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왜곡과 보정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161석과 90석을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로 50.5%의 표를 얻었지만, 의석은 그보다 훨씬 높은 63.4%를 차지했다. 득표율에 비해 12.9%p나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승자독식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의석은 그에 못 미치는 35.4%를 얻는 데 그쳤다.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격차가 -9.7%p로 많은 표가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기타 정당은 4.4%의 유의미한 득표를 했음에도 의석은 단 1.2%만 얻어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이처럼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선거의 불비례성이라고 한다.
불비례성은 지역주의와 결합할 때 더욱 민심을 왜곡시킨다. 22대 총선을 지역별로 분석해 보면 이와 같은 현상은 확연히 드러난다.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권에서 28석 전체를 '싹쓸이' 했다. 이곳에서 국민의힘이나 다른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표는 단 하나의 의석으로도 실현되지 못했다. 모두 사표(死票)가 된 것이다. 반대로 영남권에서는 국민의힘이 65석 중 59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이곳의 더불어민주당 지지 표 역시 대부분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표였다.
이처럼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의 의석을 독점하는 현상은 지역주의를 더욱 공고히 만든다. 유권자들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정당들은 '텃밭' 지역의 여론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치는 전국적인 통합보다는 지역 간의 정치적 대립을 선택하기 쉽다.
결론적으로 22대 총선 지역구 결과는 1등만 당선되는 단순다수제가 국민의 실제 지지 의사를 어떻게 왜곡(불비례성)하고, 정치적 분열(지역주의)을 심화시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비단 22대 총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만의 문제도 아니다. 불비례성과 지역주의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치러진 역대 거의 모든 선거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
다양성 확보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선거가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대선거구제다. 쉽게 말해 선거구의 크기를 키우고 그 안에서 더 많은 대표를 뽑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22대 총선에서 부천시는 갑, 을, 병 3개의 선거구로 나뉘어 각각 1명씩 총 3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중대선거구제가 도입 된다면 부천시 전체를 하나의 큰 선거구로 묶어 1등부터 3등까지 모두 3명을 당선시키게 된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에 소선거구제(1명 선출)의 문제점을 일부 보완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1등이 아니면 모든 표가 사표(死票)가 된다. 하지만 한 선거구에서 3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20%만 득표해도 3위 안에 들어 당선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처럼 소수 정당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격차(불비례성)가 줄어들게 된다.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압도적인 '텃밭' 지역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천지역은 2012년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차명진 후보가 당선된 이후 22대 총선까지 단 한 번도 타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더불어민주당 텃밭이다.
22대 총선에서 부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총 득표는 259,481표로 57.9%였다. 반면 국민의힘 후보들은 188,710표(42.1%)를 얻었다. 양 당 후보들의 득표 차는 70,771표, 비율로는 15.8%p였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3석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 42.10%의 선택은 사표가 된 것이다.
만약 중대선거구제였다면 부천에서 42.10%를 득표한 국민의힘 후보가 최소 1석은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 구도를 완전히 깨지는 못해도, 특정 정당의 의석 독점을 막고 다른 정당에도 최소한의 대표성을 부여하여 소수파 유권자들이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을 줄여줄 수 있다.
당연히 중대선거구제도 단점은 있다. 한 정당이 여러 명의 후보를 공천할 경우 다른 당이 아닌 같은 당 후보와 싸우게 된다. 정책의 차별성이 없으니 정책 대결이 아닌 개인의 인지도나 조직력 대결로 변질될 수 있다. 선거구가 넓어지고 후보자가 많아지면, 유권자들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현역 의원이나 유명 정치인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이 생긴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거대 양당의 의석 독식이 공고화되어 불비례성과 지역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클 것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아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소선구제를 채택한 국가는 일반적으로 양당제 형태를 보인 반면 아일랜드, 스페인, 스위스(상원) 등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다당제 형태를 보인다.
선수가 룰을 바꿔야 하는 모순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실제로 개편된 적은 없다. 이는 국회의원 절대다수가 지역구 의원이고, 비례대표로 당선된 의원도 대부분 다음 선거에서는 지역구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가 크다. 선거구제 개편은 곧 자신이 관리해오던 지역구를 조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비례성과 지역주의 문제는 대부분 인식하지만, 불비례성과 지역주의가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기득권이 된 의원들이 그것을 스스로 개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선수에게 스스로 규칙을 바꾸라 하니 변화가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구와 관계없는 비례대표 제도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개정되어 왔다. 비례대표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선거 결과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다. 당연히 불비례성을 개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제도 중 하나다. 이는 각 정당이 전국적으로 얻은 지지율에 최대한 가깝게 의회 의석을 확보하도록 설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비례대표제, 비례성을 가장 확실히 확보할 수 있는 제도
비례대표제는 정당에 투표한 표를 모아 의석으로 연결한다. 당연히 낙선자에게 던져진 표의 가치를 보존하고 유권자의 의사가 선거 결과에 반영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점하기 쉬운 지역구 선거와 달리, 전국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를 받는 소수 정당도 원내에 진출할 기회로 이어진다. 의회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다양한 이념과 정책이 논의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의 한 축을 담당하는 비례대표제는 1963년 처음 도입된 이래, 한국 정치의 격동적인 역사와 함께 변화를 거듭해 왔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비례대표 선거가 실시 되었다. 당시에는 지역구 선거와 별도로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여 각 정당이 제출한 명부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비례대표, 매관매직의 유혹
하지만 당시 비례대표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매관매직이다. 당시 전국구 비례대표 공천이 사실상 '매관매직'처럼 이루어졌다는 의혹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특히 당 총재의 막강한 권한으로 비례대표 순번이 결정되던 시기였기에, 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는 재력가나 기업인들이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제도가 없던 시기였기에 비례대표 후보에게 공천헌금이라도 받아야 당의 운영이 가능하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이러한 행태는 특정 인물이 여러 번 비례대표를 역임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에 대한 재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은 다음 선거에서도 공천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공천헌금'이라는 명목보다는 '특별당비'나 '후원금'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고, 법적인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어 명확한 사례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비례대표 공천헌금이 문제가 된 사례들도 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비례대표 후보였던 양정례, 김노식 후보로부터 각각 10억 원이 넘는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전국구 비례대표제는 능력이나 전문성보다는 재력이 국회의원이 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는 이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분리하는 병립형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비례대표'라는 용어 대신 '전국구(全國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가장 큰 특징은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하는 별도의 투표(1인 2표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직 지역구 후보자에게만 한 표를 행사하는 '1인 1표제'였다. 전국구 의석은 이 지역구 선거 결과에 따라 배분되었다.
