 장악을 위한 플랫폼
마지막으로 ‘철학의 부재’에 따른 '플랫폼 정당화'다. 이재명의 사례에서 정당이 정치 엘리트들에게 검증과 훈련의 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역할 했다면, 윤석열 사례에서 오로지 개인의 선거 승리를 위한 플랫폼으로 전락했다. 정당은 단순히 선거 승리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고유의 정치 철학과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실현하는 이념 공동체다. 하지만 윤석열의 영입은 보수 정당으로서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나 정책적 비전을 중심으로 후보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표를 위해, 당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인물을 '간판'으로 빌려온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정당이 철학 없이 유력 후보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플랫폼'으로 전락하면, 정치는 구심점을 잃고 후보 개인의 인기에만 의존하게 된다.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거나 국정운영에 실패했을 때, 당은 함께 책임지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비판자로 돌변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국정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야당과의 극단적으로 대립으로 국정이 마비되며 곤두박질치자,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함께 추락했다. 이어 윤석열이 12.3 군사 쿠데타를 탄핵당하자, 국민의힘은 탄핵에 찬성한 세력과 반대한 세력이 소위 친탄, 반탄으로 나뉘어 심각한 분열을 맞아 분당 위기에까지 직면해야 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신기루에 편승했던 일시적 지지율에 기대어 윤석열 개인의 플랫폼으로 전락한 정당의 말로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사례는 정당이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인재 양성'을 포기하고 손쉬운 '열매 따기'에만 집중했을 때, 정당의 근간이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판적 교훈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를 넘어,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