이 시기 비례대표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직능 대표가 국회에 진출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이 완전히 분리되어 배분되다 보니,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 간의 불비례성 문제는 여전히 한계로 지적되고 있었다. 즉, 특정 지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독식한 거대 정당이 정당 득표율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현상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지역구 선거 결과를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연동시키는 당시의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의 의사를 그대로 정당에 대한 지지의사로 의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직접선거 원칙은 의원의 선출뿐만 아니라 정당의 비례적인 의석 확보도 선거권자의 투표에 의하여 직접 결정되어야 하는데, 당시 제도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도 판단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시대 (2004년 ~ 201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마침내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처음 적용되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004년 제17대 총선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시기에 채택된 방식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다. 병립형은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를 완전히 분리하여 각각의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단순한 구조였다. 지역구에 배정된 총 253석은 선거구별 1위 득표자가 모두 차지하고, 나머지 47석을 비례대표에 배정하여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나누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유권자가 인물과 정당을 따로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정당 중심의 정책 선거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역구 선거의 승자독식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정당이 얻은 전체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 간의 불일치, 즉 비례성이 낮은 문제는 여전히 한계로 지적되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위성정당 논란 (2020년 ~ 현재)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불비례성을 해소하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 결과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먼저 배분하고, 각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주는 선거 제도다. 핵심은 '지역구 선거 결과와 비례대표 선거 결과를 연동(連結)시켜' 정당의 실제 지지율과 의석수 간의 불일치(불비례성)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국회 총 의석수가 100석(지역구 60석, 비례대표 40석)인 국가에서 정당 득표율은 A정당 50%, B정당 30%, C정당 20%이고, 지역구 당선은 A정당 40석, B정당 14석, C정당 6석인 결과의 선거가 치러졌다고 가정에서 연동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교해 보자.
목표 의석은 전체 의석 100석에 각 정당의 득표율을 반영한 A정당 50석(100석 × 50%), B정당 30석(100석 × 30%), C정당 20석(100석 × 20%)이 된다. 배분되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목표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 의석수를 차감한 A정당 10석(50-40), B정당 16석(30-14), C정당 14석(20-6)이 된다. 최종 의석수는 지역구 당선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합한 A정당 50석(40+10), B정당 30석(14+16), C정당 20석(6+14)으로 득표율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비례대표 방식은 준연동형이라고 한다. 연동형에 따른 비례대표 배분 의석수의 50%만 배정하고 나머지 의석수는 각 정쟁의 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때 준연동에 따라 배분되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연동형의 절반인 A정당 5석((50-40)×50%), B정당 8석((30-14)×50%), C정당 7석((20-6)×50%)으로 총 20석이 된다. 나머지 20석은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A정당 10석(20×50%), B정당 6석(20×30%), C정당 4석(20×20%)으로 배분된다. 최종 의석은 A정당은 득표율(50%)에 따른 목표의석수(50석)보다 많은 55석, B정당과 C정당은 목표 의석수보다 적은 28석과 17석을 얻게 된다. 결국 연동형에 비해 준연동형이 거대 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또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 또다시 왜곡되어야 했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만을 노리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대한민국의 거대 정당은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때문에 비례대표에 배정받을 의석은 거의 없게 된다. 당연히 비례대표는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하지만 전국적인 지지도는 유의미한 수치를 받는 소수 정당에 배분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위성정당, 거대 정당의 비례대표 사냥
그러자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득표만을 목적으로 하는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창당했다. 민주당 역시 모든 비례대표 의석을 국민의힘에 빼앗길 수는 없다며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창당으로 맞대응했다. 다만 더불어민주연합은 소수 정당과 연합하여 의석을 조정하는 것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려 노력했다. 그 결과 비례대표 의석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들이 각각 18석과 14석씩 총 32석을 얻어 병립형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만약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 없이 직접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했다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10석과 14석이 줄어들고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각각 6석과 1석이 늘어나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결국 민의를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또한 거대 양당의 이기적 전략에 왜곡된 것이다. 다만 선거마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고,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 의석을 소수정당에 배려하는 상황 등을 고려해 본다면 결국 비례대표제는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연동형으로 개정되어 갈 것이다.